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는 정치에서 가장 유혹적인 언어다. 표를 얻기 위해 정치인은 복지를 약속하고, 국민은 그 혜택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문제는 이 복지를 줄이려 할 때 시작된다. 스웨덴, 독일, 프랑스 등 복지국가로 불리는 나라들조차 재정 악화를 피하지 못했고, 최근 수년간 이들 국가는 의료·연금 개혁, 실업급여 조정 등을 통해 복지 구조조정에 나섰다. 그러나 국민의 거센 반발로 인해 정책은 번번이 좌초되거나, 개혁을 시도한 정권이 조기 퇴진하는 일도 벌어졌다. 대표적인 고비용 복지국가인 프랑스는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중이 OECD 평균(21.1%)보다 훨씬 높은 30%대 수준이고, 그만큼 국가채무비율도 100%를 넘는다. 이른바 ‘복지 중독’ 현상이다.
“주는 건 쉬워도, 거두는 건 어렵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정책의 불가역성(不可逆性)’이라고 설명한다. 한 번 도입된 복지는 단순한 정책이 아닌 국민의 권리로 인식되기 때문에, 그래서 정치권은 복지를 확대할 때는 민심의 박수를 받지만, 이를 조정하려 들면 강한 저항에 부딪혀 주저앉는다. ‘감탄고토(甘呑苦吐)’라는 고사성어가 이 상황을 잘 설명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민심 때문에 정치인은 인기 영합적인 정책만 쫓고, 어려운 결정은 뒤로 미룬다. 문제는 그 대가를 다음 세대가 치르게 된다는 점이다.
한국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2024년 기준 국가채무는 1,250조 원,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2.7%에 이른다. 10년 전 35.9%였던 수치에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것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건 의무지출 비중의 급증이다. 전체 예산 중 보건·복지·노동 분야에 쓰이는 비용은 이미 40%를 넘어섰고, 이는 앞으로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2025년에는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돌파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기초연금, 장기요양보험, 건강보험 지원 등 노령층 중심의 복지 지출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세수는 줄고 있다. 2024년 국세 수입은 60조 원에 가까운 결손을 기록하면서, 세입 기반 약화와 재정 건전성 악화가 현실화되었다. 주요 세목인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도 경기 둔화와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정체되고 있다. 복지는 늘고 세수는 줄면 재정 건전성은 급격히 훼손된다. 실제로 국가 신용등급 전망이 하향 조정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투자 위축과 대외 신뢰도 하락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 역시 뼈아픈 반면교사다. 장기 불황과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천문학적 수준의 국가 부채가 쌓였고, 정치권은 세금 인상과 복지 감축 사이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때 ‘전 국민 현금 지급’ 같은 포퓰리즘 정책이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근본적 개혁 없이 반복된 재정 투입은 실효성이 낮았다. 최근 들어 젊은 세대들은 단기 현금보다 근로 의욕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 혜택—예컨대 소득세 감면이나 주거 비용 절감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단기적 현금 지원보다 지속 가능한 구조 개혁을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교훈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몇 년 사이 각종 명목으로 도입된 현금성 복지 정책들은 사회적 효과에 대한 철저한 검토 없이 확산됐다. 보편 지급이냐, 선별 지급이냐의 논란이 반복되었고, 이를 정치권은 ‘표심’에 따라 유연하게 해석해왔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니라, 그 지속 가능성에 있다. 대부분의 현금 지원은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국가 부채로 남는다.
복지를 줄이라는 말은 아니다. 고령화와 저출산 사회에서 복지는 국가의 책임이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복지란 결국 ‘균형 잡힌 구조’에서 가능하다. 복지를 감당할 수 있는 재정 기반, 즉 조세 형평성을 높이고, 비효율적 지출 항목을 과감히 정비하는 등의 구조조정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권은 ‘무상 ○○’, ‘국가책임제’ 같은 수사엔 능하지만,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선거가 다가오면 경쟁적으로 복지 확대를 외치지만, 그로 인해 어떤 재정적 부담이 뒤따르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복지는 늘지만, 재정은 악화되고, 정치적 부담은 다음 정부로 전가된다.
결국 문제는 정치의 구조다.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전략이 아닌, 당장의 유불리를 따지는 선거 전략이 재정을 잠식시키고 있다. 복지 정책은 더 이상 정치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 국가의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어야 한다. 이 선택은 당장은 인기 없는 결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불편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용기다. 일본도, 프랑스도 망설인 그 선택 앞에 지금 한국이 서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