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학생'이라는 신분은 그 어떤 신분보다도 누릴 것이 많다. 한국도 학생을 위한 제도들이 아주 잘 되어있다. 독일 역시 어딜 가든 '학생'이면 대부분 할인이 된다. 대중교통, 박물관, 영화관, 극장, 공연장 등 빠지는 곳이 없다. 하지만 타지에서 '학생'이 된다는 건 쉽지 않다. 그렇다면 단지 '외국인'이라는 신분만 가진 사람은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일까? 이곳 베를린은 만 30세 미만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정말 굉장한 제도를 하나 가지고 있다. 바로 "클래식카드", "클래식카르테"이다.
- 클래식카드, 클래식카르테
한국에서도 학생들을 위한 여러 할인제도들이 운영되고 있다. 그중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시행하고 있는 '문화패스'라는 제도가 있다. '문화패스'는 청소년과 대학생(만 13세~24세)의 연령층을 위한 제도이다. 국공립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등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할인율은 각 기관별로 차이가 있다. 나는 이 클래식카드가 '문화패스'와 비슷한 제도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클래식카드는 조금 더 특별했다. 처음 이 카드를 알게 되었을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제도라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클래식카드를 소유하고 있을 시, 카드에 적혀 있는 공연장 및 단체의 공연을 8유로 혹은 10유로에 볼 수 있다. 쉽게 분류하자면 클래식 콘서트는 8유로, 오페라나 발레는 10유로로 분류할 수 있다. 왜 이걸 보고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냐면, 티켓의 본래 가격이 30유로든, 50유로든, 100유로든 상관없이 이 카드를 제시하면 티켓은 무조건 8유로 혹은 10유로이다. 할인율이 아니라 고정 금액이다.
클래식카드는 모든 만 30세 미만을 위한 것입니다. 클래식카드는 1회에 15유로이고 개인이 원하는 날짜부터 1년간 유효합니다. (클래식카드 홈페이지 설명)
클래식카드는 인터넷이나 베를린 필하모니를 제외한 공연장, 혹은 두스만에서 만들 수 있다. 인터넷에서 신청하면 카드가 오는 데까지 2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참고로 나는 두스만에서 만들었다.) 두스만은 베를린에서 가장 큰 서점(책뿐 아니라 음반, 굿즈 등을 판매한다.)이며 S+U Friedrichstraße 역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발급절차는 매우 간단하다. 두스만을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클래식카드를 만들고 싶다고 계산대 직원에게 이야기하고 15유로를 결제하면 신청서를 작성하는 곳으로 안내해준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신청서를 작성하고 신분증(여권)을 제시하면 신청자가 만 30세 미만인 것을 확인한 후 임시카드를 발급해준다. 정식 카드는 인터넷과 같이 2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고 신청서에 작성한 주소로 배송된다. 카드 유효기간의 시작일은 선택할 수 있으며 시작일로부터 1년 간 유효하다. 이제 이 카드를 제시하면 티켓의 본래 가격에 관계없이 8유로 혹은 10유로에 공연을 볼 수 있다. 나는 이 클래식카드를 정말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임시카드는 종이카드이며 내 정보와 카드의 유효 날짜를 직접 써준다. 오른쪽은 집으로 배송되는 플라스틱 카드이다. 카드 상단을 보면 유효한 공연장과 단체들이 쓰여있다.
물론 감수해야 할 부분은 있다. 이 카드를 가지고 예약을 할 수는 없다. 공연 당일, 공연 시작 1시간 전부터 남아있는 좌석 중 앞쪽 좌석을 우선 배정해주는 시스템이다. 사실상 최고등급의 좌석을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연이 매진일 경우엔 아쉽지만 볼 수 없다. 나 또한 매진으로 인해 돌아간 적이 있다. 하지만 이곳은 베를린이다. 오페라의 경우 한 공연을 짧게는 2주, 길게는 4주 동안 무대에 올린다. 오케스트라 또한 한 공연을 평균 2회, 많게는 4회까지도 무대에 올린다. 오늘 못 봤다고 해서 못 보는 것이 아니라 내일, 혹은 다음 주에 또 오면 된다. 그래서 매진으로 돌아간 적은 있지만 보겠다고 마음먹은 공연을 보지 못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쉬운 것을 꼽자면 베를린 필하모니 공연은 이 제도에 포함되지 않는다. 추가로 신분 확인을 위해 여권 제시를 요구하는 직원이 있으니 꼭 신분증을 지참하기 바란다.
위 내용이 설명된 클래식카드 홈페이지 (https://classiccard.de)
Termin(일정, 예정)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독일 사람들은 예약을 참 좋아한다. 관공서, 병원, 여행, 공연 등 모든 일에 있어 짧게는 1~2개월, 길게는 6개월 전에 예약을 한다. 그런 예약의 나라 독일이지만 혹 예매를 하지 못한 사람들은 예약을 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참 부지런하게도 2~3시간 전부터 티켓 창구 앞에서 줄을 서 있다. 그래서 나 또한 보통 2시간 전에는 미리 가서 줄을 서있는 편이다. 인터넷에서 미리 남아있는 좌석 수를 확인해보고 좌석이 여유가 있다면 굳이 일찍 갈 필요는 없다. 그리고 '1시간 전부터 가능하다.'라고 공지되어 있지만 나의 경험상 2시간 전에도 티켓 창구가 열려있다면 그냥 해준다. 혹은 1시간 전까지 티켓 창구를 아예 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여담으로 내 얼굴을 기억하는 직원은 내가 좌석을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그래서 나는 공연장에서 나누어 놓은 모든 구역에 앉아봤다.)
- 꼭 만들었으면
참고로 나는 이 클래식카드라는 제도에 반해버린 사람일 뿐 절대 연관된 사람이 아니다. 다만 독일에 유학을 온다면, 유학 중이라면, 혹은 여행으로 와서 공연을 보고 싶다면, 그곳이 베를린이라면, 꼭 이 제도를 활용했으면 좋겠다.' 클래식 음악의 본 고장, 독일', '젊은 예술가의 도시, 베를린'이다. 365일 중 300일 이상 공연이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베를린이다. 이것은 베를린만의 특권이라 생각한다. 당신이 베를린을 선택했다면 이 특권을 꼭 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