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시작해야될까?'
잠시 기억을 되돌리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그 날의 모든 것들에 압도당하는 듯 말문이 막힌다. 머릿속에선 온갖 감정과 생각, 감각, 그리고 시선이 소용돌이 친다.
해외 바이어 500명 방한 초청과 동시간 대의 500명 매칭 상담회 운영과 바이어 관리의 총괄이 되었다.
업무 경력 2년 반, 대리일 때의 이야기다. 직전 년도에 바이어 200명 및 VIP 관리 총괄을 무사히 마친 직후 였다. 그러나 작년 손님들은 대부분 소그룹으로 묶여서 함께 왔기에 한 명 한 명을 신경쓰는 업무는 아니었다. 개별 바이어 500명이 한 번에 공항으로 몰려들고, 그 모든 분들을 놓치지 않고 챙긴다는 것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무조건 놓치는 일이 생기겠군'하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그렇다고해서 두렵거나,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감정에는 일체 관심주지 않았다. '일'에 있어서 나 하나의 개인적인 감정은 내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일이 있으면 해야하는 거였고, 그것이 무언가를 이겨내야 하는 거라면 이겨내고, 무시해야 하는거면 무시하는 거였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두려웠고 무서웠지만 그러한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 구석으로 우겨넣었고, 그보다 중요한 내게 주어진 문제와 역할에만 집중했다.
이 때의 나는 '명상'의 'ㅁ'도 모를 때다.
2년 후에야, 내가 내 감정을 속박하고 떠오를 틈도 주지 않아서 곪아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러니까 사실은 터키에서도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내가 눌러온 압박이 '그 사람'을 계기로 터진 것이었으리라.
다시 돌이켜 생각해도, 준비의 과정에서 나는 참 똑똑했다(건방진 저를 용서하시길, 반전이 있을테니). 이번 클라이언트는 수재들만이 모여있는 것으로 유명한, 소위 SKY가 아니면 뽑지도 않는다는, 뽑혔다해도 내부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들이 무성한 대단한 - 나 또한 한 때는 잠시 꿈꿨던 - 공사였다.
(소문은 소문일 뿐 사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 시기 나의 직업 만족도는 최상이었다. 주로, 국가기관을 상대하는 일이다보니 내 회사 내에서 누군가에게 배우기보다는 나는 클라이언트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클라이언트 한 분씩 일을 할 때마다, 나는 그 회사에 가지 않아도 그들의 조직 체계를 배우고 업무 스타일을 익힐 수 있었다. 이 당시 나는 작은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큰 회사에서 여러곳에서 일하는 값진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직접 소통하는 업무 담당자는 최소 과장급 이상으로 10년 이상의 사회경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사회생활 첫 시작부터 나는 대부분 임원급 분들과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나이 어린 상사였고, 또래 소통의 기회는 업무지시를 내릴 때 빼곤 거의 없었다.
특히, 이번 클라이언트와의 업무가 만족스러웠던 것은 모두가 명석한 사람들이어서 진행 속도가 빠르고 합리적이고 위기 대응이 참신하고 적극적이었다는 점이었다. 그 와중에 더욱 행복했던건, 그 모든 어려운 대화를 내가 따라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전략과 추진방향을 나는 모두 기억할 수 있었고, 새로운 의견이 필요한 순간 그들이 수긍할 만한 솔루션을 제시해냈고, 나를 향한 그들의 인정어린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합리적인 일처리 방식, 조직이 주는 소속감, 그 안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나를 충만하게 했다. 그곳에서의 회의는 정말 긴장되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클라이언트쪽 팀장의 인재육성 지침 덕에 함께 부딪히는 모든 담당자가 비교적 나의 또래였다는 점이 특히나 나를 즐겁게 했다. 주로 나의 동료가 40대 누군가의 엄마 또는 아빠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27살의 내가 얼마나 또래와의 대화에 목말랐을지,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외부의 업무 교류와는 상반되게, 우리 회사 내부에서는 모든 게 쉽지 않았다.
총괄 PM이었던 내 밑에서 업무를 하는 사원들은 최근에 입사했는데, 둘 다 나보다 한 살이 많다는 이유로, '언니'를 들먹이며 개인 사생활에 조언을 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MZ라는 말이 없었을 그 때, MZ스럽게 점심은 자기들끼리 도망치듯이 먹으러가서 13시가 될 때까지 주변 카페 투어를 즐기다가, 대표님 식사 대용으로 김밥이라도 사다 달라고 부탁이라도 할라치면, 점심 시간은 개인적인 시간인데 왜 그런 것을 해야하냐며 따져댔다. (기억하시나? 라떼는 직원들 모두가 같은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했다. 게다가 대표님 갱년기 약도 시간 맞춰 챙겨드리던 나는 아주 대단한 젊꼰이었다.)
또 한 명의 남자 대리는 30살이었는데,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를 높였다. 착한 웃음을 지으며, '넵, 넵' 하며 순종적이었다. 너무 순종적인 나머지 신입 사원들은 그가 일을 시키면 아예 하지를 않았다. 느린 말투 만큼 일도, 생각도 느렸다. 아마 그가 더 잘 하는 일은 따로 있었던 것 같다. 변동사항과 위기 가득한 기획/운영 업무는 그에게 맞지는 않았다.
그러고나면, 사람이 없었다. 대표님도 위기감을 느끼면서, 긴급하게 젊고 똑소리나는 계약 직원을 고용했는데, 그녀는 정말 최악이었다. 너무 똑똑하고 당찬 나머지, 대표는 PM인 나조차도 그녀의 지시를 따르게 했고, 그녀는 더욱 기고만장해졌지만,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다.
계획은 완벽했다. 실행은 엉망이었다.
그리고 나는 27살. 고작 경력 2년 반의 총괄이었다.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모든 것을 잘 기획했고, 할 일을 적절히 분담했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을 교육했다.
심지어, 공사 담당자와 서로의 안부를 전할 만큼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 후부터의 일주일은 나에겐 문자 그대로 지옥이었다.
첫번째, 신입사원 Y는 수출상담회에 참여하는 전체 기업 도록을 제작 하고 있었는데, 엑셀로 정리하고 있던 중 수식을 잘 못 건드리면서 지금껏 정리한 순서가 모두 뒤집혀 버렸다. 넘버링과 기업명, 영문명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날 밤 우리는 함께 밤을 새며 모든 것을 다시 수정해야만 했다.
두번째, 신입사원 J는 공항에서 해외 바이어 도착시 체크하는 업무를 맡았다. 전 날, 노트북을 가져가더라도 현장에서는 검색하면서 찾을 여유가 없으니, 반드시 바이어 리스트를 출력해서 가져가라고 당부했다. 바이어가 들어오는 첫째 날, 그녀는 나에게 자꾸만 도움을 요청했고 요청사항이 말도 안되길래 따졌더니 그제서야 자신이 출력물을 깜빡했다고 실토했다. 주변 프린터기를 활용해서 출력할 생각을 신입사원인 그녀는 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나는 코엑스로 넘어갔어야할 시간을 놓쳤다.
세번째, 사원 H는 호텔에서 바이어가 체크인하는 것을 실시간 공항과 소통하며 대조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호텔 담당자 측과의 소통 미스로 확인 과정이 복잡해졌고, 불필요한 일을 반복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느려졌다. 공사에서는 바이어 입국 및 체크인 현황을 실시간으로 요청했는데, 너무 더뎠다.
네번째, 행사장 세팅을 해야했는데, 내가 늦고 있었기에 남자 대리에게 부탁을 했다. 나의 조건은 최소 00시에는 세팅을 시작해야만 한다는 지시였다. 우린 제한된 시간 안에 테이블 세팅 500개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현장에 도착했더니, 세팅은 아직도 시작 전이었다. 우리는 결국 코엑스 추가 사용 요금 백 여 만원을 내야만 했다.
그 뿐인가, 사람이 부족해서 어이없게도 나는 '춘천'에 살고 있는 내 친구 2명을 불러냈다. 그리고 그들만이 유일하게 끝까지 나의 사원이 되어 주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섯번째, 출입증 발급 업체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500개의 바이어 명찰을 목걸이와 패찰, 종이를 따로 줬다. 더 충격적인 건, '바이어'라는 표기도 따로 껴넣어야 되는 형식이었다. 22시에 모든 세팅을 마친 후, 우린 명찰까지 조립해야 했다.
여섯번째, 우리의 바이어 체크가 늦어진 순간부터 불안해진 공사 담당자들은 우리에게 '성'을 내기 시작했고, 성미로는 절대 지지 않는 우리 대표님은 두배의 '성'을 내면서 당장 철수하겠다고 협박하여 담당자를 울고 빌게 했다. 마지막 체크가 끝났을 때, 바이어들은 모두 잘 호텔에 체크인을 한 상태였다.
일곱번째, (아마도) 굉장히 화가 난 클라이언트는 우리에게 앙갚음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바이어들이 코엑스를 찾아오지 못할 것 같으니 '인터컨티넨탈'에서 '코엑스'까지 오는 길을 표시한 약도를 출력해서 방마다 하나씩 종이로 넣어주라는 요청을 했다. 약도 내용도 컨펌을 받아야 했다. 23시에 컨펌이 끝났고 24시에 출력이 끝났다. 호텔은 업무가 끝나서 인쇄물을 직접 넣어줄 순 없다고 답변이 왔다. 그말인 즉슨, 우리는 호텔에서 룸리스트 500개를 받고 일일히 방 문 틈새로 인쇄물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FYI 두 개의 인터컨티넨탈 호텔은 코엑스에 거의 달라붙어있다시피 하다.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러니까 사실은 말도 안되는 요청이고 억지고 복수였다.
사원 H는 호텔체크가 끝난 후, 집에 갔다. 사원 Y는 내일 본인이 맡은 개막식 행사를 잘 하기 위해 잠을 자야 한다며 집에 갔다. 대표님도 피곤하다며 명찰을 넣으며 피로를 견디다 도저히 안되겠다며 긴급히 떠났다. 남자 대리는 이미 아까부터 사무실 소파에 누워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이미, 나는 3일째 밤을 새고 있는 상태였다.
남자 대리를 깨웠다. 내 친구들을 포함해 우리는 5명.
종이 500장을 서로 나눠들고
룸리스트를 서로 나눠들고
우리는 하나씩 방 틈 사이로 종이를 밀어넣기 시작했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따위의 질문은 의미가 없다.
고객이 원했고, 끝내야만 끝이 난다.
종이를 넣으려면 문 바닥으로 슬슬 밀어넣어야 했는데, 넣기 위해서는 '무조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무릎을 꿇어야 했다. 각자 100번의 무릎을 꿇었으리라.
진정한 하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눈 앞에, 저 문을 지나면 곤히 자고 있을 귀한 손님께
그들이 실제로 볼지 보지 않을지도 모르는 종이 한 장을
또 다른 귀한 분이 그저 못찾아올까봐 걱정되서 그런다는 한 마디에
우리는 들키지 않게 조용히
특5성급 복도의 푹신함 위에
우리는 백 번의 무릎을 꿇는다.
동작이 주는 힘인가, 마음마저 공손해진다.
이런게 하인의 삶이었을까?
주인의 한 마디에 모든게 뒤바뀌는 것 말이다.
그렇게 끝났으면 좋으련만, 놀랍게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엄청난 배움
2016년 27세 강대리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