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부정하는 시대, 일희일비를 다시 묻다

by 정용우

‘일희일비(一喜一悲)’란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드는 감정의 기복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원래는 조그마한 일에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큰 흐름을 보고 마음을 다잡으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특히 중국 고전에서는 군자의 자세를 가르치며 자주 등장했고, 우리 사회에서도 자기수양이나 자기관리를 위한 지침으로 흔히 인용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말이 전혀 다른 맥락에서 회자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실수나 비판을 받은 상황에서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말이 일종의 면피성 레퍼토리처럼 쓰이고 있다. 마땅히 사과하고 책임져야 할 자리에 스스로를 ‘흔들리지 않는 중심’처럼 포장하며 ‘일희일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사자성어의 뜻을 왜곡하는 동시에 책임 회피의 수단이 되고 있다.


일희일비는 단순히 감정에 흔들리지 말자는 도덕적 계율이 아니다. 그것은 자잘한 성패에 일희일비하며 본질을 놓치지 말라는 경계이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중심을 잡으라는 권고이다. 감정 자체를 부정하거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게 ‘성숙한 자세’인 것처럼 포장하는 건 오히려 감정에 대한 오해를 부추긴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부정하는 것을 이성적이라 착각한다. 기뻐하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라는 뜻으로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말을 곧잘 내뱉는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은 단지 흔들림이 아니라 존재의 중심이고, 우리 삶을 움직이는 중요한 에너지다. 영어 단어 'emotion'의 어원은 라틴어 'movere(움직이다)'다. 감정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움직이고,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 감정을 억누르고 참는다고 해서 그것이 성숙함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왜곡 없이 바라보고 정확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더 어렵고 성숙한 과정이다. 기쁨이든 분노든, 슬픔이든 불안이든, 그 모든 감정은 무시해도 될 하찮은 것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 관심 받을 자격이 충분한 중요한 신호다. 감정을 붙잡고 감정의 이름을 붙이고 그 감정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감정은 진공 속에서 홀로 생기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관계 속에서 감정을 느낀다. 어떤 감정은 나를 지치게 하지만, 그 안에는 타인을 배려하려는 마음이 들어 있고, 나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숨어 있다. 감정은 돌봄이자 연결의 씨앗이다. 때로는 나를 무력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일희일비는 꼭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다만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스스로를 잃지 말자는 뜻일 뿐이다. 오히려 내 감정에 귀 기울이고, 그 감정이 가리키는 방향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기 수양의 출발점이다. 감정은 언제나 길을 알려준다. 그 감정이 왜 생겼는지, 어디서 시작됐는지 살피는 일은 우리 삶을 더 단단히 세우는 기반이 된다.


우리는 흔히 ‘감정적이다’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쓴다. 하지만 삶은 감정 그 자체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불안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겪어야 할 감정이며, 그것을 느끼고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좀 더 살아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말은 감정을 억제하라는 뜻이 아니다. 감정에 압도당하지 말고 감정을 살피며 살아가라는 말이다. 감정을 부정하지 말고, 감정의 흐름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되, 그 감정이 나를 해치지 않도록 적절히 관리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감정과 거리 두기가 아니라 감정과의 친밀한 동행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깊은 의미가 담긴 사자성어가 오늘날 책임을 회피하는 데 쓰이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감정을 감추기보다는 그 감정을 통해 성찰하고 변화해야 한다. 감정을 감추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오히려 오만한 태도를 드러내는 것은 진정한 자기성찰이 아니다.


감정은 감추거나 부정할 대상이 아니라, 존재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다. 기쁨은 축복이고, 슬픔은 성찰이며, 분노는 경계이고, 불안은 방향을 묻는 질문이다. 감정이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결국,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말은 감정을 부정하라는 말이 아니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도록 나 자신을 다잡되, 그 감정을 외면하지도 말라는 뜻이다. 감정을 통해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넓은 시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기뻐하고, 또 슬퍼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인간이고, 그것이 삶이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말의 나비효과: 국민의 평온을 부수는 정치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