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그의 희곡 『윈드미어 부인의 부채』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 또 하나는 그것을 얻는 것이다.” 처음 들으면 다소 역설적으로 느껴지는 이 말은, 사실 인간 욕망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슬픔이나 좌절을 느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정작 그토록 갈망하던 것을 손에 넣었을 때도 비극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명언은 인생의 복잡한 진실을 깊이 성찰하게 만든다.
인간이든 국가든 간절한 욕망이 생기면, 우리는 종종 그 외의 모든 것을 제쳐두고 오직 그것만을 향해 달려간다. 목표를 향한 집중은 때로는 찬사받을 만한 추진력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얻은 그 순간부터,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소유는 책임을, 성공은 끊임없는 유지와 관리를, 권력은 그에 상응하는 무게를 감내할 각오를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무게에 짓눌려, 성취가 곧 파멸로 이어지는 모순을 마주하게 된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러한 ‘성취의 비극’은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 과도한 정복욕에 사로잡혀 무리하게 영토를 확장한 제국들은 언젠가 내부의 균열로 스스로 무너졌고,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국가들 역시 그 이면에 누적된 사회 갈등과 피로감으로 휘청거렸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레 큰 부를 얻은 사람이 오히려 삶의 균형을 잃고 불행해지는 경우도 많다. 충족감은 잠시일 뿐, 곧 공허함과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역설은 현대 국제정세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 강화, 이른바 ‘관세전쟁’이 그렇다.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무역 장벽을 세운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성과처럼 보이지만,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오히려 자국 소비자들에게 부담으로 되돌아오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원하는 것을 얻은 듯 보였지만, 그것이 진정한 축복일지 비극일지는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최근 우리 정치권 역시 이 명언의 경고에서 자유롭지 않다. 총선 압승 이후 여당은 독단적인 입법 처리를 강행하는 등 승리한 자의 오만에 빠지기 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하는 것을 얻은 다수당이 빠지기 쉬운 오만은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결국 민심과 괴리된 결정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러한 독주가 민주주의의 성숙은커녕, 오히려 신뢰를 무너뜨릴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말처럼, 세상 만물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대로 움직인다. 한 국가가 경제적·군사적 패권을 장악하는 순간부터, 그를 견제하려는 다른 국가들의 연대가 시작된다. 미국의 강경한 무역정책에 반발해 중국, EU 등 여러 국가들이 새로운 협력 구도를 모색한 것만 보더라도 이는 분명한 흐름이다. 결국, 과도한 성취와 그에 따른 독주가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이 결코 정지된 채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통찰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비극은 때로 우리를 단련시키고, 다음 기회를 위한 준비를 가능하게 한다. 반면, 원하는 것을 얻은 뒤의 비극은 자만과 방심, 그리고 지나친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취란, 그것을 얻은 뒤에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절제하는 데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욕망의 끝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더 많은 것을 갈망하며 살아간다.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부, 더 강한 영향력.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는 우리에게 묻는다. “그것을 정말로 감당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얻은 후의 삶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고민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이다.
결국 인생과 국가는 단순히 ‘무엇을 얻었는가’로 평가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어떻게 다루었는가’가 진정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욕망을 이루는 데 성공했을 때, 비로소 더 큰 비극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사실. 그 진실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성취 이후의 삶을 비극이 아닌 지혜로 이끄는 첫걸음이 아닐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