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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Sep 27. 2019

DANKE! SIR SIMON!

잊지 못할 그의 마지막 무대

- 숲 속의 무대

베를린에서 열리는 수많은 공연 중 그 어떤 공연보다도 사랑받는 공연이 있다. 바로 'Waldbühne', '발트뷔네'이다. 발트뷔네(Waldbühne)는 숲(Wald)과 무대(Bühne)가 합쳐진 말이며 의역하자면 "숲 속의 무대"라고 할 수 있겠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야외공연장이며 약 2만 명 정도 수용 가능하다. 이곳에서 매년 6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전반기 시즌을 마무리하는 공연이 열리며 이 공연의 명칭 또한 발트뷔네(Waldbühne)라 부른다. 독일에 오기 전부터 이 공연을 꼭 보고 싶어서 티켓 오픈만 손꼽아 기다렸었다. 왜냐하면 그때 발트뷔네(Waldbühne)는 조금 더 특별했기 때문이다.


- 16년의 무게

'Berliner Philharmoniker', 세.계.정.상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오케스트라. 그 타이틀의 무게를 35년 간 짊어졌던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3년을 짊어졌던 아바도(Claudio Abbado), 그 뒤를 이어 16년의 무게를 짊어진 사람. 바로 래틀(Simon Rattle)이었다. 2018년 6월 24일, 그 날의 발트뷔네가 특별했던 이유는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마지막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사이먼 래틀(Simon Rattle) / 출처 : Berliner Philharmonie 홈페이지


- 카라얀과 래틀

나의 기준에서 카라얀과 래틀은 비슷한 점이 많다. 그 둘은 음악가이자 경영가였다. 카라얀은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던 과도기에 주저 없이 디지털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옳았다. 디지털 음반을 통해 당시 베를린 필하모니는 많은 수익을 창출했고 그 수익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운영을 할 수 있었다. 카라얀은 살아생전 총 500여 개의 음반을 제작했고 판매량은 1억만 장 이상을 기록했다. 심지어 그가 죽은 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음반은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그렇게 카라얀은 베를린 필하모니를 배부르게 해 줬다.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 / 출처 : Berliner Philharmonie 홈페이지

그가 떠나고 난 후 베를린 필하모니의 재정상태가 조금씩 안 좋아졌다. 대책이 필요했다. 그때 나타난 사람이 바로 래틀이다. 래틀은 취임 당시 베를린 필하모니를 재단법인화를 추진하자는 계획을 가지고 왔고 2002년, 베를린 필하모니는 도이체 방크(Deutsche Bank)를 중점으로 한 기업들의 후원으로 국가의 지원 없이 자체적 운영을 시작했다. 그로 인해 앨범 발표 및 수익과 관련된 활동에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래틀은 이것을 토대로 새로운 미디어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바로 '인터넷'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디지털 콘서트홀'이다.

베를린 필하모니에 가지 않더라도 인터넷이 가능한 어느 곳에서든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라이브로 볼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독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엄청난 흥행을 거뒀고 베를린 필하모니의 재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수많은 걱정과 반대가 함께한다. 하지만 카라얀도 래틀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확신했다. 난 그들의 도전정신을 존경한다. 그래서 나는 사이먼 래틀의 마지막 무대에 꼭 함께 하고 싶었다.


- 그의 마지막 무대

관객이 워낙 많다 보니 공연 3시간 전부터 입장을 시작했다.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비가 억수처럼 쏟아졌다. 그 빗 속에서도 관객 모두 딱히 불평불만 없이 가져온 음료와 음식을 먹으며 공연을 기다렸다. 공연 시작 20분 전부터 비가 서서히 그쳤다. 다행히 정시에 시작할 수 있었고 오케스트라가 입장하고 곧이어 사이먼 래틀이 입장했다. 그의 입장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공연 2시간 전, 비가 엄청나게 내림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관객들

거쉰(George Gershwin)의 쿠바 서곡(Cuban Overture)으로 그의 마지막 무대는 시작되었다. 그의 아내인 막달레나 코제나(Magdalena Kožená)가 함께 무대에 올라 요셉 캉틀루브(Joseph Canteloube)의 오베르뉴의 노래(Chant d'Auvergne)를 들려주었다. 이어서 하차투리안(Aram Khachaturian)의 가이느(Gayaneh),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의 로마의 소나무(Pini di Roma)로 무대가 이어졌다. 매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와 환호가 가득했다. 사실 기대 반 걱정 반이었던 공연이었다. 왜냐하면 야외에서는 장비가 아무리 좋더라도 여러 조건들과 변수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날은 비가 내렸기에 장비들의 컨디션이 온전하지 않을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걱정들은 무의미했다. 음향, 조명, 장비, 날씨 등은 전혀 중요치 않은 공연이었다. 스피커 상태, 조명상태, 잡음 등 아쉬운 부분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발트뷔네는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공연이었다. 발트뷔네는 '음악'을 들으러 온 공연이 아닌 '음악'을 즐기러 온 공연이었다.


앙코르 무대가 시작하기 전에 래틀이 잠시 퇴장했다. 그 사이 단원들이 그의 헤어스타일과 같은 가발을 쓰기 시작했다. 객석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단원들도 웃으며 그를 보내고 싶었었나 보다. 래틀은 관객을 향해 '우리 단원들 참 짓궂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어 보였고 엘가(Edward Elgar)의 위풍당당 행진곡(Pomp and Circumstance Marches) 중 제 1번을 들려주었다. 관객들은 휴대전화 라이트를 켜 머리 위로 흔들며 선율을 따라 불렀고 그와의 마지막을 아쉬워하며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했다.

2018년 발트뷔네, Berliner Philharmoniker - 위풍당당 행진곡 중 제 1번 (Berliner Philharmoniker 유튜브 채널)


발트뷔네의 마지막을 알리는 베를리너 루프트(Berliner Luft)가 시작되고 래틀은 지휘를 하다 말고 무대 뒤로 잠시 사라졌다. 잠시 후 래틀이 샴페인을 들고 나와 단원들 한 명 한 명 포옹하고 악수하며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잔을 들어 보이며 자신의 마지막 무대에 참석해준 관객들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 잊지 못할 그때

1년 넘게 지난 지금에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두근거린다. 종종 발트뷔네 때 찍었던 사진들을 다시 찾아보곤 한다. 사진을 보면서도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꿈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에게 발트뷔네는 '프로그램이 너무 좋았다.', '래틀의 음악적 해석이 너무 좋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역시 잘한다.' 등의 기억으로 남은 공연이 아니다. 내가 그 순간을 함께 했다는 것, 그것이 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발트뷔네(Waldbühne)라고 대답할 것이다.

발트뷔네(Waldbühne) - 201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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