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아모레를 꺾은 36세 창업자

by 정연광


대학생 때 여러 번 사업에 실패했던 청년이 있었다. 가상 착장 앱, 데이트 중개 앱... 뭘 해도 안 됐다. 그러다 깨달았다. "광고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결국 제품이 본질이야."


그렇게 2014년, 김병훈이라는 26살 청년이 초기 자본금 5천만원으로 시작한 회사가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 회사는 수십 년간 견고했던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국내 뷰티 업계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바로 APR(에이피알) 이야기다.


실패에서 배운 교훈

김병훈 대표의 창업 동기는 중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 내 정치적 문제로 아버지가 해고당하는 걸 보면서 "내 사업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미국 교환학생 시절 이커머스 생태계에서 영감을 받았고, 곧바로 창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여러 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깨달은 건 명확했다. "아무리 마케팅을 잘해도 제품이 별로면 안 된다." 그래서 직접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그것도 수요가 확실한 레드오션 시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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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스킨에서 메디큐브로

2014년 론칭한 에이프릴스킨의 '매직스톤'은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났다. 보여지는 효과가 명확했고, MZ세대가 열광했다. 창업 1년 만에 125억원, 3년 만에 650억원 매출을 달성했다.

하지만 김병훈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16년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메디큐브'를 론칭했다. 제로모공패드, PDRN 앰플, 콜라겐 캡슐크림 같은 기능성 제품들이 미국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게임 체인저, 홈뷰티 디바이스

진짜 전환점은 2021년이었다. APR은 홈뷰티 디바이스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뷰티 디바이스는 수백만원대 고가 제품이 대부분이었는데, APR은 'AGE-R 부스터 프로'를 약 32만원이라는 합리적 가격에 내놓았다.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카테고리 자체를 대중화시키면서 시장을 키웠고, 이게 APR 성장의 엔진이 됐다. 화장품과 디바이스를 함께 쓰는 '레짐' 전략으로 고객 생애가치(LTV)를 높이는 동시에 수익성까지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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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적 성장의 비결

APR의 성장세는 숫자로 봐도 놀랍다. 2024년 매출 7,228억원에서 2025년 상반기에만 5,93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95%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1,391억원으로 149%나 뛰었고, 영업이익률은 23.4%에 달한다. 2025년 연간 매출 1조원 달성은 이제 시간문제로 보인다.


더 주목할 건 해외 매출 비중이다. 2024년 전체 매출의 64%가 해외에서 나왔고, 2025년엔 70%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의 성과가 두드러진다. 틱톡과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입소문 마케팅이 미국 MZ세대에게 제대로 먹혔다.


헤일리 비버, 카일리 제너 같은 글로벌 셀럽들이 제품을 사용하고, 국내에선 아이브 장원영을 모델로 기용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D2C(직접 소비자 판매) 전략과 데이터 기반의 빠른 실행력도 한몫했다.



밸류체인 내재화라는 무기

APR의 또 다른 강점은 기획부터 개발, 생산, 판매까지 전 과정을 내재화했다는 점이다. R&D 센터(ADC)를 설립하고 평택에 자체 공장을 지으면서 연간 70만대 규모의 디바이스를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

브랜드 커머스에서 뷰티테크 제조·R&D 기업으로 체질을 바꾼 거다. 이는 제품 품질 관리는 물론이고 원가 절감과 빠른 시장 대응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넘어야 할 산들

물론 순탄하지만은 않다. 2025년 초 메디큐브의 한 제품이 허위·과대 광고로 적발돼 2개월간 광고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중국산 위조제품이 국내외 오픈마켓에 유통되는 문제도 터졌다.

4월엔 홈뷰티 디바이스 부작용 루머가 돌면서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비록 증권가에서 "실적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이런 이슈들은 관리가 필요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계속 성장하려면 규제 준수와 품질 관리, 위조품 대응 체계를 더 촘촘하게 가져가야 한다.


레드오션을 두려워하지 마라

김병훈 대표의 경영 철학은 명확하다. "레드오션을 공략하라. 수요가 있는 시장에 들어가서 더 좋은 제품을 더 빠르게 내놓아라." 남들이 이미 하고 있다고 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서 차별화를 찾는다.

실행 속도도 중요하게 여긴다. 젊은 팀과 함께 트렌드를 빠르게 읽고, 실행하고, 개선하는 사이클을 끊임없이 돌린다.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김병훈 대표는 2025년 포니정재단의 '포니정 영리더상'을 받았다. K-뷰티를 세계에 전파한 공로를 인정받은 거다. 블룸버그는 그를 '36세 뷰티 재벌, 한국의 새로운 억만장자'로 소개했다. 현재 그의 보유 지분 가치는 약 2조 5천억원에 달한다.


APR의 이야기는 '좋은 제품과 빠른 실행, 그리고 글로벌 시장을 향한 과감한 도전'이 만들어낸 성공 스토리다. 10년 만에 K-뷰티 대장주 자리에 오른 이 회사가 앞으로 어디까지 갈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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