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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Oct 17. 2019

강렬했던

도이체오퍼 보체크

- 1년의 절반이 지나고

2018년 11월, 내가 오페라를 가장 많이 보러 다녔던 시기다. 독일에 온 지 6개월, 지금까지 봤던 공연들을 정리해보았다. 나름 두루두루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오페라보다 관현악에 더 많이 치중되어있었다. '내가 공연을 가려보고 있었구나.'를 깨닫고 하반기 시즌에는 꼭 오페라 관람에 비중을 더 많이 두자고 다짐했었다. 달력 빼곡히 적어놓은 공연 일정 중 눈에 띈 공연이 하나 있었다. 코미셰오퍼의 마술피리를 보고 난 나흘 뒤, 난 도이체오퍼(Deutsche Oper)를 가게 되었다. 알반 베르크(Alban Berg)의 보체크(Wozzeck)를 보기 위해.


- 새로운 음악

서양음악사에서 20세기의 현대음악을 공부하게 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3명이 있다. 쇤베르크(Arnold Schonberg)와 그의 제자들인 베베른(Anton von Webern)과 베르크(Alban Berg)이다. 그들은 '제2 빈 악파'로 불리며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20세기 음악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작곡가들로 알려져 있다. 1900년대 작곡가들은 조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고 새로운 작곡법들을 시도하게 되는데 쇤베르크가 '12음기법'을 적립시키면서 새로운 음악의 시대가 열렸다. '12음기법'이란 작곡가가 특정한 질서로 12개의 음을 배열시킨 후 이 음들을 옥타브나 리듬적, 연속적, 동시적으로 사용하여 작곡하는 기법이다. 그렇게 무조성을 향해 나아가던 그들이었다. 베르크는 쇤베르크의 '12음기법'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베르크는 쇤베르크가 설정했던 초기의 설정을 약간 벗어나 조금은 자유롭고 종종 조성적인 소리가 나는 음렬들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래서 '제2 빈 악파'의 음악들 중 그나마(?) 받아들이기가 쉽다. 이들과 연관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표현주의'이다. 표현주의는 인상주의와 마찬가지로 회화와 관련된 용어로 쓰였다. 이 둘은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순간적으로 인식되는 외적인 부분들을 표현한 것이 인상주의라면 표현주의는 내적인 부분을 표현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내적인 부분의 표현이라면 낭만주의를 떠올릴 수 있지만 그것과는 차이가 크다. 표현주의는 낭만주의와는 다르게 인간의 불안, 긴장, 두려움 등 부정적인 면이나 불합리한 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표현주의 예술을 보면 감정과 표현방식이 굉장히 극단적이고 격렬하다.


- 보체크(Wozzeck)

20세기 오페라, 표현주의 오페라의 대표적인 예시를 꼽으라면 바로 베르크의 '보체크(Wozzeck)'이다. 베르크는 희극 보이체크(Woyzeck)를 기반으로 보체크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났고 베르크 역시 군 복무를 하게 되었다. 군 복무 중임에도 보체크를 놓지 않았고 종전 후 오스트리아 빈으로 돌아와 보체크를 완성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베르크는 전쟁 기간을 포함해 총 8년이라는 시간을 보체크에 쏟아부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스승인 쇤베르크는 그가 보체크를 작곡하는 것에 상당히 반대를 많이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극의 썩 즐거운 내용이 아니다 보니 반대한 것이 아닌가 싶다. 스승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1925년 베를린 슈타츠오퍼(Staadtsoper unter den Linden)에서 초연하게 된 보체크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줄거리) 보체크는 가난에 찌든 무능력한 남자다. 그럼에도 그에겐 동거녀 마리가 있었고 둘 사이에 아이도 있다. 먹고 살 방법이 없어 병사로 지원하게 됐는데 그의 그런 배경을 곱게 봐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보려 아등바등 노력했으나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아 항상 불안 속에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거녀인 마리와 자신의 부대에 속한 군악대장이 바람이 난 것을 알게 되었다. 보체크는 홧김에 마리를 물가로 데려가 칼로 그녀의 목을 찔러 죽여버리고 물속에 칼을 던져버린 후 마을로 돌아온다. 술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그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사용했던 칼을 다시 찾기 위해 살인 장소로 돌아가던 중 마리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고 순간 정신이 나가버린 보체크는 호수에 몸을 던져 죽고 만다. 그리고 그 둘의 아이는 홀로 남게 된다.

일단 간략한 줄거리 속에서도 쇤베르크가 왜 반대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당시에는 아주 파격적인 내용이 아니었을까 싶다. 더군다나 주인공의 신분이 군인이라는 것도 그 시대에선 중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실제로 오페라 '보체크(Wozzeck)'를 보는 것은 나 또한 처음이었다. 학부시절 '12음기법'으로 날 괴롭혔던 3인 중 한 명이었기에 '이거는 꼭 봐야겠다.'싶었다. 역시 클래식카드를 활용하기 위해 일찍 공연장에 도착했고 무난하게 표를 구매할 수 있었다. 공연 시작 전, 무대 커튼 위에 괴기한 영상이 떠 있었다. 석고상 같이 하얀 얼굴이 눈을 감고 있는 영상이었다. 아무래도 보체크의 얼굴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자세히 보니 눈을 감은 상태로 눈동자를 움직이고 있었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신기해서 분명 사진을 찍은 것 같은데 없다. 공연이 시작되었고 나는 도이체오퍼의 연출에 입이 떡 벌어졌다.


- 강렬했던 연출, 그리고 음악

공연을 보는 내내 눈과 귀가 쉴틈이 없었다. 자극적이고 강렬한 무대 연출에 눈을 뗄 수가 없었고 무조성의 음악은 내 귀를 끊임없이 뚫고 들어왔다. 그중에서 가장 자극적인 장면을 꼽자면 보체크가 마리를 살해하는 장면인데 놀랍게도 보체크가 칼로 마리의 목을 찌르는 순간 객석 쪽으로 피가 튀었다. 적어도 내가 봐온 오페라에서는 사람이 죽거나 죽이는 장면이 나올 경우 대부분 칼을 찌르는 시늉만 하거나 피가 흐르는 시늉, 혹은 의상에 피를 묻히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충격이었다. 또한 주인공들이 술집에서 향락하는 장면도 만만치 않았다. 무용수들의 탈의, 노골적인 애정행각이나 성행위를 표현하는 안무들은 '이렇게까지?'라는 생각도 들게 했다. 왜냐면 내 옆에는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온 어린아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저 아이들이 이 연출들을 예술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놀랍게도 그 아이들은 전혀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다.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그들의 연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심지어 나보다도 더 음악에 집중해 공연을 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에 부끄럽기까지 했다.

2018년 11월 8일, 도이체오퍼의 보체크

20세기의 음악들을 연주할 때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가 '합(合)'이 아닐까 한다. 조성 음악의 경우 듣는 사람이 익숙한 만큼 연주자들 역시 익숙하다. 조성 음악은 화성의 진행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되고 음악의 흐름을 느끼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이 오페라는 무조성이다. 합을 맞추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도이체오퍼는 그 합을 굉장히 잘 맞췄다. 주인공의 감정이나 장면 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여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 많이 느껴졌다. 종종 오페라를 볼 때 '뭔가 조금 안 맞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나의 경험상 대부분 그런 경우, 가수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배려를 너무 많이 할 경우 그런 느낌을 받는데 도이체오퍼는 적절한 배려와 그에 대한 합이 아주 잘 맞았다. 그래서 '음악이 흐르고 있다.'는 느낌이 피부에 와 닿았었다. '이 공연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과 노력을 했을까.'가 많이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보체크를 보고 난 후 가슴 한편이 되게 묵직했다. 그들은 행복하고 싶었지만 결국 죽음으로 끝나버렸다. 그들의 죽음으로 끝날 것 같았던 비극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간다는 결말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 더 묵직했다. 이 비극에 베르크의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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