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 속에서 가장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공간 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이다. 그곳에 설치된 세면대와 변기는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존재다. 특히 변기는 우리가 숨기고 싶은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면을 받아내며,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든 누구나 똑같이 사용하는 물건이다. 이처럼 변기는 평등의 상징인 동시에,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의 표상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변기’는 종종 권력자의 민낯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곤 한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무너졌을 때, 순금으로 도금된 사치스러운 변기가 언론에 보도되며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국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외부 행사에 전용 변기를 따로 챙겼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윤석열 정부 시절 한남동 관저 변기 교체에 수천만 원의 예산이 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생리적 평등 앞에서도 권력은 자신만의 예외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변기는 곧 천대받는 노동의 상징이기도 하다. 인도의 달리트 계층이 공중화장실 청소를 전담하고 있고, 한국의 청소노동자들 역시 열악한 환경과 낮은 대우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과 위생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을 하면서도, 그들의 노동은 쉽게 외면당하고 폄하된다. 권력자는 변기를 특권의 상징으로 만들지만, 서민은 그 현실을 묵묵히 감당한다. 이는 단순한 사회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시선의 왜곡을 드러낸다.
고대 중국 춘추시대에도 비슷한 교훈이 있었다. 진나라의 권신 지백은 주변 세 가문에 영토를 바치라고 협박했다. 한·위는 굴복했지만 조 씨 가문은 끝까지 저항했다. 결국 조양자의 계략에 빠진 지백은 죽임을 당했고, 그의 해골은 옻칠을 당한 뒤 변기로 전락했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자가 죽은 뒤 변기가 된다는 이 역설적 결말은 곧 권력의 부조리와 오만에 대한 통렬한 풍자다.
당시 사람들은 지백의 몰락을 “재주가 덕을 이겼기 때문”이라 보았다. 재주란 총명하고 강한 기개이며, 덕이란 올바르고 온화한 인품이다. 재주는 덕을 실현하는 도구일 뿐이며, 덕 없는 재주는 오히려 독이 된다. 덕 없는 재능이 권력을 손에 쥐면, 그것은 마치 날개 단 호랑이처럼 위험하다. 지혜는 간계를 낳고, 용기는 폭행의 수단이 될 수 있기에, 덕 없이 힘만 가진 자는 공동체에 해악이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이러한 경고가 결코 과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특정 집단의 능력과 열정을 믿고 권력을 위임하지만, 그 결과가 언제나 기대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정치 세력은 국민이 맡긴 권한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신뢰를 넓히기보다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강화하는 데 치중한다. 강한 추진력은 때로 개혁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합의와 조화를 무시한 채 일방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경우 오히려 통합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실용적 정책이다. 그러나 때로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부가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소홀히 한 채, 법·제도의 기본 골격을 일방적으로 재편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정쟁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본 구조를 시험하는 사안이다. 민생보다 정치적 유불리를 앞세우는 정치는 결국 국민의 신뢰를 잃게 마련이다.
리더십은 능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실력과 덕의 조화가 필수다. 당대 정치 철학의 정수로 불리는 『정관정요』에서도 제왕의 자격으로 ‘덕’과 ‘재’를 동시에 갖추는 것을 강조했다. 그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결국 나라를 위태롭게 만든다.
지도자는 예(禮)·의(義)·신(信)을 바탕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 이러한 덕목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될 때 진심이 통한다. 말 잘하는 영웅보다, 예의를 지키고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리더가 더 큰 감동을 주는 법이다. 백성은 그런 지도자에게 지지를 보낸다.
정권의 성패는 결국 시민이 판단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단순한 업적이나 언변이 아니라, 권력을 어떤 태도로 행사했는지에 있다. 어떤 정권이든 예외는 없다. 국민을 존중하고 신뢰를 저버리지 않으며, 민생에 진정으로 다가서려는 자세 없이는 권력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국민은 지도자의 진심을 정확히 가려낸다.
변기는 결국 진심을 알아보는 거울이다. 지금은 고개를 치켜들고 있을지 모르나, 덕을 갖추지 못하면 언젠가는 그 자리가 비극의 상징으로 남게 될 것이다. 변기처럼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