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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님이 Nov 22. 2019

2014 한일작가 문학낭독회

에쿠니 가오리, 정이현, 쓰지하라 노보루 낭독회

2014 한일작가 문학낭독회

"문학은 개인의 통로"


일시 : 2014년 10월 21일(화) 18:30~21:00

장소 :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3층

주최/주관 : 한일문화교류회의

협찬 : 일한문화교류회의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소담출판사


사회자

문학평론가 허희

현재 「세계의 문학」 기획위원, 교보문고 팟캐스트 <낭만서점>과 스크린 채널 <영화의 발견> 진행


낭독작가

쓰지하라 노보루

1990년 『마을의 이름』 아쿠타가와 상, 1999년 『날아라 기린』 요미우리 문학상, 2010년 『용서할 수 없는 자』 마이니치 예술상, 2011년 『어둠 속』 문부과학대신 상, 2012년 『달단의 말』 시바료타로 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2012년부터 가나가와 근대문학관 관장 겸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정이현

서울에서 태어나 2002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말하자면 좋은 사람』,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사랑의 기초: 연인들』, 『안녕, 내 모든 것』 등이 있다. 이효석문학상, 현대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에쿠니 가오리

도쿄에서 태어나 1989년 『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냉정과 열정 사이 - 로쏘』, 『도쿄 타워』,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나의 작은 새』, 『울 준비는 되어 있다』, 『한낮인데 어두운 방』, 『등 뒤의 기억』 등이 있다. 무라사키시키부 문학상, 나오키 상, 로보노이시 문학상, 중앙공론문예상 등을 수상했다.


<행사 순서>


제1부 한일 작가 작품 낭독


· 쓰지하라 노보루

『가와바타 야스나리 상 수상 작품집』

(자음과 모음, 2010)

「고엽 속의 푸른 불꽃」 제2장과 제5장


· 정이현

『말하자면 좋은 사람』(마음산책, 2014)

「또다시 크리스마스」 전문


· 에쿠니 가오리

『울 준비는 되어 있다』(소담출판사, 2004) 

「생쥐 마누라(こまつま)」 전문


제2부 한일 작가 대담


제3부 청중과의 대화


허희 : 쓰지하라 노보루 작가님, 정이현 작가님,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의 낭독을 들으신 소감을 한 말씀 해주시지요.


정이현 : 작년 12월 쓰지하라 노보루 작가님이 관장으로 계시는 요코하마 가나가와현립 근대문학관에서 낭독회가 열렸어요. 그때는 쓰지하라 노보루 작가님이 사회를 맡았고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과 저는 낭독을 했지요.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의 낭독을 들으면서 귀로는 일본어를 듣고 눈으로는 한국어로 번역된 텍스트를 좇았지요. 청각으로는 일본어를, 시각으로는 한국어를 접하다 보니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데도 두 언어가 멀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답니다.  또 일본어가 잘 아는 언어처럼 들리더라고요. 더구나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의 목소리는 정말 매력적이잖아요. 마치 시를 낭독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음악을 듣는 것 같기도 했어요. 작년 낭독회를 계기로 문학에 대해 그리고 역설적으로 모국어에 대해 생각했답니다.


에쿠니 가오리 : 작년 12월 낭독회에서 정이현 작가님의 낭독을 들으며 문장의 마지막이 ‘다’로 끝나는 걸 듣고, 아, 한국어는 문장이 ‘다’로 끝나는구나. 일본어와 똑같네, 하고 신기한 체험을 했어요. 또 이번 낭독회에서도 역시 한국어를 모르지만 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고요. 

저는 현재 소설 쓰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어렸을 적부터 언어를 좋아했거든요. 말 속에는 스토리가 들어 있어요.

해외를 여행하거나 해외 문학행사에 참여하면서 그 나라의 말을 모르더라도 그 나라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저에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마치 소설과도 같지요. 만약 제가 소설가가 아니었더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겁니다.


쓰지하라 노보루 작가님은 오늘 긴 단편소설의 일부를 낭독하셨는데요. 마치 큰 것을 작은 구멍으로 들여다본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더욱 커보였답니다. 평소 하지 못하던 체험이어서 더욱 흥미로웠어요.


쓰지하라 노보루 : 작년 12월 요코하마에 위치한 가나가와현립 근대문학관에서 한일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한일 작가 낭독회를 열었습니다. 낭독회의 반향이 굉장히 컸는데요. 청중에게 설문조사를 하고 나중에 그 설문조사결과를 읽는데, 읽는 제가 오히려 감동할 정도였다니까요. 그렇다면 장소를 요코하마에서 서울로 옮겨서 다시 낭독회를 해보자고 정이현 작가님이 제안하셨지요. 저는 사회자로는 참여할 수 있지만 낭독은 못하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정이현 작가님이 저에게도 꼭 낭독해달라며 그렇지 않으면 초대해주지 않겠다고 하더라고요.


허희 : 오늘 낭독회가 열리기 전에 다같이 저녁식사를 했는데요, 쓰지하라 노보루 작가님은 한국에 몇 번 와 본 적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최근에는 울릉도에 다녀오셨답니다. 울릉도의 특산물인 오징어도 맛있게 드셨다면서 아마 본인이 울릉도를 가장 최근에 다녀간 일본인일 거라고도 하셨지요.

그럼 이제 문학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이번 명제인 “문학은 개인의 통로”라는 말에 동의하십니까?


정이현 : 이번 행사 때 두 나라의 작가들이 함께 깊이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문학은 개인의 통로”라는 주제를 정했지요.

실은 쓰지하라 노보루 작가님의 「고엽 속의 푸른 불꽃」을 읽고 나서 가장 처음 떠오른 문장이 ‘문학은 개인의 통로’였어요. 그래서 메모를 했죠. 이 주제를 생각하며 낭독할 작품을 골랐고요.

쓰지하라 노보루 작가님은 굉장히 좋은 소설가예요. 일본에는 많은 작품이 소개되었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가와바타야스나리 상을 수상한 단편소설 「고엽 속의 푸른 불꽃」 딱 한 작품만 소개되었지요. 「고엽 속의 푸른 불꽃」을 다 읽으면 두 사람의 개인과 개인이 기이한 운명처럼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모티브가 등장해요. 이 작품 속에서는 ‘매직’으로 표현되는데요. 문학이 아니었다면 낯선 타인과 타인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말해 ‘문학은 개인의 통로’라는 말은 「고엽 속의 푸른 불꽃」을 읽은 저의 독후감인 셈이죠.


허희 : 보편적인 경험이 아니라 단독적인 경험을 이야기한 것이기에 “문학은 개인의 통로”라고 할 수 있겠죠.


에쿠니 가오리 : “문학은 개인의 통로”라는 주제를 들었을 때 저는 ‘통로’라는 단어에 끌렸어요. ‘통로’란 어떤 의미일까, 여기서 말하는 ‘통로’는 뭘까, 하고 처음에는 기묘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정이현 작가님이 주제를 정한 경위를 듣고 보니 납득이 갑니다. 이 경위를 듣기 전에는 ‘통로’란 작은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내부에 있는 작은 길을 더듬어가는 작업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거든요. 그 길의 앞에는 뭐가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 중요해요. 우리가 문학을 읽고 쓰고 이야기하고 우리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 앞을 알지 못한다는 점이야말로 중요하죠. 어떤 목적이 있는 길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길이에요. 그 앞에 뭐가 있는지는 모른답니다.


허희 :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소설은 작은 소자를 써서 작은 이야기라고 쓰잖아요?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삶을 담아내는 큰 이야기가 되는지를 일깨워주셨군요.


쓰지하라 노보루 : “문학은 개인의 통로”라는 주제를 제 소설 「고엽 속의 푸른 불꽃」을 읽고 떠올리셨다니, 제 소설의 주제를 이제야 찾아낸 느낌입니다. 정말로요. 저는 제 소설의 주제를 잘 찾지 못해요. 쓰면서 발견할 때도 있답니다. 오늘은 두 작가님의 말을 듣고 나서야 발견하게 되었군요.


허희 : 저는 정이현 작가님과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정이현 작가님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작가님이 마치 비평가 같더라고요. 이번에도 비평가적인 능력이 발현되었다고 봅니다.

오늘 낭독하신 세 작가님들의 작품을 읽은 독후감을 들어볼까요?


정이현 : 두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문학 안에서 개인과 개인이 이어지는 길을 발견했다는 걸 느꼈어요. 우리 모두는 개인이죠.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의 단편집 『울 준비는 되어 있다』를 오래전 읽었어요. 작년 12월 낭독회에서도 『울 준비는 되어 있다』에 수록된 단편을 낭독하셨는데요, 그래서 그 전에 또 읽고 이번에도 낭독회 전에 다시 읽었어요. 읽을 때마다 신선하고 은은한 느낌을 주는 단편집이에요.

「생쥐 마누라」의 주인공 미요코는 공허한 인물이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에요. 결코 문학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평소 스쳐 지나가기 쉬운 이러한 인물의 내면을 새로운 시각으로 탐구하고 날카로운 단면을 독자에게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마지막에 반전이 있을 줄 알았어요. 미요코가 독한 술을 마시고 주정이라도 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 점이 오히려 더 냉혹한 반전으로 다가왔어요.


에쿠니 가오리 : 저는 드라마틱한 사람보다는 평범한 사람을 소설로 쓰는 걸 좋아해요. 평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야말로 소설의 묘미죠.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중년의 여성은 한국이든 일본이든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인물이에요. 하지만 그녀들은 한 명 한 명 다 다르답니다. 그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진 아무도 몰라요. 알 수 없다는 그 무서움을 저는 늘 쓰고 싶어요. 평범한 사람을 신선한 눈으로 보았다는 정이현 작가님의 말씀에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반전이 없는 점은 사과드립니다.


쓰지하라 노보루 작가님의 「고엽 속의 푸른 불꽃」은 앞서 말했다시피 형형색색의 풍경을 작은 구멍으로 들여다본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더욱 선명히 보였답니다. 그 반면 정이현 작가님의 「또다시 크리스마스」는 손바닥에 스노우볼을 올려놓고 보는 것 같았어요.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세계가 투명하게 다 보였어요. 두 작품 모두 낭독은 물론 소설로 읽는 매력도 있었어요. 독자를 머나먼 세계로 이끌어주는 작품과 가까이 두고 보고 싶은 작품이었어요. 대조적인 매력이 물씬 풍겼답니다. 서로 전혀 다른 독후감을 맛보게 해주는 풍부한 작품이었어요.


허희 : 백화점 하면 정이현 작가님도 일가견이 있으시죠. 작년 12월 낭독회에서 「삼풍백화점」을 낭독하셨다면서요?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의 「생쥐 마누라」의 일본어 원제는 ‘고마쓰마(こまつま)’라고 읽는데요, 제 생각에는 어유희적인 요소를 넣은 것 같아요. ‘마’가 연속되면서 언어적인 울림을 주죠. 『반짝반짝 빛나는』의 원제 ‘키라키라히카루(きらきらひかる)’도 그렇고요.


쓰지하라 노보루 : 정이현 작가님이 제 소설 「고엽 속의 푸른 불꽃」의 주제를 발견해 주셨지요. 그래서 저도 정이현 작가님과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 작품의 주제를 찾아봤어요. 바로 ‘시간’입니다.


우선 정이현 작가님의 「또다시 크리스마스」를 살펴볼게요. 

지나고 보면 20년은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 아니다. 그동안 아버지의 건강을 서서히 파괴해나간 것이 한숨이었을까, 술이었을까.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는 서울 북동쪽의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20년 사이 우리는 이 도시의 끝과 끝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는 채 두어 달을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성긴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는 날이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20년 만에 언니와 준이가 찾아옵니다. 20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쓰여 있지 않아요. 쓰여 있지 않은 20년이 바로 이 소설의 에센스예요. 눈이 흩날리는 풍경이 이 작품의 주제입니다. 소설 속에서 시간을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점은 매우 중요하죠. 독자는 20년의 공백을 상상합니다. 눈은 그 공백의 시간에 내린 거죠. 소중하고 알찬 시간에 말이에요.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의 「생쥐 마누라」의 주인공 미요코는 20년간 바람을 핀 적이 없어요. 미요코는 평범한 주부죠. 평범함이 가장 무서운 겁니다. 바람도 안 피고 20년간 ‘생쥐 마누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아내와 엄마 역할을 착실히 해내죠. 그 한편으로는 20년간 옛 연인 ‘신지’를 생각하며 현모양처를 연기하고 자위행위까지 하는 위험한 주부예요. 마지막에 그라파라는 독한 술을 마시는데요, 20년간의 가정에서의 성실한 시간과 신지를 상상한 시간을 그라파 속에 녹이고는 당당히 백화점 지하로 내려갑니다. 일종의 카타르시스죠.


허희 : 「고엽 속의 푸른 불꽃」 역시 시간이라는 모티브를 갖고 있죠. 고엽이라는 것 자체가 오랜 시간을 뜻하니까요. 그 응집을 태우는 거죠.



<청중의 질문>


질문 1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께 질문드립니다. 미요코는 부유한 가정에서 평온하고 나른한 삶을 사는 인물로 보이는데요, 주부의 일상을 보여주며 ‘생쥐’를 제목으로 정한 것은 역설적인 표현인가요? 미요코의 일상을 읽으며 독자가 어떤 감상을 하길 원하나요?


답변

미요코는 특별히 부유하거나 빈곤하지 않은 평균적인 가정의 도쿄에 사는 주부예요. ‘생쥐’는 그에 대한 역설은 아니랍니다. 일본에는 ‘쥐처럼 일한다’라는 말이 있어요. 깎아내리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칭찬의 말도 아니에요. 만약 어떤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생쥐 마누라(こまつま)’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반은 자랑이고 반은 겸손에 해당해요. 바지런한 만큼 잔소리도 많다는 뜻이죠. 하지만 미요코의 가족이 미요코에게 ‘생쥐 마누라’나 ‘생쥐 엄마’라고 부르는 것에는 악의는 없어요.

미요코가 ‘생쥐 마누라’라는 별명을 명예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저는 좀 씁쓸해요. 그러한 미요코의 상태, 그 실태에 대한 아이러니예요.

‘생쥐 마누라’는 가족에게 있어서 결코 나쁜 존재가 아니에요. 부인이나 엄마를 소홀히 생각하거나 만만히 여기는 단어긴 하죠. 미요코가 그라파라는 독한 술을 마시거나 남몰래 옛 연인을 생각하는 것은 미요코에게 있어서 작은 반란이에요.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자신만의 작은 반란, 아무도 모르고 알아주지 않는 반란이요.


질문 2

쓰지하라 노보루 작가님께 질문드립니다. 스타르힌과 스스무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 계기가 있나요? 어떤 것에 마음이 동해서 소설을 썼나요?


답변

‘싱크로니시티(synchronicity)’라는 말이 있어요. 공시성 혹은 동시성이라는 뜻이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연결되는 것을 말해요. 예를 들어 성경을 통해 먼 옛날에 살았던 예수와 내 마음의 교차점을 발견하는 것도 여기에 속해요. 싱크로니시티는 문학을 통해 실현 가능하답니다. 러시아에서 온 스타르힌과 패전으로 인해 톨 섬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스스무는 마지막에 교토의 구단에서 만납니다. 이들이 속한 구단은 당시 가장 약했죠. 그곳에서 스타르힌은 300승을 달성합니다. 두 사람이 야구장에서 만난 것은 소설의 힘이에요. 소설이나 문장의 힘이 아니고서는 이뤄낼 수 없는 세계죠. 나와 다른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것을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허희 : 야구는 인생에 비유되죠.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채 9회말까지 가니까요.



<소감과 인사>


정이현 : 벌써 두 시간이 훌쩍 지났네요. 아쉽지만 저희가 준비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아쉽기 때문에 더 오래 그리고 깊이 기억된다고 생각해요. 이대로 끝난 게 아니라 소설로, 문학으로 남았으니 돌아가셔서 소설을 읽으며 여운과 또다른 감정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이 낭독회는 거창하지 않고 소박해요. 그래서 더욱 강력히 스며들어 오래도록 잊히지 않죠. 이런 시간이 정례화되길 바랍니다.


에쿠니 가오리 :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넓은 행사장에 많은 인원이 그것도 비오는 날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어요. 중요한 건 우리가 공유했다는 거예요. 일단 공유하면 그것은 결코 무를 수 없어요. 한번 일어난 일을 지울 순 없죠. 오늘 이 자리를 통해 발견한 것도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이따금 한국에 올 테니 잘 부탁드립니다.


쓰지하라 노보루 : 오늘 수고해주신 사회자 허희 평론가님, 정이현 작가님,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 통역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낭독회를 추진해주신 한일문화교류회의에도 깊은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다음 낭독회는 일본에서 그다음 낭독회는 한국에서 열리길 바랍니다. 아까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이 말씀하셨듯이 교류(공유)는 두 번 다시 지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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