정치는 결국 인간의 삶을 돌보는 일이어야 한다. 고된 삶을 사는 다수의 국민을 대신해 정책을 만들고, 권력을 위임받아 부조리와 싸우며 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 눈에 비친 이른바 ‘지도층’의 모습은 그와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진다. 최근 몇 년 사이, 대통령 부인을 포함한 정치 고위층 주변에서 끊이지 않고 불거지는 명품 관련 논란은 단순한 사치의 문제를 넘어서 국민의 자존감을 짓밟는 사건들이다. 샤넬 백 하나, 고가의 시계 하나가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단순한 취향이 아니다. 이는 이 사회의 깊은 균열이며, 더 나은 삶을 꿈꾸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너희는 애초에 가질 수 없는 세계’라는 조소처럼 다가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늘 욕망의 대상을 좇았다. 금은 그 대표적인 상징이었다. 결혼식의 금반지, 올림픽의 금메달, 왕의 금관은 모두 금이 지닌 권위와 상징성 때문이다. 화학이라는 과학 분야도, 금을 만들어내려는 연금술에서 기원했다. 어떤 재앙이 닥쳐도 금은 살아남는다는 믿음은 오늘날까지도 투자자들의 심리를 지배한다. 그러나 이 금조차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명품이다. 명품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인간의 허영과 사회적 우위를 향한 욕망이 응축된 상징 자본의 정점이다.
명품은 금을 능가하는 현대 소비 욕망의 상징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지적했듯, 현대 소비자는 기능이 아닌 ‘상징’을 산다. 명품을 사는 것은 품질이 아니라 지위를 사는 일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 ‘지위’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세계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평범한 사람들은 카드 할부로 삶을 쪼개며 명품을 사고, SNS에 자랑하듯 올린다. 이는 그들 역시 명품이 상징하는 '특별한 지위'를 흉내 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간절한 욕망이라 할지라도, 진짜 권력자 앞에서는 결국 '흉내'일 뿐이라는 서글픈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명품 스캔들은 단순한 개인의 사치가 아니다. 샤넬 백,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 수천만 원대의 시계 등은 이미 몇 차례 언론과 유튜브를 통해 구체적으로 조명됐다. 특히 ‘명품을 선물 받았다’, ‘받자마자 착용했다’, ‘무상으로 소유했다’는 정황은 공과 사의 경계를 넘어서 특권과 특혜의 냄새를 풍긴다. 무엇보다 문제는, 이 모든 논란 앞에서 내려오는 변명과 해명이 국민을 전혀 납득시키지 못한다는 데 있다. 억지 해명과 침묵, 무대응. 그 무책임한 태도는 오히려 국민의 분노를 키운다.
물론 이런 논란이 이번 정부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대통령이 누구이건, 시대가 어느 때이건, 이 명품의 유혹은 반복되었다. 김윤옥 여사의 명품 시계 논란, 권양숙 여사의 가방 수령 의혹, 박근혜 정권 시절의 ‘비선 실세’ 최순실의 명품 쇼핑까지 예외는 없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지도층은 국가를 운영하고 국민을 대표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일종의 ‘특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사적 이익의 유혹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는 명품이라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유혹’으로 나타나고, 이는 곧 불법, 비리, 공사 혼동의 연결고리가 된다. 지도층에게 필요한 것은 초심을 지키는 도덕적 자각이지만,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도덕적 감수성은 점점 무뎌지고 만다. 권력이 오래 머무를수록 감시의식은 느슨해지고, 자율적 절제 대신 이중잣대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명품 산업은 처음부터 인간의 허영심을 겨냥해 정교하게 설계된 구조다. 본디 원가의 몇 배, 심지어 수십 배 가격을 매겨도 팔리는 이유는 희소성과 상징성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명품이 ‘뇌물’처럼 건네지고, ‘권력의 장식’처럼 쓰이며, 마치 당연하다는 듯 공식 행사장에서도 노출된다면 사람들은 묻고 싶어진다. 그들의 세상은 우리와 같은가? 법도, 상식도, 도덕도 그들에게는 다른가?
누구는 한 달 월급이 200만 원도 안 돼 생계를 걱정하는데, 누구는 시계 하나가 수천만 원이다. 누구는 집값이 올라 빚이 불어나는데, 누구는 선물 받은 명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착용하고 웃는다. 이런 장면은 국민들에게 깊은 박탈감을 준다. 우리는 정치인이나 그 가족이 검소하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최소한의 품격과 책임은 갖추길 바란다. 국민의 시선을 외면하지 말고, 상식에 부합하는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공인이자 지도층의 의무다.
진짜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은 지금도 지하철에서, 편의점에서, 사무실에서 삶을 견딘다. 그들이 느끼는 이 절망과 분노는 단순한 질투가 아니다. 기회와 정의, 희망의 불균형에 대한 본능적 저항이다. 지도층의 명품 사랑이 계속된다면, 이 사회는 점점 더 냉소와 허탈 속에 가라앉을 것이다. 이 불신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스스로 절제하고 국민 앞에 진심으로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