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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c 02. 2019

450년의 전통

Staadtskapelle Berlin

베를린에 지내면서 다른 공연을 빼먹는 한이 있더라도 꼭 챙겨보는 공연이 있다. 바로 슈타츠카펠레의 정기연주회(Abonnementkonzert)이다. 처음 그들의 정기연주회를 보고 난 후, 나는 그들의 정기연주회에 발을 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들의 음악은 아주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 다니엘 바렌보임과 슈타츠 카펠레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의 명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으로도 부족함 없이 호평을 받았고 지휘봉을 잡은 이후에도 지휘자로서 세계에서 인정하는 음악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슈타츠카펠레를 책임지고 있으며 다른 유명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자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장 자리에 오를 기회가 두 차례나 있었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리에 앉지는 못했으나 그 결과에 대해 깨끗하게 인정한 바렌보임이었다. 그래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바렌보임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출처 - Staatskapelle Berlin 홈페이지

슈타츠카펠레(Staadtskapelle)라는 명칭은 1920년대에 들어서 사용하게 되었고 그 뿌리를 찾자면 '왕립 오케스트라(Königliche Kapelle)'이다. 그 역사를 따라가 보면 무려 450년의 역사를 이어온 오케스트라인 것을 알 수 있다. 깊은 역사만큼 수많은 거장들이 거쳐간 오케스트라이고 그들의 실력은 두말할 것이 없다. 한 때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대적할 유일한 오케스트라라고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독일이 분단된 후 동독으로 소속되어 통일 전까지 침체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통일 후 지휘봉을 잡은 사람이 바로 바렌보임이며 그는 슈타츠카펠레를 다시 한번 세계정상급 오케스트라로 올려놓았다. 베를린에서 슈타츠카펠레의 정기연주회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 못지않게 인기가 많다. 다행히도 한 프로그램을 이틀 동안 슈타츠오퍼에서 한 번, 필하모니에서 한 번, 총 두 번을 공연하기에 매진으로 인해 볼 수 없었던 경우는 없었다. (당연히 클래식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


- 브람스 교향곡 1번과 2번

다니엘 바렌보임과 슈타츠카펠레의 음악적 성향은 다소 보수적으로 보인다. 프로그램을 보면 짐작이 가능한데 대부분이 전통적인 레퍼토리로 많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베토벤, 브람스, 바그너, 부르크너의 작품들이 많은 편이다. 아마 피아니스트 때부터 고집해온 그만의 음악적 신념이 아닌가 한다. 객원지휘자와 함께 할 때면 폭넓은 레퍼토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다양한 레퍼토리도 좋지만 바렌보임과 함께하는 슈타츠카펠레만이 온전한 그들의 색깔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의 시작은 이 날 연주한 브람스를 들은 후부터였다.


이 곳 사람들은 브람스를 참 좋아한다. 브람스 교향곡 1번부터 4번 중 하나가 포함된 공연이라면 그 어느 곳이든 만석에 가깝다. 이 날은 브람스 교향곡 1번과 2번이 연주되었다. 바렌보임이 입장하고 관객들은 박수로 그의 입장을 환영했다. 그의 손에서 시작된 브람스 교향곡 1번, 시작과 동시에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바렌보임의 해석, 슈타츠카펠레의 연주는 너무나도 깊었다. 수십 번 넘게 들었던 브람스 교향곡 1번인데 연주를 듣는 내내 울컥한 기분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학부시절 브람스 교향곡 1번에 대해 공부했었다. 그가 이 곡을 쓸 당시 그가 존경하던 베토벤이라는 그늘의 무게, 어긋나 버린 그의 사랑, 변해가는 시대에 맞춰가지 못한다는 자책감 등 수많은 굴곡이 있었고 그 굴곡은 이 곡에 온전히 담겨있다고 배웠다. 내가 울컥한 이유는 브람스의 그때 감정이 나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듣는 것과는 당연히 비교할 수가 없었고 콘체르트하우스에서 들었던 브람스 1번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가 아니었다. 그들의 연주는 전체적으로 강약의 대비가 확연히 드러났다. 포르테는 그 어느 포르테보다 더 강하게, 피아노는 그 어느 피아노보다 여리게, 그 셈여림의 폭이 굉장히 끝과 끝에 서 있다고 느꼈다. 그들의 연주가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 이유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해석은 관객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바렌보임과 슈타츠카펠레의 해석이 너무나도 좋았다. 교향곡 1번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로 교향곡 2번을 들었다. 사실 앞선 교향곡 1번이 너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지라 교향곡 2번은 무난하게 들었던 것 같다. 교향곡 2번에서도 역시 그들의 색깔은 변함이 없었다. 특히 4악장의 마지막에서 빠르게 달려가는 부분은 악센트에 맞춰 내 호흡도 같이 빨라질 정도로 포인트가 정확하게 들려왔다. 괜히 450년의 역사를 지닌 것이 아니었으며 그에게 칭해진 '거장'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연주였다.

2018. 12. 11 / 베를린 필하모니에서의 슈타츠카펠레

-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나의 생각

이 공연 이후에 친구와 함께 슈타츠카펠레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슈타츠카펠레의 해석에 나름 불만을 표했었다. 너무 끝과 끝을 보여주는 것 같아 오히려 음악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취향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색깔이 너무 좋다. 난 그들을 강렬한 붉은색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음식도 너무 자극적이면 쉽게 질리는 것처럼 그들의 음악이 혹여나 질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강렬함이 나를 들뜨게 한다. 다가오는 2020년, 슈타츠카펠레는 450주년을 맞아 피아니스트 유자 왕(Yuja Wang)과 마르타 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와의 협연뿐 아니라 4회에 걸쳐 베토벤의 전 교향곡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이 계획되어있다. 그때까지도 내가 베를린에 머무르고 있다면 나도 그 자리에 꼭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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