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 아트센터자인 - Monologue & Dialogue 2
우연히, 아니 필연적으로
어쩌면 자연스럽게
나는 첫 명상을 '갤러리'에서 시작한다.
아마 갤러리에서는 일반적인 명상세션을 원했으리라.
그런데 오프닝에 참석해서 작가를 만난 나는 명상에 예술을 칠하고 싶어졌다.
명상을 배우고 있는 내게, 작가의 모든 이야기는 '명상적'이었다.
마침 명상을 논하는 내 양 옆과 뒤에는 너무나도 명상적인 작품이 나보다 더 큼직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나는 작가에게서 나는 명상을 읽고 작품으로 명상을 느낀 것을 전할 수 밖에 없었다.
1월, 아직은 눈 쌓인 찬 공기가 가득한 그 날에 10인의 작가를 만났다.
저마다 자신 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그것은 독백이고,
10명의 작품이 같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서로 상호작용이 시작되었기에 그것은 대화다.
전시 <Monologue & Dialogue>는 독백과 대화의 동시성을 전한다.
그리고 명상을 하는 '나'로 인하여 이들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채움 #비움 #반복 #평정심
네 가지의 키워드로 작품이 읽혔다.
정답은 없다. 우리의 주관적인 선택이 있을 뿐.
그러니, 이것은 정답이자 오답이고, 그렇기에 해답이다.
어떤 키워드가 떠오르는가?
그대의 해답은 무엇인가?
나에겐 '비움'이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채움이기도 하고, 반복이기도 하며, 평정심을 주기도 한다.
작가는 무수한 네모를 반복하며 채우는 과정 속에서 비움을 발견한다.
네모형태를 반복적으로 그리는 데 몰입하다보면, 어느새 마음의 복잡한 것들이 사라지는 비움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30년을 섬세하고 사실적인 인물화를 그리던 작가는 어느 날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다. 그녀의 완벽함에 대한 자기비판은 끝내 붓을 들 수 없을 만큼 그녀를 압박했던 것이다. 회의감의 끝에 찾은 인도네시아 우붓 명상 여행. 그곳에서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낸 욕심'이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했음을 알게 된다. 이후, 작가는 텅 빈 종이 상자를 그려, 마음을 들여다볼 공간을 마련하고 '네모'를 반복하며 채움 속 비움을 전한다.
모두에게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잘 하고 싶어서, 잘 해내야만 할 것 같아서, 완벽하려고
선뜻 시작하지 못하는 순간들 말이다.
아주 작은 네모, 아주 짧은 선들의 반복은 우리에게 시작할 용기를 준다.
그리고 작가는 마음 속 욕심과 걱정, 고민, 불안을 마주하고 그것을 잠시 담을 작은 박스를 우리에게 건넨다.
작은 채움은 크지 않아도,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전하고
걱정과 고민을 비워내며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씩 채울 힘이 된다.
명상은 호흡을 반복하며 오로지 주의를 호흡에 둔다.
숨이 몸을 채우고 비우는 반복에 오롯이 집중을 하다 보면,
나의 시선과 감각은 오직 현재에 머무르며
자연히 마음은 고요하게 존재하게 된다.
류지수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명상의 호흡처럼, 나를 비우는 시간이 저절로 채워진다.
작가의 말 : 비움을 캔버스에 채우다
"인물 작업을 30년 가까이 하다가 느닷없는 회의감에 빠져 작업을 중단하고 아프리카 남부로 떠나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힘들어하는 제 마음을 탐험하기 시작했어요. 왜 이렇게 힘들까 생각을 하다보니, 나의 욕심에서 모든 것이 비롯되었구나 싶더라고요. 작품에 대한 무한한 욕심이 오히려 작업을 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었죠. 그 욕심을 깨닫고 나니 비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게 비움에 대한 작업입니다. 비움을 캔버스에 어떻게 옮길까 생각을 하다가 네모로 형상화 했어요. 네모를 그린다는 것은 저에게 비워가는 과정이 되었고 그것이 캔버스에 옮기자 비움으로 꽉 차게 되었죠. 어느 날은 한 컬렉터가 저의 작품을 사가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본인께는 제 작품의 빈 공간에 자신의 고통을 담으면 고통이 승화되어 사라질 듯이 느껴진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에 감동을 받아서, 그 후부터는 비움과 동시에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희망의 공간이 된다는 의미에서 빈 박스를 그리고 있습니다."
출처 : 한국미술신문(https://www.kmisul.com) 기사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