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입 안 가득 얽히고, 혀 끝에서 스며드는

다 : 차 / 운비차실

by 애리

첫 경험의 순간은 언제나 그렇듯 불안과 기대, 긴장과 설렘이 절묘하게 엉기어 어느 순간 두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오늘, 수 없는 첫 경험의 하루를 보냈다. 커뮤니티 입회를 위한 인터뷰를 하다가, 인터뷰어에게 '간택' 당해버렸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던 그녀는 내게 개인적인 만남을 제안했다. 단 15분 간의 인터뷰 속에서 공통점으로 연결되고, 신선함으로 흥미로워진 것이다. 그녀의 용기에 끌려, 나도 수락했다.


"저는 노란색 패딩을 입고 있어요."

블라인드 데이트 마냥, 혹은 당근 거래 하듯이 실물로 본 일이 없는 서로가 만났다.

KakaoTalk_20260220_224240334_17.jpg 우리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났다. 운 좋게도 도슨트도 들을 수 있었다.

만남의 장소는 서울시립미술관

작품을 매개 삼아, 서로를 맞춰보고

다음 장소 이동을 핑계 삼아, 발도 맞추며 서로의 이슈를 나눴다.


잠시 사이, 약속한 바는 없지만, 오늘 나누었어야했을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왔고, 도착할 즈음 오늘 나누었어야 할 모든 이야기는 모두 교환되어 제 역할을 끝냈다.


도착한 곳은

#운비차실

차를 좋아하는 우리가 몇 차례의 인스타그램 DM 끝에 정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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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티하우스 <운비차실>

첫 만남을 위한 필수 조건을 충족시켜주었던 티하우스였다.

V 기다림이라는 어색한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사전 예약'

V 오마카세 티 코스이지만, 부담되지 않는 '비용'

V 소재가 끊이지 않을 수 있는 적절한 '콘텐츠' (추임새?)

V 지루하지 않지만 너무 짧지도 않은 코스 시간


사전예약은 인스타그램 @tollguy7 운비차실 사장님께 DM으로 했다. 생각보다 빠른 답변, 적절한 시간이었기에 몇 군데를 찾다 이 곳으로 결정하였다. (생각보다 서울시립미술관 근처에 티하우스를 찾기가 어려웠다. 혹시 좋은 곳을 알고 있다면 바라건대 댓글에 남겨주시길 간청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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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은 소박한 호프바 감성인데, 가파른 계단을 살짝 올라가니, 아늑한 찻집이 나를 감싼다. 테이블은 딱 2개.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단골 손님들께서 황급히 자리를 옆으로 옮겨주셨다. 익숙한듯 말이다. 금요일. 평일이었지만, 그래도 우리 2명이 머물 자리가 있다는 것에 다시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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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들어서자마자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상장'이었는데, 기이하게도 차와 관련된 상이 아니라, '판소리

국회의장상이었다. 취미로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이제 대통령상만 남았다는 주인장의 이야기 속에서, 무언가에 빠지면 지독하게도 제대로 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판소리 상장을 보면서, 주인장이 내어 주시는 '차'의 품질에 무한 신뢰가 간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기이한 믿음'에 기대어 차를 즐기기 시작했다.

image.png 운비차실 네이버에서 데려온 메뉴판

우리는 <차왕별희> 를 주문했다. 5종류의 차를 순서대로 맛보는 코스다. 다식과 함께 나온다. 좋은 경험은 언제나 다음을 기약하지만, 경험 상 '다음'은 항상 그 끝이 미약하다는 것을 이젠 안다. 그러니, 차왕별희를 마셔보자. 나의 다음 일정으로 인해, 두 시간 밖에 머물지 못하기에 조금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지만 두시간을 지내보니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주인장이 정말 '기가 막히게' 두 시간을 잘 맞춰서 코스를 끌어주었고, 이 역시 의도된 바가 있었기에 믿음이 더 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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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보이숙차, 이무정산 2022년

겨울에 잘 어울리는 보이차로 시작되었다.

날씨가 생각보다 따사로웠지만, 그래도 여전히 흐린 날씨와 바람불면 매서운 공기를 30여분 맞고 온 탓에, 열심히 걸어서 살짝 땀이 나기도 했지만 몸 기운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래서 더 몸을 녹여주는 보이차를 즐길 수 있었다.

KakaoTalk_20260220_224240334_11.jpg 다식도 함께 내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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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300년 이상의 고수에서 나온 잎으로 만든 백차

일반적인 백차와는 맛이 다를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다. 처음 맛보는 백차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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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는 광동 우롱, 봉황단총

오동산 송종으로 만든 차로 향이 깔끔하고 단백한 맛이 난다고 한다.

이쯤에서 결심하게 되는 건, 앞으로 차를 마실 때는 간단한 메모를 남겨야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일 순간에 사라져버렸다니. 감탄했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봉황단총을 보고, '통천향'이 난다고 한단다. 하늘을 뚫는 향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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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는 이싱 홍차.

내가 맛보지 못한 홍차 맛을 느꼈다.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홍차의 맛은 아닌데, 전혀 새로운 장르의 맛이 났다. 이싱은 중국이 차도구인 자사호를 제작하는 지역으로 유명한 곳이란다.


다섯번 째는 무이산 노총 수선이었다. 암골화향이라고도 표현하는 수선은 암석에서 어렵게 채취한 차로 부드러운 꽃향이 특징이다. 그리고 마무리로 자스민 녹차. 입을 깨끗하게 헹궈주는 산뜻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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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서 함께한 대화는 차를 알아가고, 서로에 대한 힌트를 얻어가는 자리였다.

엄밀히 보면, 이 찻자리는 모두의 '취미생활'이었다.

취미의 깊이 차이가 있을 뿐, 좋아하는 마음은 통했다.


깊은 취미를 가진 다는 것, 목표를 정하지 않고, 그저 즐기다보니 계속되어 깊어진다는 것.

모든 이야기들이 언제나 그렇듯이, '지금, 이 순간' 참 필요한 이야기들이었다.


좋은 취미를 가진다는 것은

좋은 삶을 이어간다는 것

나를 잘 가꿔준다는 것으로 읽힌다.


미약하다고 했지만, 희망 가득한 '다음'을 예정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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