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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뽕 Nov 03. 2021

엄마의 밥상

다시 돌아갈수 없는 그 시간으로..


지금은 5분이라도 더 자려고 귀찮아서 아침을 안먹지만, 어릴때는 입맛도 없고 귀찮아서 아침밥 먹는게 고역이었다.


크면서 자연스럽게 아침을 안먹게 되었는데, 일생 자식 먹이는게 대업인 우리 엄마는 초등학교 다닐 무렵엔 그렇게 꼭 아침을 먹였다.


먹기싫은 아침을 먹고 가는 날이면, 으례 배가 아팠고 하루종일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 싫었다. 그래도 엄마의 아침먹이기는 그치지 않았다. 


아침 안먹으려는 땡깡쟁이를 한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는 우리엄마의 수고는 눈물겨웠다. 국에 밥을 말아 양말신는 동안 떠 먹여주거나, 혹은 계란에 간장을 넣고 비벼주거나 하는 각양각색의 신박한 아이템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서도 조미김에 밥을 싸서 집어먹을수 있게 놓아주는 못난이 김밥이 가장 생각난다.


아이들 유치원 보낼때 내가 잘 하던 방법이었다.


양말을 신으며 입만 벌리면, 어미새가 먹이를 물어다 주듯이 엄마는 내 입에 작은 김밥을 하나씩 쏙쏙 넣어주었다.


그 우물거리는것도 귀찮았던 내 생의 꽃시절이었다.


행여 목이라도 메일까 싶어 연신 물컵을 입에까지 가져다 주던 엄마는 여전히 자식을 먹이는게 일생의 대업이다.


나는 아이가 야자를 끝내고 와서 밥주는것도 귀찮은 불량엄마지만, 우리 엄마는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나처럼 스팸이나 구워서 찌개한그릇과 주는 불량밥상을 차리지 않는다.


다시 고기를 볶고 나물을 꺼내고 엄마의 주방은 마치 초저녁처럼 분주해지고, 오밤중에 먹긴 부대낄 정도의 밥상이 차려진다.


생선이 노릇노릇 구워지고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가 자리한 엄마의 대업은 한그릇 뚝딱 비워지는 밥공기로 보상을 받는다.


행여 밥을 굶기라도 하면 청천벽력같은 엄마의 걱정을 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먹어야한다. 반드시 먹어내야한다.


어느 날 친정집에 가서, 아침 늦게까지 늘어지게 자고있는 나를 깨운다. 귀찮은 맹렬한 짜증이 밀려들었다.


"엄마, 나 밥안먹어!!!!!"


"일어나라, 일어나서 밥 먹고 또 자라"


"아 안먹는다규!!!!!!!!"


저더러 밥을 해먹으라는것도 아닌데 무슨 상감마마 승은을 베푸는 마음으로 밥상앞에 갖은 짜증을 내며 앉은 나는 잔칫상같은 밥상 앞에서 꾸역꾸역 밥을 밀어넣는다.


"생선도 좀 먹어봐라"


"엄마, 반찬 그만꺼내. 여기 있는것도 다 못먹어"


"한입씩만 먹으면 되지. 아이고 가시나야, 물 마시고 먹어야지"


어린날과 하나도 달라진것은 없다.


여전히 엄마는 물컵을 내 입앞에까지 가져다 주고, 난 손발 못쓰는 사람처럼 입만 벌려 물을 마실뿐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 천지에 자는 나를 깨워서 기어코 밥을 먹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그것도 온갖 짜증을 달고 나오는 나를 위해 반찬은 한입씩만 그렇게해서 기어코 밥 한공기를 다 먹이려는 사람은 우리 엄마뿐이다. 


나랑 악을 쓰고 싸워도 엄마는 숭늉을 끓인다.


화가 돋히면 먹은걸 다 게워내거나, 아예 먹지 못하는 내 성질머리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어릴때부터 그랬다. 밥상머리에서 잔소리라도 듣는 날엔 화장실로 뛰어가 먹은걸 온통 게워내고서야 겨우 내 화를 누르는 못된 성질머리였다.


엄마와 싸우고 짐을 바리바리싸서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나를 끌어다 앉히고 숭늉 한그릇을 떠주며 가도 좋으니 이거 먹고 가라던 우리 엄마.....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외로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고 원망했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엄마가 되고보니, 난 단 한순간도 사랑받지 않은날이 없는 복에 겨운 사람이었다.


오히려 은혜는 모래에 새기고 제 서운함은 뼈에 새기는 배은망덕한 딸이었다. 


집에 갈때마다 바리바리 냉장고를 털어주는 엄마에게 엄마 그거 안가져가 안먹어를 하지못하게 된 계기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실어주고도 아이고 이거 또 깜빡하고 안보냈다 하는 엄마의 마음...그래서인지 엄마가 싸준걸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날엔 마치 몹쓸짓을 한거 같은 느낌이 든다.


오늘도 퇴근을 하면 하기 싫은 밥을 억지로 하고, 어제 먹다 남은 반찬이 있길 바랄것이다. 조금이라도 귀찮고 싶지 않은 나의 게으름 앞에 난 엄마 인생의 대업인 엄마의 밥상이 그리워진다.


마흔이 넘은 딸의 입가에 여전히 물컵을 들이밀며, 맨입에 밥먹으면 체한다. 하는 엄마의 잔소리를 반찬삼아 어리광을 부리고싶다.


생선은 왜 안먹노 하는 엄마말에 가시가 귀찮다고 투정하고싶다.


그러면 우리 엄마는 애를 둘이나 낳고도 저년은 쯧쯧 하면서도 어느새 조기 가시를 바르고 손으로 조기를 뜯어 내 밥위에 올려주고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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