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 위의 리더십: '집'을 통해 공존의 길을 열다

by 정용우

옛날, 한 나그네가 선사에게 물었다. “스님,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선사는 조용히 웃으며 답했다. “흐름을 따르게.”


정치는 흐름을 읽는 예술이다. 민심의 결을 읽고, 시대가 던지는 질문을 이해하며, 사회를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흐름’을 포착한 지도자만이 새로운 문을 열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또 한 명의 대통령을 맞이했다. 이재명 대통령. 그는 변화에 대한 민심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내며, 그 물결 위에 올라섰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단순하지 않았다. 그가 가진 정치적 자산은 오히려 ‘갖지 못한 것’에서 나왔다. 기득권과의 거리, 서민의 삶을 체험한 이력, 생활 밀착형 언어와 행보가 그의 강점이었다. 그리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원동력 중 하나는 부동산 시장에 지친 국민들이 던진 절실한 질문이었다. “이대로 괜찮은가?”


부동산 문제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난제다. 오랜 시간 누적된 불균형과 왜곡, 특히 수도권 고가 지역의 자산 집중 현상은 단지 시장의 문제가 아니다. 주거는 이제 계층을 가르는 상징이 되었고, 집 없는 이들은 자산 축적의 첫 문턱에서조차 좌절하고 있다. 고소득을 올려도 자산을 축적하지 못하는 ‘헨리(HENRY: High Earner, Not Rich Yet)’라는 신조어가 이 시대 청년의 단면을 보여준다.


실제로도 수도권 자가소유율은 절반을 넘지 못한다. 국민 절반 가까이가 여전히 ‘내 집 마련’이라는 기본적 목표 앞에서 멈춰선 상태다. 이들에게 주거 안정은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삶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이 지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책무가 시작된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역시 유사한 흐름을 감지한 지도자였다. 부동산 불균형과 계층 고착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로 하여금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과감한 해법을 제시하게 했다. 그것은 단지 물리적 수도 이전이 아니라, 자산 중심의 수도권 집중 구조를 분산시키려는 구조적 시도였다.


이재명 대통령 또한 대선 과정에서 청년, 서민, 무주택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고, 공공주택 확대, 개발이익 환수, 투기 억제 등을 약속해왔다. 일부는 정책으로 실행되기 시작했다. 방향은 옳다. 그러나 진짜 개혁은 방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속성과 일관성, 그리고 정책 철학이 함께 가야 한다.


부동산 개혁은 단기적 조치로 해결되지 않는다. 공급 확대는 물론이고, 수요 관리, 금융 규제, 조세 제도, 도시계획, 지역 간 균형 발전까지 다층적이고 유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두 개의 인기 있는 정책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구조적 개혁이 요구된다.


지금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다. 시민의 눈과 귀, 판단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어지고 깊어졌다. 정치도 더 민첩하고, 더 투명하며, 더 유연해야 한다. 정책은 명확한 방향과 철학을 가져야 하고, 시민과의 지속적인 신뢰 관계 속에서만 실현 가능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 그 흐름의 정중앙에 있다. 주거 안정을 통해 삶의 질을 회복하고 자산 불균형을 해소하는 일, 이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의다. 그것은 여야의 문제가 아니고, 진영의 문제도 아니다.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정치가 어떻게 답할 것인가의 문제다.


대통령의 권한은 강력하지만, 국민의 기대는 그보다 더 크다. 집이 없는 이들에게는 희망을, 집이 있는 이들에게는 시장의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모두가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정치의 존재 이유다.


초심을 지키는 일은 어렵다. 권력은 무겁고, 현실은 복잡하다. 그러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국민의 마음을 읽는 감각을 유지한다면, 그는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시대가 그에게 맡긴 진짜 소명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주 내로 정부가 내놓을 부동산 종합대책이 이재명 정부의 주거 철학을 얼마나 충실히 담고 있을지, 국민은 그 첫걸음을 주목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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