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때문에 현재에 집중할 수 없다면 기록은 그 의미를 상실한다.
앞이 안 보이더라도 한 조각씩, 야금야금,
명확하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글을 남겨야겠다. 결심한 건 출국 수개월 전이었다. 브이로그를 해봤는데, 일상에 압박이 찾아왔다. 고민하기 시작했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건 나를 집어삼킬 듯 짓눌렀다. 통제할 수 없었다. 글을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때에 쓸 수 있고, 글감을 메모해둘 수 있다. 영상편집처럼 긴 시간이 들지도 않는다. 내가 소중한 시간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콘텐츠 생산 시간이 현재를 잡아먹지 않기를 바랐다. 기록이 소중한 이유는 현재가 그렇기 때문이다. 기록 때문에 현재에 집중할 수 없다면 기록은 그 의미를 상실한다. 기록이란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담는 행위이며, 그 가치를 보다 오래 지속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래서 나는 영상이 아닌 글을 선택했다. 순간을 포착하는 동시에 그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였다.
글은 정신이 침잠하고 있을 때 잘 써졌다. 정신없이 행복해서 셔터로 그 순간을 기록해야 할 때보다도, 고통이 희미해지는 시점에 가만히 앉아있다 보면, 내 생각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글을 쓸 때는 음악을 듣지 않았다. 나의 감정이 충분히 가라앉을 수 있도록, 그래서 선명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가만히 있었다. 조용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생각이 보였다.
글은 나를 치유하기도 했다. 스스로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도통 느껴지지 않을 때, 조각난 순간들을 기록하다 보면 어느새 감정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글은 한꺼번에 쓸 수 없다. 감정도, 삶도, 생각도 그렇다. 한 번에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 앞이 안 보이더라도 한 조각씩, 야금야금, 명확하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글을 쓰면서 얻게 된 깨달음이다.
지속할 수 있는 목표를 정했다. 이백 자 여섯 문단. 일주일에 한 개의 글을 완성하자. 하루에 써야 할 분량은 이백 자가 전부다. 어떤 날은 이백 자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또 다른 날은 백자도 쓰기 어려울 정도로 하루가 별 볼 일 없다. 분명한 건 모아놓고 보면 그럴듯하다는 것이다. 여섯 문단이 연결되면 의미와 가치가 생긴다.
이 방법이 옳은 것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글 쓰는 데에 옳은 방법이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2021년 여름부터 그 다음 해 여름까지, 1년 동안 이 방법을 실천했다. 느끼는 바가 있다. 생각이 뻗어나가는 데에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생각이 있어서 그걸 집어넣을 틀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틀을 만들면, 같은 현상에서도 다른 생각을 얻는다. 재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