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마주한 울분의 밤

by 애리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인생이 좌절한 순간 누구든지 던지기 마련인 물음표를 나 역시 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제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이 진부한 질문이 떠오른 그 날의 밤으로부터 5년이 지나서야 나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5년이 지났기에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IMG_20180707_152203.jpg 이스탄불의 유럽지역과 아시아지역을 가르는 보스포로스 해협 버스 대신 배를 타고 지나며 보는 광경은 오고 가는 길 터키를 추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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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언제나 갑작스럽고, 충격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순간에 나타나야지만 그것은 '사건'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되고,

그래야 충격은 '흔적'을 남긴다.

IMG_20180606_191237.jpg 사전시장조사 때, 홀로 묵었던 나의 호텔 창가 뷰는 이러했다. 때마다 들리는 기도소리가 갑자기 쟁쟁하게 들려온다.

그날 밤은 긴장했던 모든 일들이 지나가고 또 지나갈 일들만 남은

마치 이제 막 해가 지고 온 방에 불을 끌일만 남은 순간과 같았다.

1528390188130.jpg 얼마나 열정이 가득했냐면, 굳이 거래처의 티셔츠를 받아서 입고 다닐 정도였다. 걸어다니는 홍보가 되기를 자청했다.

내가 하는 일은 아무 연고도 없는 나라에 주름잡고 있는 (대부분) 사내에게 불쑥 나의 나라 물건을 만드는 나도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보라는 어쩌면 굉장히 뜬금없는 행운의 편지 우편부 같은 일이다. 잘 포장된 말로 '해외마케팅, 수출지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해외마케팅'을 한다고 스스로를 설명하면서도 직접 내 물건을 파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수출 실무를 하는 것도 아니라, '무역(trading)'의 tra의 어디쯤에 있는 뭔가를 시도(try)는 하고 있지만, 직접 판매되는 실제과정(ing)은 단 한 번 본 일 없는 나의 이 오랜 일을 설명하는 것은 진작 포기했다. 무역을 하신 아버지는 내가 한 편으로 무역 일을 하길 바라셨는데, 그 비스무리한 데까지는 갔다고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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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하나로 정의할 수 없음에 구태여 자랑스럽게 설명하자면, 의뢰가 들어오면 의뢰자의 제품을 파악하고, 그 산업을 이해하며, 의뢰인이 제품을 팔고 싶어하는 나라 또는 그 제품이 잘 팔릴 것 같은 나라를 선정해서 그 나라의 산업과 시장과 바이어 정보를 조사하고, 누구보다도 먼저 그 나라를 방문해서 현지 바이어를 만나고 의뢰인의 제품을 설명하고 그들(의뢰인과 바이어)을 위한 '상담회'라고 불리는 행사를 그 나라에 개최한다.

IMG_20180705_165722.jpg 상담회

'구태여 자랑스럽게'라고 언급한 부분에서 이미 조금은 알아차렸겠지만, 꽤 이 일에 소질이 있고 나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일선의 상사맨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전문가로서 자부심이 높다는 점을 미리 알려주고자 한다.

IMG_20180706_143244.jpg 현지시찰

이 일을 잘하기 위한 덕목이라고 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계획은 언제든지 틀어진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며, 돌발상황은 수없이 발생하는데 모든 상황은 직접 해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체력이 좋거나 정신력이 좋아야 하겠고,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해보는 집요한 끈기는 당연한 것이고, 한 번의 만남으로도 신뢰를 쌓을 수 있어야 하고, 나를 기억하게 해야하며, 그가 안된다면 그의 경쟁사 임원 연락처라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하게도 인도식, 동남아식, 중동식, 아프리카식 온갖 영어는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대화가 가능하겠다.

IMG_20180607_080003.jpg 나만의 조식 습관이 있다. 꿀은 필수. 어딜 가든 항상 찾는 건 계란과 꿀 그리고 치즈다.

그 외에도 전 세계 5성급 호텔과의 조율, 현지 활동을 위한 여행사로서의 덕목, 빠듯한 예산을 활용한 가격 조정, 현지 에이전시와 가이드 관리, 말도 안통하는 현지 기사에게 나도 처음인 길을 손짓 발짓하며 안내하는 길잡이, 누구보다 빠른 걸음과. 내 몸보다 큰 짐을 옮기는 능력 또는 작은 몸뚱아리를 강조하여 동정심으로 얻어내는 도움이라도. 뭐든 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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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출장이 있는 상담회 때는 최소 5성급 호텔에서 묵지만, 이렇게 혼자 조사를 나올 때면 그런 일은 없다. 현지 충실 모드.

그뿐인가, 저 나라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더라도 내 나라 사람들을 놓쳐서는 안된다. 기대치를 높여서도 안되고, 너무 낮춰서 중도 취소를 하게 해서도 안되는데, 우리가 안고 있는 위험부담을 서로가 적절히 공유해야한다 것, 즉 공동책임에 대한 부분도 은근히 주입해놔야 현장에서 탈이 없다. 이 탈이 없다는 것도 불만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언성을 높이고 환불을 운운하며 소란을 피우지 않는 것. 그것이 탈이 없는 것이다. 어차피 현장에선 우아한 욕받이 신세일 뿐이니까.

IMG_20180706_165300.jpg 어딘가 무서운가? Nope. Just a factory tour
IMG_20180706_165052.jpg 아는 사람만 아는 귀한 자산

그러니까, 내 자부심이 무색하게도 내가 몸 담은 이 사업엔 성공이란 없다. 오직 '연결'만을 하는 그 과정엔 '불만족'과 '침묵'만이 있을 뿐이다. 만약 '시끄러움'이 생긴다면 그것이 실패의 증거이다. 그래서 내겐 '침묵'이 성공이다. 좋은 거래처를 소개받았다고 해서 그가 좋은 공급자이라는 보장이 없고, 거래처와 공급자의 케미(chemistry)는 남녀 궁합과 다를 바가 없기도 하거니와 운좋게 서로 좋은 사이가 되었다고 해서 알려지면 경쟁만 높아지는 그 소중한 정보를 오픈(open)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IMG_20180606_161054.jpg 이스탄불 한복판. 이 땐 그저 이곳이 터키임을 보여주는 장면에 심취했던 것 같다.
IMG_20180606_160813.jpg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네온사인을 찍는 감성으로

재밌는 것은 이쯤부터는 기업들이 자신들의 바이어를 방어하기 위해 우리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The Erica가 시장에 들어갔다고만 하면 자신들의 거래처를 꼭 찾아내서 다른 기업에게 연결해버리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자기들 거래처를 밝히지 않고 참여하던 우리 기업들이 아마 이즈음부터는 나에게 필사적으로 자신들 바이어 정보를 노출하면서 보호를 희망해왔다. (과장 20000%는 그저 재미를 위한 것임을 이해해주시길)

IMG_20180606_173020.jpg 케밥 식당 맞은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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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의 흔한 케밥집

외국에선 아마 이런 일이 엄청난 돈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 모든 것이 사적인 브로커일이 아니라, 매 년 실시되는 나랏일이라 수수료도 없다.


그러니까 오로지 내 눈으로 직접 본 실체가 있는 가능성 있는(potential) 진성 바이어를 선별해서 당신들에게 소개한다는 그 자존심 하나 붙잡고, 여러분들의 '침묵'하나에 기뻐서 내가 이 일을 했다는 것을 알아달라.

IMG_20180607_133256.jpg 터키의 피자 '피데'를 좋아한다.

구구절절 이런 이야기를 주절거리는 것을 이해해달라.

앞으로 할 이야기에 초석이 없다면, 아마 나의 울분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나는 나의 슬픔을 이해받고 싶다. 오직 그 하나의 이유로 얼토당토 없던,

인생에서 송두리채 지워버리고 싶은 그 날 밤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IMG_20180705_203014.jpg 기업 담당자 한 분이 사주신 기념 자석. 당연히 아직도 가지고 있다.

어린나이지만, 25살 첫 일의 시작부터 나는 숯한 실패를 목격하고 불만족을 마주하고 침묵을 경험했다.

만 4년이 지나, 2018년 카타르와 터키를 오가며 또 한 번의 '수출 상담회'를 했던 것이다.

(이 당시 나는 한 달에 2주 꼴로 해외를 오가고 있었다)


카타르 도하에서의 행사는 작년 이후 2번째 였기에 이미 4번의 방문을 마치고 난 후라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게다가 카타르는 알아주는 수입국이기에, 한국 제품에 관심이 있었다. 이미 주요 기업은 한국 제품을 쓰고 있기도 했다. 터키는 처음이었지만,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유럽의 중국이라고도 불리는 터키는 제조국이기에, 당연히 우리나라 물품이 들어갈 틈이 크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한국 제품, 특히 한국 부품을 취급하는 기업들을 찾아내는 성과가 있었고, 기존 거래처의 유지 차원에서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상황이 펼쳐졌다.

IMG_20180607_205353.jpg 혼밥이 익숙한 29살의 일과 후 호텔에서의 저녁 (결코 멀리 나가지 않는다)

조용했다. 당연히 만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용했다.

일주일간 카타르 도하와 터키 이스탄불을 오가며 치뤄진 두 차례의 상담회는 조용히 막을 내렸다.


개인적인 이유로도 이번 행사는 마음에 들었다.

이 일을 하면서 목표가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산업이 계속 바뀐다.

건설기계, 공작기계, 농기계, 동물약품, 스마트기기, 로봇, 안경, 뷰티, 상하수도, 가구 등

산업에 대해 조금 알게 되나 싶으면 바뀌곤 했다.


그래서 한 가지 산업에서 두 번 이상의 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대표의 기존 거래처가 아닌 신규 거래처에서 말이다.

IMG_20180606_164314.jpg 시장조사 도착 1일차, 아마 일요일이었으리라.
IMG_20180606_161537.jpg 소피아성당 앞

그리고 그 꿈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2017년 카타르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 출장의 마지막 밤은 나에겐 뜻깊었다.

아무 문제 없이 조용히 치뤄진 행사, 같은 산업에서 두번째로 이어진 프로젝트, 총괄 담당자를 바꾸지 않는 조건으로 진행된 것까지 모든 것이 나에겐 만족스러웠다.

그만큼 자부심이 목 끝까지 차올라있었다.

그러니까, 그 순간

호텔 1층, 가벼운 술자리에서

한 업체의 담당자가 '강과장은 사람을 보면 왜 이렇게 인사를 안하나?'는 말에

나는 황당했던 것이다.

모두가 함께 둘러앉아있는 그 곳에서 29살의 나는 이 '돌발상황'에 '해결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너스레를 떨며 '어머, 제가 인사를 안드렸던가요? 어떻게, 다시 인사드릴까요?' 하면서 나는 승무원식의 인사로 받아치기를 선택했다. 유쾌하게 그저 가볍게 넘어갔으면 했다.

마케팅 회사의 대표 입장으로 참석한 지금 고작 '인사' 하나로 고개를 숙일 수는 없었다.


'꼭 젊은 여자들은 이런 식으로 고집을 피운다니까. 내가 들은게 있어. 몇 년 좀 했다고 벌써 초심을 잃었어. 내가 조금만 보면 다 안다고. 그러면 안돼지, 안돼.'


이성의 끈은 참 쉽게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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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그 나라의 아트마켓을 가봐야 한다고 말한다. 눈에 들어오는 그림은 사도 된다고 전한다. 그 누군가 덕에 나는 아주 조금씩 잠시의 틈을 즐기게 되었다.

그 어느때보다도 평온한 마무리 자리였기에 그 어떤 대응도 더 이상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전부라, 억울함이 분통으로 터져나왔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며 나와 미리 국내기업 담당자들 관리 전략을 짰던 기관 담당자와의 전략이 있었다.

나는 까다로우신 여사장님과 방을 같이 쓰며 심기 상하지 않게 챙기기로 했고

기관 담당자는 나에게 '인사'를 들먹인 이 주정뱅이 이사를 전담 마크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나는 이 사람에 대해 그 어떠한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는데, 갑자기 폭탄이 터지듯이 나에게 침을 튀기기 시작한 것이다.

IMG_20180707_104725.jpg 소피아 성당 내부는 처음 들어갔을 때,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오열을 하고 싶은 처절함을 느꼈다. 그 때의 감정과 이 밤의 감정은 다른 듯 닮아있다.

수많은 생각이 떠오르면서 머릿속이 터져나갈듯이 가득찼다.

'내가 인사를 안했나?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이 사람에게 불손하게 대한 적이 있나? 다른 사람 신경쓰느라 생각도 안했는데'

'나에게 관심갖고 주시하고 있었나? 우리의 전략에서 이 점을 놓쳤었나보다'

'농담처럼 넘어간 게 화근인가? 그냥 제대로 사과를 하라는건가? 그건 말도 안되지.'

'내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건가? 누구보다도 제대로 일하고 있는데?'

'여자라서 무시한거 같은데'

'초심? 도대체 무슨 말이지? 그와 나는 초면인데'


결국 과부하가 된 머릿속 생각은 입으로 터져나왔고 한 번 터지는 순간 겉잡을 수 없게 번져나갔다.


목 끝까지 차올랐던 자부심이 끝내는 울분으로 쏟아져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울면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목소리는 떨리고 눈물은 흐르고 억울함이 성을 내고 있었다.

IMG_20180707_110613.jpg 쓰임에 따라 나를 드러내기도 가리기도 하는 성당의 모습이 왜 그토록 가슴 저렸는지

다음 장면은 도망치듯이 화장실에 와서 폭발하듯이 울고 있는 나의 모습이라,

무엇을 얘기하고 뛰쳐나왔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되짚어보면

성공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무난하게 행사가 치뤄져서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인사' 하나로 무안을 주는 것에 대해서 억울함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내가 이 일에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얘기한 기억이 난다. 사람 단단히 잘못 보셨다는 식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기관 담당자는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대신 다른 기업 '이사'에게 중재를 요청하며 그에게 자기 일을 미뤘다. 함께 있던 다른 젊은 '이사'님이 정확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주며 '업체 담당자'를 나무랐다. 옆에 있던 여자 '차장'님은 나를 달래주었다. 감사함으로 깊게 기억하고 있지만, 당시의 나에겐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스물아홉의 나였다.

1530866696173.jpg very 유명한 소피아 성당

정말 벼락같은 밤이었다.

똑똑한 강과장은 사라지고 이십대 여자애가 뿌엥하고 울고 있었다.


한참을 화장실에 서서, 마음을 정리해보려 애썼다.

미숙하게 떨어지는 눈물을 멈춰내고 싶었다.


처음엔 '이 딴일 내가 진짜 다시는 안 한다'라는 생각으로 시작된다.


그저 그런 분노.

그리고 시작된 분석.

갑작스런 반성.


'내가 정말 초심을 잃었던가.'


다시 감정.

그래도 지금까지 중에서 이번 행사가 정말 잘 되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였는데,

칭찬은 커녕 인사 안했다는 중학교 일진식의 괴롭힘이라니..

억울했다. 허망했다.


울고 싶지 않았고, 눈물은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화장실을 나가기 싫었다. 수치스럽다. 누가 나를 좀 지켜줬으면 좋겠다. 이 문을 나서서 내가 해야할 현명한 태도와 방법을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나는 혼자였다. 내가 해내야만 하는 거짓말 같은 현실이었다.


정말 내 인생 최악의 밤이었다.


더 최악인 건, 그 와중에도 이 모든 순간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다시 지옥같은 그 자리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괜찮지 않았는데, 괜찮은 척을 하면서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는 것이다. 그 땐 내가 괜찮은 척을 하고 분위기를 바꿔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양해를 구하고 서둘러 방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배웠다. 모든 것이 끝나고 드디어 방에 돌아올 수 있게 되었을 때, 홀로 앉아 한참을 울었다.


'초심'이란 단어는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되었다.


'초면'이었던 담당자에게 '초심'을 지적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5년 간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왜 나에게 '초심'을 이야기해야 했을까?

그리고 나는 얼마나 더 '초심'에 머물러야, '초심'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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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의 내가 하는 일들은 대부분 이랬다.

과도하게 애써야 했고,

어떻게든 잘 해내야 했고,

<무조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지겹게 들었다.


나는 왜 이 일을 했을까?

나는 만나는 담당자분들이 사실 다들 좋았다.

무섭기도, 어색하기도 했지만 나보다 오래 살아오신 어른의 다정함과 점잖음이 좋았다.

솔직하고, 똑똑하고, 경제적이지만, 친절하고 인간답게 반겨주는 타국에서의 새로운 인연이 꽤 유쾌했다.

아무것도 아닌 사이에서 인연을 이어주는 것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내가 발견하고 직접 가보고 이야기 나눠본 그에게 내가 배운 것을 설명하고, 결국 또 다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그 모든 과정을 꽤나 사랑했다.


정말 잘 했냐고? 모르겠다.

잘 해낸다는 게 있을 수 있나?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고만 하자.

나의 최선이 세상의 최선은 아니었다고 해도 좋다.


결론은

나는 '초심'이 없다.

항상 '진심'이었으니까.


매 순간 끔찍하게 살아냈고

그 순간 거의 모든 것을 사랑했는데,

모두를 만족시키겠다고 너무나 애썼는데,


정작 나를 만족시켜주진 못했다.

정작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이어지는 모든 이야기는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 벌어진 최악의 날들이라고나 할까?

IMG_20180606_172334.jpg 눈 하나 달린 고양이가 너무 좋아서 꼭 함께 찍고 싶었다.
IMG_20180606_151349.jpg one man show
IMG_20180607_202148.jpg 이스탄불이 처음인 a young girl


모든사진. 강혜영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