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오롯한 감상, 침묵 속 내면의 오케스트라

다 : 차

by 애리

파주에 왔다. 그냥 집으로 향하기는 아쉬운 시간 오후 네시. 게다가 곧 차도 밀릴 시간이었다. 아트페어에 참가한 지인을 잠시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 때 문득 머릿속을 스친 곳은 '혼자이기에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곳' - 카메라타 황인용 뮤직 스페이스 -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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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에겐 잠시 숨돌릴 곳이 필요했다. 너무 많은 낯선 사람들을 순식간에 봤던 탓일까, 지나가는 가벼운 초대였는데 가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에 무겁게 여겼던 탓일까, 충만함 보다는 소진된 마음에 가까웠다. 어수선해진 내 마음을 가라앉힐 명상적인 공간이 간절해졌고, 단 10여 분만에 도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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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0원에 음악과 전시 관람, 음료가 포함이다. 헤이리 예술 마을 내에 있어, 주차는 무료. 건물 바로 앞 쪽에 주차 자리가 있어서 편하게 들어올 수 있었다. 힐링이 긴급했던 나에겐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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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잡았다. 혼자인 내게 딱인 자리가 남아있었다.


2평 남짓의 공간인데, 유일하게 중간벽이 쳐져있어서 내 앞에는 콘크리트 벽과 작품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위에는 창이 드리워져 자연의 빛과 떨어진 나뭇잎과 가지가 우연한 멋을 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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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으로 살짝 고개를 돌리면

또 다른 자리들, 벽에 걸린 작품들, 웅장하고 거대한 스피커가 보인다. 그리고 매 번 음악이 바뀔 때마다, 레코드판 표지와 음악가와 지금 울리는 곡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는 보드를 읽을 수 있다.


눈치채셨는가? 그렇다. 이곳은 오로지 <감상>만을 위한 공간이다.

시야에 들어오는 아름다움과

귀에 흘러오는 웅장함을 매 순간 놓치지 않고 느끼고 맛보는 것만이 허락된다.

(이곳에선 아무도 입으로 대화하지 않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격렬한 내적 소란이 일어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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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커피를 하고 온 터라, 따뜻하고 건전하게 나를 위로해 줄 '맛'으로 보이차를 골랐다. 티백 보이차는 처음이었다. 충분히 감미로웠고, 따뜻한 보이차가 목을 타고 내 마음에 닿아, 안온하에 나를 덮어주었다. 숨 돌릴 지금의 여유를 선택한 나에게도 감사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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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온전히 받아들여보면,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회 속에 들어와있는 듯 하다. 그만큼 풍성하고 명료하면서도 깊이있는 음색을 느낄 수 있다. 넉넉한 시간을 계획했더라면, 어쩌면 몇 시간을 앉아있어볼 만 하다고 생각했다.


활자중독답게, 매일 한 권 이상의 책을 넣어가지고 다닌다.

나는 이곳에서 눈으로 행복을 읽고, 입으로 평온을 마시고, 귀로 풍요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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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카메라타는 조병수 건축가가 설계한 노출 콘크리트에 목재가 조화를 이루며 가장 단순하고도 오로지 음악을 위한 원초적인 공간이다.


오롯이, 나 홀로.

나와의 대화가 필요할 때, 이곳은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나만을 위한 명상 공간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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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곳에서 '빠키(VAKKI)'작가의 전시를 만났다. 지난, 키아프(KIAF)와 방금의 아트페어에서도 보고온터라, 반가웠으며, 이제는 눈에 익어 버렸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후속으로 남겨보려한다.

(언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링크를 달아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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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1213_212007269_25 (1).jpg 2층 전시전경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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