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지금 여기서 살아 숨쉬는 : 티노 세갈

삼성 리움미술관 - 티노 세갈 기획전 '26. 3. 3 ~ 6. 28

by 애리

조각이 바라보는 가운데, 인간은 바닥에 딱 붙어 작품이 된다.

그리고 그 작품은 관람객고 조응하며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살아있는 예술이 된다.


움직이고, 살아 숨쉬며, 관람자와 교감하는 티노 세갈의 예술은 'flow'

작품은 끊임없이 흐르고, 보는 이도 그 속으로 함께 흐르게 한다.


이 공간, 이 순간 나는 '자유'와 '애착'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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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지금 여기서 살아 숨쉬는 예술

안무와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티노 세갈(1976년 런던 출생)은 어떠한 기록이나 물질적 오브제도 생산하지 않는 비물적 작업을 전개한다. '물질적 대상이 없는 예술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는 신체와 언어, 그리고 관계를 매개로 형성되는 '구성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을 연출한다.


사전 정보 없이, 들어선 전시는 그 입장에서부터 '컨템포러리' 그 자체 였다. 리움미술관의 입구를 향해 발을 내딛는 그 순간,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 (2004) 작품이 나에게 달려온다. 서너명의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내가 가까워오자 환하게 웃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외친다. 'This is so contemporary! Comtempo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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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작품은 모두 숨 쉬고 움직이는 인간이고, 이곳에서 관객은 미동조차 없는 조각상이다. 입장하는 순간부터 이 공간에서 '나'라는 사람 또한 작품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인간 작품들이 다가와서 나에게 손짓을 건네고, 나는 응한다. 나를 향해 공을 차면, 나는 그 공을 받아서 같이 차버린다. 이 흐름을 우린 예측할 수 없다. 그저 나의 온 주의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바라보고, 주고 받으며, 경험하는 수 밖에는 없다.


<이 입장> (2023)에는 무용수와 바이올린 연주자, 축구 선수, 사이클 선수가 등장한다. 관객에게 다가가 말을 하기도 하고, 관객 앞에서 연주를 하거나, 공을 차고, 손바닥을 내민다. 잔잔하면서도 장난스러운 움직임과 손짓, 발짓이 이어진다. 서로 가벼운 놀이를 주고 받기도 한다. 지켜보고, 참여하고, 다시 바라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함께 노는 '유희'에 빠져든다. 어느새 절로 웃음이 나고, 놀이 속에서 자유를 얻고, 생동감을 느낀다.

image.png 오귀스트 로댕 <키스(1882)> [출처:위키피디아]

또 다른 공간으로 가면, <키스>(2002)가 재현되고 있다. 로댕의 조각품들이 한 커플을 둘러싸고 있다. 남성과 여성은 마치 오귀스트 로댕의 대표작 <키스>처럼 서로를 부등켜 안은채 바닥에 붙어있다. 조각품들은 천천히 느린 몸짓을 하고 있는 이 둘을 지켜보는 듯하다. 티노세갈의 <키스>는 로댕, 브랑쿠시, 제프 쿤스와 같은 미술사 속 다양한 ‘키스’ 장면을 재구성하는 작품으로 두 명의 참여자가 서로 밀착되어, 느리고 농밀한 사랑의 움직임을 이어간다. 밀착된 사랑. 'attachment'라는 단어로 지금 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눈을 뗄 수 없게 느린 움직임과 서로를 향한 손길과 대상 없는 곳을 향하는 시선 없는 눈길, 오직 서로에게서 느끼는 감각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감각을 따라, 감정의 흐름을 향해 모두가 같은 속도로 몰입한다.


처음에 품었던 '이것이 지금 무엇일까?'하는 물음은 이곳에서의 시간이 익숙해져갈수록 점차 흐려진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느끼는 것에 집중하니, 오히려 새로운 의미가 다가온다. 사랑이 주는 감각과 자유가 건네는 가벼움을 느꼈다.


'명상'을 한다는 것은 평가나 판단 없이, 그저 현재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의 반복이다. 티노세갈의 작품을 경험하고 있자면, 작품을 보는 동시에 그 안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나를 계속 알아차리게 한다. 예측할 수 없는 눈 앞의 '라이브(live) 아트(art)'에서 그 어떤 평가 없이 우리는 오로지 현재 이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예술은 '현재 이 순간에 주의를 두는' 명상의 가장 좋은 매개가 되어준다.


전시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세갈의 작업은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며,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다. 촬영이 전면 금지된 상황 속에서 관람객은 작품을 그저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밖에 없다. 티노세갈은 모든 것이 데이터화되는 시대에 전자 매체를 통하지 않는 예술의 본질적 의미를 재고하게 한다.


오직 관객의 기억과 경험 속에만 남게 될 이 순간들은 인간적 유대와 감각을 통해 빚어지는 예술의 가치를 인식하게 함과 동시에,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 '경험'을 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사진'을 찍느라, 두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미래를 걱정하고 과거를 곱씹느라', 현재를 살지 못하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내 삶을 경험하며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일깨워준다.


누구를 향한 시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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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면서 여러 '시선'을 느꼈다. 조각들은 모두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사람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행위예술을 지켜보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를 바라보기도 하고, 스스로 고뇌에 빠진 듯 빈 공간에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때로는 나의 움직임이 그의 시선에 닿을 때, 새로운 만남이 이뤄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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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 <캄보드> (2007-2008)

권오상의 작품 <캄보드>는 티노 세갈⟨무언가 당신 코 앞에 나타나게 놔두는 대신 춤추는 브루스와 댄 그리고 다른 것들(2000)>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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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듯, 부러운 듯, 흥미로운 듯, 무관심한 듯한 여러 시선들은 우리의 시선과도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마다 다른 시선을 보내고, 당하고, 주고 받으며 우연히 만난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교감하고 있었다.


누구나 예술이 될 수 있다.

이번 티노세갈의 작품이 되어준 존재(사람)들은 리움 미술관의 공개 공모를 통해 이뤄졌다.


ㅡ 리움미술관 공고 내용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에서 처음 선보인 ⟨This Is So Contemporary⟩는 반복되는 멜로디와 춤을 통해 관람객과 즉각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연출된 상황’입니다. 무용이나 노래와 관련된 전문 경력은 요구되지 않으며 춤을 즐기고 리듬감이 있으신 분이라면 누구나 지원 가능합니다. 연령 제한은 없으나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으신 50세 이상 중장년 분들의 지원을 적극 환영합니다.


<키스>는 두 명의 참여자가 서로를 껴안고 천천히 움직이며 로댕, 브랑쿠시, 제프 쿤스와 같은 미술사 속 다양한 ‘키스’ 장면을 재구성하는 작품입니다. 작품의 특성상 신체적 밀접함과 키스 연기가 가능한 수준의 친밀도가 요구됩니다. 지원은 반드시 2인 1조 (커플 또는 듀오)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대무용 경험이 있으면 우대하나 필수 조건은 아닙니다.


입장과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작품이 되는 것처럼, 구성된 작품 역시 누구든 가능했던 것이다.


'물질적 대상이 없는 예술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그의 질문이

'예술하지 않는 대상이 어떻게 예술로 존재할 수 있는가'로 읽혔다.


살아 숨쉬는 예술 속에서 나 또한 예술의 한 장면으로 어울리며, 오직 지금만 존재하는 예술에서, 현존하는

명상적이고 예술적인 시간이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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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정제된 글은 제가 쓴 칼럼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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