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셰오퍼 마술피리
날씨가 제법 추워졌던 2018년의 11월, 어느덧 베를린에 머문 지 5개월쯤 되었을 때이다. 어학원을 다니며 독일어를 배웠고 "남은 티켓이 있나요?."나 "내가 원하는 곳에 앉을 수 있을까요?"정도의 말은 말할 수 있던 시기였다. 고작 그 정도 독일어가 늘었을 뿐인데 자신감이 생겼고, 공연장을 더 자주 찾아가 직원들을 괴롭혔다. 물론 나는 앞서 소개했었던 '클래식카드'를 활용해서 공연을 봤다.'클래식카드'는 공연 당일 1시간 전에 남은 좌석석 중 가장 앞좌석을 오페라는 10유로, 콘서트는 8유로에 구매할 수 있는 제도다. 보통 잔여석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불편함 없이 공연 관람을 해왔었다. 그러다 5개월 만에 처음으로 잔여석이 없어 무려 네 번을 방문한 공연이 있었다. 코미셰오퍼(Komische Oper Berlin)의 '마술피리(Die Zauberflöte)'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하면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마술피리(Die Zauberflöte)'일 것이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오페라이며 '밤의 여왕 아리아'로 불리는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에 끓어오르고(Der Hö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는 본 오페라보다도 더 유명하다. 음악시간에 오페라나 아리아에 대해 이야기할 때 꼭 나오는 단골손님이며 TV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곡이라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곡이다. 그래서인지 '마술피리'는 아이들을 위한 오페라, 가족을 위한 오페라로 자주 공연되기도 한다.
베를린에 있는 오페라 극장들을 가본 결과, 각 극장들은 무대 연출에 있어서 각각의 특색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 슈타츠오퍼는 클래식하고 심플한 연출, 도이체오퍼는 실사화(實寫化)에 가까운 연출, 코미셰오퍼는 모던(Modern)한 연출에 가깝다. 그래서 같은 작품이더라도 각 극장마다 완전히 다른 작품처럼 느껴진다. 내가 코미셰오퍼의 마술피리를 보고 싶었던 이유는 그들만의 '특별한 연출'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코미셰오퍼의 마술피리는 무대가 없다.
위 트레일러를 보면 물음표가 저절로 생길 것이다. 나 역시 처음 이 트레일러를 보고 굉장히 당황했다. "이게 뭘까?"하고 나 자신에게 몇 번을 물어봤는지 모른다. 공연 시작 전, 무대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하얀 벽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봤던 오페라들을 보통 각 막 별로 무대가 바뀌거나 혹은 인터미션(Intermission)을 기준으로 무대가 바뀌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트레일러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마술피리는 무대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 모든 것을 영상으로 연출했다. 나에겐 너무나 신박한 무대였다. 각 영상의 속도와 정확히 들어맞는 연주, 대사가 말풍선으로 나올 때 혹은 영상에 맞춘 특정 연기를 할 때마다 정확한 위치에 서 있는 가수들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적어도 나의 경험상 장르를 불문하고 사람과 사람이 합을 맞추는 것보다 더 어렵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 영상과 함께 하는 공연이다. 그럼에도 코미셰오퍼의 마술피리는 가수들과 영상, 음악이 한치의 오차 없이 완벽했다. 이 공연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들어갔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공연이 끝난 후 나는 박수를 멈출 수 없었다.
코미셰오퍼의 마술피리를 보고 난 후에 집으로 돌아와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는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작품의 시대에 맞게 만들어진 무대, 그에 맞는 의상과 소품 등 사람들에게 익숙한 연출로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가져온 리플렛을 열심히 해석해본 결과 대략 이러한 내용이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는 전 연령이 알고 있는 오페라이고 전 연령이 즐길 수 있는 오페라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새로운 해석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해석에 대한 시도 역시 어렵다. 또한 무대에서 우리의 상상력만큼 마술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술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 동화만큼 적절한 것이 없고 음악만큼 적절한 언어가 없다. 그래서 무성영화를 본보기로 한 새로운 마술피리를 선보이려 한다.
완벽한 해석이 아닐 수 있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에 익숙해져 버린 마술피리를 새롭게 탄생시키고자 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연속 매진으로 인해 네 번이나 방문해야 할 만큼 베를리너들의 마음에 쏙 들어버린 마술피리가 탄생했으니 코미셰오퍼의 성공적인 시도였다고 본다.
+ 개인적인 생각 :
공연도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다. 그 기준에서 코미셰오퍼의 마술피리는 아주 매력적인 상품이다. 공연장이나 단체에서 자체 기획한 공연을 타 지역에서 공연하게 될 경우 무대 세트와 의상, 소품 등을 통째로 가지고 가는데, 그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실제로 해외에서 국내로 수입되는 유명 단체의 오페라나 뮤지컬, 발레 등은 공연 몇 달 전부터 무대 세트를 컨테이너 몇 개에 담아 배로 실어온다. 그것에 비하면 코미셰오퍼의 마술피리는 다른 공연에 비해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나에겐 여러모로 너무 마음에 드는 마술피리다.
이 날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가수들의 노래는 두말할 것 없이 좋았다. 눈과 귀가 모두 즐거웠던 무대였다. 음악적인 어떠한 평가를 하고 싶지는 않다. 나에겐 너무나 특별했던 무대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본 공연일 뿐이다. 내가 공연장에서 근무했을 때, 사람들이 종종 공연이 끝난 후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많이 보고, 많이 들었었다. 그때마다 자주 들리던 이야기가 있다. "CD보다 별로야.", "오늘 연주자보다 B연주자가 더 잘하는 것 같아.", "저 곡은 저렇게 표현하면 별로던데." 등 음악을 비평하고 비판하는 이야기들이었다. 사실 나도 그랬었다. 하지만 베를린에 있으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독일어가 어느 정도 들릴 때쯤, 공연이 끝난 후 독일 관객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궁금해서 엿들은 적이 있다. "A연주자와 B연주자의 연주가 달라서 새로웠어.", "저 곡을 저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워." 등 비평과 비판보다는 그 날의 음악을 온전히 이해하려 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때 나는 반성을 참 많이 했다. 베를린에 있으면서 '음악은 평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생각해보니 음악은 어떠한 객관적 평가가 필요하지 않았다. 왜 '음악(音樂)'에서 '즐길 락(樂)'을 쓰겠는가. 음악은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이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음악적 기준이 존재한다. 그 기준을 '옳다.', '그르다.' 나눌 수는 없다. 그저 자신의 기준에 충족한 음악이라면, 그리고 자신이 그 날의 음악을 온전히 즐겼다면 그것은 '좋은 음악'인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