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에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폭력 사태나 갈등에는 반드시 그 시작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종종 ‘말’이다. 언어는 감정과 정서를 전염시키는 도구이며, 그 감정이 파장을 일으킬 때는 일상의 평온함이 산산이 부서질 수 있다. 특히,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인의 언어는 더욱 그렇다. 우리가 “말의 나비효과”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정치인의 말은 그 파급력이 더욱 크다. 정치를 주도하고 여론을 선도하는 사람의 언어는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파동이 된다. 단어 하나, 표현 하나가 수많은 국민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두려움으로 가득한 연설은 청중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고, 혐오와 분노로 채운 발언은 그대로 혐오와 분노를 낳는다. 반대로,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연설처럼 희망과 소망의 언어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운다.
최근 정치권의 언행을 보면 이런 본질적인 경각심은 실종된 듯하다. 대표적인 예로, 최근 국회에서 여야 대표 간에 오간 막말 공방을 보자.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에게 “이재명과 김어준의 똘마니”라며 노골적인 비난을 퍼부었고, 이에 정 의원은 “윤석열 내란수괴 똘마니”로 맞받아쳤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표현을 듣고 있자니 부끄럽고 민망함을 느낄 지경이다. 정치가 설득과 토론이 아니라 말싸움의 장으로 전락한 현실에 씁쓸함을 느낀다.
이처럼 막말이 오가는 정치판은 어느 순간부터 자기 진영을 결집시키기 위한 전략이 되어버렸다. 적을 자극하고 지지층의 박수를 유도하는 이 싸움의 언어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정치는 극단으로 치닫고 국민은 정치에 등을 돌리는 결과만 낳는다. 정치에 대한 불신은 깊어지고, 정책 논의는 자취를 감춘다. 말의 전쟁 속에서 정작 다뤄야 할 민생 문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어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말을 아끼고 조심하는 태도를 미덕으로 삼았다. 중국 진(晉)나라의 학자 부현은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화는 입에서 나온다.”고 했다. 말 한 마디가 가져올 파국을 경계하라는 의미다. 정치인의 말은 개인의 실수가 아닌, 공적인 책임이다. ‘의도’가 문제가 아니라 ‘영향’이 문제다. 몇 마디로 끝날 줄 알았던 말이 누군가의 감정을 자극하고, 갈등을 증폭시키며, 결국 사회 전체를 분열시킬 수 있다.
정치적 견해나 입장이 다를 수는 있다. 오히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그 다름을 드러내는 방식은 설득과 논리여야 한다. 상대를 향한 조롱과 비난, 비하와 모욕은 정치를 파괴할 뿐이다. 지금 정치권은 정당 간은 물론, 같은 당 안에서도 막말과 험담이 넘친다. 당의 노선이나 정책보다, 누가 더 심한 말을 했는지가 뉴스가 된다. 정치가 점점 수준을 잃어가는 현실이다.
정치가 갈등을 해결하는 도구가 아니라, 갈등을 증폭시키는 기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 사회는 본래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갈등을 조정하고 조율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그런데 요즘 정치는 갈등을 수단으로 삼는다. 더 많이 싸워야, 더 크게 소리쳐야 주목받는다는 식이다. 정치는 그 자체로 갈등을 조장하는 일이 아니다. 싸움이 있다고 정치가 존재하는 것이지, 싸우기 위해 정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말은 정치의 기본이다. 정치를 말로 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하겠는가. 그러나 그 말은 국민의 고통을 달래는 말이어야 하고,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말이어야 한다. 자신의 지지층만을 향한 선정적인 말이 아니라, 전체 시민을 향한 책임 있는 말이어야 한다. 지금의 정치는 그 기본을 잃었다.
정치인의 언어는 결국 그 정치인의 수준이자, 정치 문화의 수준을 보여준다. 막말과 조롱으로 물든 언어 속에서 국민은 점점 냉소하게 된다. “정치가 나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불신은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무관심은 민주주의를 병들게 만든다. 이런 악순환은 반드시 끊어야 한다.
이제 정치인은 자기 말의 무게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말이 사회에 어떤 파장을 남기는지, 누군가에게 어떤 감정을 안기는지, 그 결과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되짚어야 한다. 선동 대신 설득을, 조롱 대신 존중을, 분열 대신 통합을 말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정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