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에 잔칫상 줏어 오던 날"

"달밤에 잔칫상 줏어 오던 날"

by 감성꾸이


작년 딱 이맘 때 이었던 것 같아.


그날 밤은 구름이 없어서 달도 참 잘 보이고 밤공기도 청량감이 도는 그런 날이었지. 동네 시청 앞 잔디 광장에서 가을 맞이 무료 영화 야외 상영회가 있다기에 갔었어.


아빠랑 어슬렁어슬렁 추리한 동네 패션을 선보이며 광장까지 걸어갔었지. 역린이라는 영화가 하더군.


빈 자리가 틈틈이 있긴 했지만 가족 단위 ,동네 어르신, 혼자 나온 사람 등등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있었어.


가까이서 보려고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었지. 잔인한 장면 장면이 많은 탓에 나는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재미도 그다지. 근데 가을 밤바람 우습게 봤지 뭐야. 추위에 오들 오들 떨며 연신 양 팔을 감싸 쥐고 위 아래로 비비적 비비적. 닭살이 돋고 약간의 입김도 났던가? 그건 기억이 잘... 아무튼


반면 재밌게 보고 계시던 아빠를 쿡쿡 찔러 집에 가자고 진상을 부렸지. 뒷 부분은 집에 가서 컴퓨터로 다운받아서 따뜻한 집에서 보자고 유혹의 목소리로 설득했고 아빠는 나의 설득에 넘어갔지.


그런데 주섬 주섬 짐을 챙기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저 멀리 뭐가 보였어. 해는 지고 깜깜한데 환한 가로등 밑에 누군가가 버리고 간 잔칫상이 보이는 거야.


매우 올드한 디자인의 목조로 된 잔칫상. 왜 있잖아 명절에 차례 지내고 나오면 꼭 등장하는 그 널따랗고 사람 키 만한 짙은 붉은 갈색을 띠는 직사각형 잔칫상.


'대박! 완전 멀쩡하잖아.' 옻칠이 제법 잘 되어있던 버려진 잔칫상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거렸어. 나를 데려 가달라고 외치는 잔칫상의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어.


나는 무슨 보물이나 발견한 듯이 아빠를 쳐다봤고 아빠도 나를 쳐다보고 우린 서로 눈을 마주치며 회심의 미소와 함께 동시에 고개를 끄덕. 마치 첩보요원이나 된 듯이 주위를 살피며 어기적 어기적 그 거대한 사각 밥상으로 걸어갔어.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상을 모로 세워서 허벅지에 붙이고 오른손으로 잡아 들고 아빠도 뒤에서 나와 동일한 포즈로 들었어.


마침 얼마 전 이사하다가 망가져서 없어져 버린 컴퓨터 책상이 필요했는데 한동안 대신할 요량으로 데리고 가기로 한 거지. 그때만 해도 몰랐어. 나의 그 선택이 얼마나 많은 파장을 가지고 올 줄은 정말 몰랐어.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거지.


근데 그 짓이 미쳤다고 생각하기까지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 몰랐어. 맨 몸으로 걸어서 집까지 오던 거리랑 내 허리 위 상반신 까지 오는 상을 들고 집까지 가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하긴 처음이 아니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우리 집이 겁나 멀게 느껴지는 거지. 그 거대한 잔칫상을 들고 휘황찬란한 신시가지를 지나고 횡단 보도를 건너고 방지턱을 피하고 골목 골목을 지나야 만 했어.


진짜 별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저지른 일이 었는데 횡단 보도를 건너는 일은 정말 창피했어. 게다가 신호가 빨리 바뀌지 않아 그 큰상을 거리에서 홍보해야 했거든. 눈 앞에 4차선 도로에 번쩍이는 라이트를 켜고 지나는 고급진 차들이 전부다 우릴 보고 비웃는 착각마저 들었어.



드문 드문 우리를 스치는 눈길 들이 전해 질 때면 그 잔칫상 뒤에 숨어 버리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너무 많이 왔고 버리기 억울해서 그 상황을 얼른 피하고 싶었어.


최대한 빨리 가려고 아빠랑 영차 영차 구령까지 맞춰가며 상을 들었다가 놨다가 했지. 꽤 무겁더군 그 녀석. 밤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어. 나의 부끄러움을 감춰주는 어둠. 무거운 상을 들고 용을 써대니 추위 때문에 영상 관람을 중지하고 나온 것을 잊을 만큼 몸에 땀이 나고 열이 올랐어.


다리가 불편해 빨리 따라 오지 못하는 아빠가 답답해서 틱틱 거리기도했지. 늙고 몸이 불편한 노부에게 불효하는 기분 마저 들었어. 그러다 골목에 접어 들었는데 갑가기 아 진짜 너무 웃긴 거야. 순간 잔칫상을 땅 바닥에 내려놓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배꼽을 잡고 미친 듯이 웃었는데 동시에 아빠도 빵텨져서 우리 부녀는 정신없이 웃었어.


뭐랄까 이 상황이 너무나도 웃겼달까. 보도블록 바닥에 털썩 줏어 앉아서 허리춤 넘게 오는 상에 기대어 흐느끼며 막 웃었어. 웃느라 들숨과 날숨이 불규칙 적일 때 허파 바람 빠지는 목소리로 " 아빠 지금 우리 뭐하는 거냐"고 그랬던 거 같아.


다 큰 처자와 환갑이 다 된 남자가 일렬로 줄 맞춰서 그 거대한 잔칫상을 들고 가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 싶기도 하고. 엉킨 머리를 대충 묶고 후즐근한 운동복 바람으로 굉장히 츄리한 몰골로 자유롭게 나온 내 모습이 화룡점정이었지.


지나는 사람들 도로 위의 운전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뭐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지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웃음이나. 부녀 잔칫상 절도단으로 보진 않았을지.


물어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해를 풀고 싶어서 괜히 혼잣 말을 중얼거려보기도 했었지. "아빠 이 상 집에 가서 어디에 놓을까?" 이건 순전히 지나가는 행인들을 의식해서.


저 사람과 나는 아빠와 딸 사이며 집에 필요가 있는 피치 못할 연유로 그 큰상을 들고 가야 하는데 집이 바로 그 근처여서 들고 이동하는 거라는 느낌을 주고 설명하고 싶었나 봄.


그 무렵 참 웃을 일이 없었는데 그 해 웃을 웃음을 그 날 다 웃은 것 같아. 그날 달이 참 예뻤는데 달 한번 구경하고 잠깐 상내려놓고 쉬고 숨 고르면 다시 영차 들고 10미터 가고 그런 식으로.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낑낑대고 집까지 갔고 마지막 난 코스 계단까지 오르고 나서야 무사귀환할 수 있었지. 총 한 40분? 50분 가까이 걸렸나??


집에 도착하자 말이 없던 아빠가 시크하게 딱 한마디 말했어

"상따 위 다시는 줏어 오지 말자"


나도 생각했어

'쳇 나도 뭐 이제 절대로 상따 위 줏어오지 않을 꺼다 뭐'


정말 잊지 못 할 "달밤에 잔치상 줏어 오던 날"


"아빠와의 추억꾸러미 줏어 오던 날"


P.s : 주워가 표준어이지만 뭔가 그 꾸질꾸질한 느낌이 잘 살지 않아서 줏어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주워는 왠지 고급진 느낌.ㅎㅎ시적허용처럼 이해해 주시길^^ 그 잔칫상 컴퓨터 책상으로 잘 쓰고 있네요 껄껄껄. 가을이 되니 특별했던 그날이 생각나서 그냥 말하듯이 끄적끄적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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