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사원에 왜 단청의 문법이
남아 있을까

패턴로드 1 | 베이징 니우지에 예배사에서 만난 금문과 기하 질서

by 고훈민

이슬람 사원의 대들보 위에서, 한국 사찰에서 보아 왔던 기하학적 문양을 발견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베이징 니우지에 예배사에서 마주한 금문은, 장식이 종교를 넘어 이동하고 번역될 수 있는 언어임을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베이징의 무슬림 거리, 니우지에


c409aa711d8d923eb86f14e252b3072d.jpg 광안먼의 옛 모습(출처: https://news.bjd.com.cn/2021/11/30/10011165.shtml)

1951년 도로 확장 공사로 철거된 베이징 서남문 광안먼(广安门)이 있던 자리에서 동쪽으로 약 40분을 걸으면 베이징의 대표적인 무슬림 거주지인 니우지에(牛街, 한국어 음역 ‘우가’)에 이른다. ‘소 우(牛)’ 자가 들어간 지명이다 보니, 한국의 마장동처럼 무슬림의 할랄 도축 방식인 자비하(ذبيحة)를 따르는 도축장이 밀집해 생긴 이름일 것이라 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니우지에라는 이름은 훨씬 오래된 기원을 지닌다. 송나라 시기 이 지역에 정착한 페르시아계 무슬림들이 석류밭을 조성했고, 이때의 ‘석류(榴, liu)’ 발음이 ‘소(牛, niu)’와 유사해 지명으로 굳어졌다는 설이 전해진다. 어원이 무엇이든 오늘날 니우지에는 이슬람교도 후이족(回族)의 양꼬치와 각종 할랄 음식을 맛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거리로 자리 잡았다.


Niujie_Mosques02.jpg 니우지에 칭진쓰의 패루(牌楼)와 망월루(望月楼)

왕복 6차선 도로가 된 니우지에 동편에는 면적 약 6,000㎡에 달하는 베이징 최대 규모의 이슬람 사원 니우지에 칭전쓰(牛街清真寺)가 자리하고 있다. ‘청진사(清真寺)’는 이슬람 사원을 뜻하는 중국어로, 아랍어 마스지드(masjid)의 음차가 아니라 이슬람의 핵심 가치인 정결함과 진정성을 중국 윤리 개념어 ‘청진(清真)’으로 번역한 표현이다. 통칭 ‘니우지에 청진사’로 불리지만 정식 명칭은 ‘니우지에 예배사(礼拜寺)’이다. 명나라 헌종이 성화 10년(1474)에 이 명칭을 하사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 예배사는 요나라 성종 재위기인 10세기 말 당시 연경(燕京)이던 베이징에 처음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몽골군의 연경 함락 과정에서 크게 훼손되었고, 1442년 명나라 정통 연간에 재건되었다. 지금의 규모는 청나라 강희 연간인 1696년 대규모 중수를 거치며 형성된 것이다. 현재는 중국 국가급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스크린샷 2026-01-07 오후 6.55.35.png 니우지에에서 바라본 예배사의 영벽(影壁)과 실제 입구


니우지에 쪽에서 사원으로 접근하면 먼저 길이 약 20미터의 붉은 벽이 시선을 가로막는다. 이는 중국 사원 건축에서 빠지지 않는 '영벽(影壁, 그림자 벽)'으로,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고 공간을 단계적으로 전이시키는 장치다. 주술적으로는 나쁜 기운을 막고, 건축적으로는 방문자의 움직임을 조율한다. 영벽을 돌아 다시 도로를 하나 건너면 비로소 3칸 규모의 목조 패루(牌楼)가 모습을 드러낸다. 패루 뒤에는 중국식 이슬람 사원의 상징인 육각형 망월루(望月楼)가 자리해 이곳이 청진사임을 알린다. 흔히 이 망월루를 중동 이슬람 사원의 미나렛과 동일시하기 쉽지만, 실제로 기도 시간을 알리는 기능은 중정 깊숙이 위치한 환례루(唤礼楼)가 담당한다. 도로에 면한 망월루는 기능적 시설이라기보다 도시 경계에서 이슬람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상징 장치에 가깝다.



메카의 방향이 바꿔놓은 공간

map.png 예배사 배치도


이 예배사의 구조가 특별한 이유는 방향성에 있다. 중국에서 메카는 서쪽에 위치하므로 기도가 이루어지는 본당의 정면은 동쪽을 향해야 한다. 그 결과 니우지에 동편에 자리한 이 사원은 주 출입구가 본당의 ‘뒤편’에 놓이는 독특한 배치를 갖게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사원의 규모가 작았던 과거에는 현재의 망월루가 미나렛 기능을 담당했고, 사원의 입구 역시 동편에 있었을 것이란 추측을 하기도 한다. 현재 방문객은 패루가 아닌 패루 오른편에 새로 마련된 입구를 통해 입장한다. 입구를 지나 본당 왼쪽의 짧은 골목을 따라가면 중국식 미나렛인 환례루가 서 있는 중정에 도달하게 된다.



eaf81a4c510fd9f9b6142d168cd223242934a458.jpeg 예배당 내부


예배당에 들어서면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동아시아 전통 목조건축과는 전혀 다른 인상이 펼쳐진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묶어 다엽형 아치를 연상시키는 환문 구조가 반복되며 공간을 중첩적으로 구획하고, 붉은 바탕 위에 금색으로 그려진 아랍 서예와 식물 문양이 내부를 화려하게 채운다. 현재 내부 채화 대부분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1955년, 1979년, 1996년 세 차례에 걸친 국가 보수 사업 과정에서 다시 그려진 것이다. 그러나 정문의 망월루와 메카 방향을 표시하는 함몰된 공간인 미흐라브(مِحْرَاب)에 대응하는 '요전(窑殿)' 내부 장식화에는 청나라 초중기 건축 채화의 흔적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다. 우리가 주목하는 대상은 바로 이 요전의 채화(彩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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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전 내부의 경문각과 요전 천장의 채색화


요전은 육각형 평면에 피라미드형 지붕을 얹은 독특한 구조를 갖는다. 지붕 아래에는 쿠란 구절을 보호하는 누각형 경문각이 자리한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육각 지붕 안쪽 면마다 서번련 권초문(西番莲卷草纹) 채화가 빈틈없이 펼쳐진다. 서번련은 시계꽃 또는 패션플라워를 가리키는 명칭이며 권초문은 덩굴풀이 말리듯 이어지는 아라베스크 계열 문양이다. 각 면에는 원형의 아랍 서예 장식 여섯 점이 배치되어 있으며,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알라는 고결한 덕성을 보호하는 존재이다. 알라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을 판결하는 존재이다. 알라는 품계와 지위를 관리하는 존재이다. 알라는 기도를 받아들이는 응답자이다. 알라는 행복과 행운을 주관하는 존재이다.알라는 길상과 복의 귀의처이다.



송금과 편직금

질서와 리듬이 엮이는 장식의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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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다시 대들보와 서까래로 내리면 오늘 이야기의 핵심인 금문(錦紋, jinwen)이 모습을 드러낸다. 요전 내부의 금초화새채화(锦草和玺彩画) ‘W’자 형태의 화새채화 틀선 안에 각종 금문, 영지문, 서번련 권초문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화새채화 가운데서도 유일한 사례로 평가되며, 청대 관식 건축 채색화와 이슬람 종교 사상이 완벽하게 결합된 결과를 보여준다. 이 금초화새채화에서는 총 네 가지 유형의 금문이 확인된다. 이 중 하나는 송금(宋锦) 계열에, 나머지 세 가지는 모두 편직금(编织锦) 계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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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전 들보의 송금 문양과 AI 툴로 선명화 한 이미지


송금은 북송시기 건축도감인 『영조법식』에 기록된 문양과 거의 동일한 형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서로 중첩되지 않는 정육각형을 기본 단위로 한 다소 간단한 문양이다. 명·청대에는 송대 금직물의 구조와 문양을 모방하여 건축 채화에 널리 사용되었다.


반면 편직금은 정육각형, 삼각형, 평행사변형 등 다양한 도형을 중첩한 구조가 복잡하고 변화가 풍부한 유형으로, 명확한 기하 격자 위에 여러 문양이 중첩되어 정적인 질서와 동적인 리듬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편직금은 원대에서 명대, 그리고 청대 초기까지 관식 건축 채화에서 비교적 널리 사용되었으나, 청대 중기 이후에는 점차 송금이 이를 대체한다. 이러한 변화는 관식 채화의 시대 구분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반면 지방의 비관식 건축에서는 청대 후기까지도 다양한 금문이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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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직금 1과 한국의 고리줏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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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직금 2와 한국식 쌍사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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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직금 3과 AI 재현 이미지


요전의 편직금 가운데 하나는 한국에서 ‘고리줏대금’으로 알려진 문양과 매우 유사하지만, 고리가 완전한 원이 아니라 꼭짓점이 필렛 처리된 삼각형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두 번째 사각형 편직금은 한국에서 사용되는 쌍사각금과 닮았지만, 엮임 순서와 색채에서 차이를 보인다. 마지막 편직금은 중앙부가 만(卍) 자 형태로 엮여 있으며, 이는 한국 건축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유형이다.



같은 언어, 다른 발화


처음 이 예배사를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내부에서 금문을 마주했을 때, 중동과의 교류를 통해 동아시아 기하 문양 체계가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떠올린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지 모른다. 이슬람 사원이라는 맥락 속에서, 한국 불교 사찰에서만 보아 왔다고 생각했던 문양을 발견했을 때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나 더 많은 자료와 비교를 거치며, 이 금문들이 중동에서 동아시아로 직접 전파되었다는 증거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히려 이는 이미 중국 전통 장식 체계 안에서 성숙해 있던 기하 문법이, 이슬람이라는 외래 종교의 공간 안으로 흡수되고 재맥락화된 결과로 이해하는 편이 설득력 있다.


그럼에도 이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금문은 특정 종교나 민족의 전유물이 아니라, 동아시아 시각 문화가 외래 사상과 만날 때 선택한 하나의 ‘번역 방식’이었을 가능성이다. 니우지에 예배사의 금문은 전파의 증거라기보다, 서로 다른 전통이 충돌하지 않고 하나의 시각 질서로 공존할 수 있었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사원과 그 안의 금문은, 지금도 충분히 탐구할 가치가 있다.




*이 글은 실제 답사 기록이 아니라, 관련 논문과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장소를 상상하며 구성한 기행 형식의 글입니다.


참고 자료 : 曹振伟, 「牛街清真寺窑殿内的建筑彩画研究」, 故宫博物院

Nancy Shatzman Steinhardt, Early Chinese Mosques


사진 출처 :https://www.ne.jp/asahi/arc/ind/6_china/northern/nor_eng.htm

https://mbd.baidu.com/newspage/data/dtlandingsuper?nid=dt_4337367815046681751

https://m.blog.naver.com/dankoon2001/222705502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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