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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Nov 10. 2024

돌아가신 부모님은 임종 직전 누구를 봤을까?

부모님 두 분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들입니다.

  요즘 '삶이 흐르는 대로'라는 책을 오디오북으로 듣고 있다. 호스피스 간호사가 쓴 책으로 자신이 만난 환자들의 에피소드와 함께 자신의 삶을 적은 글이다. 보통 간호사라는 직업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일을 한다. 하지만 호스피스 간호사는 임종 직전의 환자가 고통 없이 잘 죽게 도와주는 일을 하는 간호사이다. 조금은 특별한 그 일을 하는 저자는 자신이 만난 환자에 대하여 상세히 잘 저술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환자들이 죽음 직전에 이미 죽은 자신과 관련된 사람의 영혼을 만나는 것을 알았다. 환자가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한다는 보호자의 연락을 받고 가보면 그러한 일들을 많이 목격했다고 한다. 죽은 이모가 눈에 보인다는 사람, 오래전에 죽은 두 살 딸과 숨바꼭질을 하며 집의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사람,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난 사람 등. 그렇게 영혼이 보이고 그들과 대화한 지 72시간 안에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기력이 많이 쇠퇴하고 계속 누워만 지내던 환자가 갑자기 일어나서 걷고 의식이 또렷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 모습을 보고 환자의 가족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갖기도 한다. 그러한 현상을 '회광반조'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단어가 생소하여 찾아보니, '해가 지기 직전에 일시적으로 일시적으로 햇살이 강하게 비추어 하늘이 밝아지는 현상'이라 적혀 있다. 치매환자가 죽기 직전 갑자기 의식이 뚜렷해져 주변 사람을 알아보는 일, 못 움직이는 환자가 일어나 걸어 다니는 일 등이 일어난다.


출처: 웹, wordrow.kr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하여,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나의 아버지는 만성백혈병 환자이셨다. 그 병을 진단받고도 다행히 약물치료를 꾸준히 하여 의사의 예상보다 오래 사셨다. 당시 공공근로사업에 신청하여 힘든 노동을 하며 땀을 흘리는 것이 몸의 순환을 도왔는지 평균적인 만성백혈병 환자보다 기력이 좋으셨다. 그렇게 잘 지내시다가 어느 추운 날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나서부터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지셨다.


  추운 12월의 어느 날, 응급실에서 삼일 정도를 보낸 후 병실이 생겨 입원수속을 밟았다. 몸 상태가 조금 나아져 중환자실에서 일반 환자실로 옮겼다. 저녁 시간이 되어 어머니가 우선 형과 나에게 저녁밥을 사 먹고 오라 하셨다. 병원을 나서서 주변 식당을 가려는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여온다.

  "너네 아부지, 세상 베리삐따."

  곧바로 병실로 달려가보니 이미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다. 조금만 더 있다가 밥 먹으러 갔으면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책에는 환자가 죽음의 시간을 선택하기도 한다고 적혀 있었다. 자신의 딸이 멀리서 올 때, 끝까지 죽지 않고 기다리다가 딸이 도착하여 손을 잡고 사랑한다 말하자마자 마지막 숨을 쉬는 환자, 집에서 보호자가 화장실에 간 동안 조용히 숨을 거두는 환자, 모두가 잠든 새벽에 자는 듯이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 저자는 환자가 자신이 죽는 시간을 어느 정도는 통제하여서 죽음을 맞이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형과 내가 밥 먹으러 간 그 시간을 선택하여 자신의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온 것일까? 자신의 아들이 덜 슬프도록 그렇게 죽음의 순간을 선택하셨나? 죽음 전에 엄마의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여보, 내 손 좀 잡아주오."

  "죽는다 생각하니 어떻소?"

  "무섭고 두렵구먼."

  아버지는 과연 죽기 전에 누구의 영혼을 보았을까? 어머니와의 대화에 집중하여 주변에 찾아온 영혼을 못 보신 걸까?


  그로부터 2년 후, 어머니께서 돌아가신다. 고향집이 2층 주택이었는데 계단을 내려오시다가 실족하시어 쓰러지시고, 다음날 발견되어 119 구급대원으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다. 참 허망한 죽음이었다. 장례식을 치르면서 친척어르신들이 말씀하셨다.

  "죽은 너네 아빠가 엄마를 데려갔는갑다."

  정말 돌아가신 아버지가 엄마를 데려가기 위해 계단을 헛디디는 상황을 만드신 걸까?


  계단을 내려오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계단을 헛디디는 순간 '아차!'싶으면서 몸이 균형을 잃고 우당탕탕 계단을 구른다. 땅바닥에 털썩 몸이 떨어지면서 바로 돌아가셨을까? 바닥에 엎어져 몸은 아파서 움직일 수 없는데 의식은 깨어있어 고통에 신음하다 돌아가셨을까? 정말 아빠가 데리러 와서 엄마의 영혼과 함께 저 세상으로 가셨을까? 밤새도록 차가운 땅바닥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출처: 블로그, 소신의 일상 레시피

  그렇게 나는 두 분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였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 또한 복이 아닐까? 이 책의 저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시어머니의 편안한 죽음을 챙기지 못한다.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지내다가 허리케인으로 대피하여 이동하는 와중에 급격히 시어머니 상태가 안 좋아진다. 이동하다 약을 깜박하고 냉장고에 두고 와서 어쩔 수 없이 병원을 다시 찾게 되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참 사람의 일은 알 수가 없다.


  나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본다. 교통사고나 심장마비 등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니면 좋겠다. 늙어 병들고 쇠약해져 죽음을 기다린다면 죽음 직전에 부모님이 나를 데리러 오면 좋겠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두 분을 다시 만나 뜨겁게 포옹하고 못다 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를 데리러 와줘서 고맙다면서,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떤지 물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내가 죽기 직전 영혼을 본다면, 말끔하게 차려입고 편안한 표정으로 환한 미소를 짓는 부모님의 영혼과 만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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