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냐 딸이냐, 그 너머의 질문

by 정용우

“아이들 사진을 자주 보내줘서 참 고맙다.”

추석 연휴에 고향을 찾은 딸에게 내가 건넨 말이다. 이곳 시골 지수에서 홀로 살아가는 나를 위해 무엇이 위로가 될까 고민하던 딸은, 손주들의 사진과 영상을 자주 보내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손주들에 대한 나의 애정이 깊다는 걸 알기에, 그런 따뜻한 배려가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사진 속 손주들의 해맑은 웃음은 내 일상의 기쁨이자 위안이다. 손자 녀석이 블록을 쌓는 모습, 손녀가 읽은 책 내용을 노트에 정리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하루를 풍요롭게 만든다. 직접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그 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노년의 외로움을 덜어준다. 손주 둘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큰 기쁨이다.


그런 딸이 전해준 이야기가 하나 있다. 대전에 있는 손자의 유치원 반에 아이가 20명인데, 그중 남자아이는 겨우 6명뿐이라는 것이다. 처음엔 우연이겠거니 했지만, 생각해 보니 이 숫자가 단순한 통계를 넘어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율이 극단적으로 낮아진 시대에, 성비 불균형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조용히 퍼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실제로 이런 현상은 점점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요즘은 딸이 더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한 반에 남자아이가 몇 명 되지 않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흐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한때 남아 선호가 뿌리 깊던 우리 사회에서 출생 성비가 116:100까지 치솟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딸을 더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여아 선호율은 세계 1위다. 여성의 사회 진출, 양성평등 의식의 확산, 자녀에 대한 정서적 기대 변화 등이 이유로 꼽힌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새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삶이 고될수록 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15세기 표해록에는 제주 사람들이 딸을 낳으면 “효도할 아이다”라며 기뻐하고, 아들을 낳으면 “물고기 밥”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바다로 나가야 했던 아들보다 곁에 남는 딸이 부모에게는 더 소중했다. 의병장 곽재우는 함경도에서는 아들을 낳으면 버리고, 딸을 낳으면 기른다고 했다. 탐욕스러운 관리와 부역 부담 탓에 아들을 키우는 일이 더 큰 고통이었던 것이다.


요컨대, 여아 선호는 가치관의 진보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는 시대의 고단함이 빚은 선택이기도 하다. 출산이 ‘축복’이 아니라 ‘계산’이 되는 시대, 그래서 요즘 부모들은 정서적 위안을 주는 자녀를 떠올릴 때, 자연스레 딸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딸 선호는 결국 저출산이라는 깊은 뿌리에서 비롯된 또 하나의 가지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성비 불균형이 구조적으로 이어질 경우다. 유치원 교실에서 보인 현상이 전국적으로 반복된다면 결국 인구 구조 자체가 왜곡된다. 결혼과 출산이 어려워지고, 노동시장도 성별 불균형에 따라 인력난을 겪을 수 있다. 나아가 복지 시스템 전반에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런 흐름을 완화하려면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대책이 필요하다. 보육시설 확충, 육아휴직 보장, 아빠의 육아 참여 확대, 교육비 경감 등이 시급하다. 특히 아버지들이 육아의 주체로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 성별 고정관념을 깨는 교육과 정책도 함께 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녀의 성별에 따라 기대치나 역할을 구분하지 않는 성중립적 인식이 널리 자리 잡아야 한다. 자식은 아들이든 딸이든,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근본이다. 가정과 학교, 정책과 문화가 함께 움직여야 가능하다.


나는 여전히 딸이 보내주는 손주들의 사진을 보며 하루를 연다. 사진 속 웃는 얼굴은 나에게 위안이자 희망이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성별로 인해 불균형하고, 기회의 격차가 크다면, 우리는 어른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아들이냐 딸이냐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냐이다. 오늘 우리가 만드는 사회가 그 답이 되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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