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검둥이>

우리 집 검둥이

by 감성꾸이

<우리 집 검둥이>


어릴 적 일이었어요. 여름 밤 냄새가 진동하던 어느 늦은 밤 엄마가 나를 다급하고 목청껏 부르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렸어요. "딸아 일로 와본나 얼른! 검둥이가 새끼를 낳았다 빨리 와 바라~"


그 소리를 들은 어린 나와 유치원을 다니던 동생은 현관에서 바쁘게 신발 뒤꿈치를 꺾어 신고 검둥이의 집이 있는 옆 마당으로 앞 다퉈 질주했어요. 마치 시합이나 하듯이요.


사방이 까맣고 스르륵 스르륵 풀벌레 소리만이 정막을 가득 채우던 그 밤을 나는 생생히 기억해요. 검둥이는 새끼를 낳았더라고요. 그것도 3마리씩이나. 우리 네 식구는 아빠가 만든 개집 앞에 옹기종기 붙어서 검둥이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아빠는 랜턴으로 개집을 밝혔고 동생은 옆에서 자꾸만 엄마 아빠에게 새끼가 어떻게 생기는 거냐. 따위의 질문을 해대며 구시렁거리어서 짜증이 났어요.


나는 가만히 경이로운 순간을 집중해서 지켜보느라 눈을 뗄 수가 없었거든요. 약간 비릿한 냄새가 나고 검둥이는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매우 지쳐 보였고 대조적으로 눈도 채 뜨지 않은 생명의 생생한 꼬물거림…….


아참! 우리 집 검둥이로 말할 것 같으면 나와 인연이 된 최초의 동물. 아빠는 강아지가 무슨 이름이냐며 검으니까 검둥이다고 했지만 나는 멋진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 게 아직도 후회가 돼요.


아빠가 시장에서 강아지 암수 두 놈을 사오셨는데 검둥이는 암컷이면서도 으르렁 겁을 줘서 수컷 밥을 다 빼앗아 먹곤 했어요. 뼈다귀 같은걸 주면 바닥에 파묻어 매번 모아 놓고 기억을 못하던 검둥이.


힘이 세어 마당에 손목 줄을 끊는 일이 많았던 검둥이. 유독 짖는 소리가 커서 낯선 이의 방문을 가장 먼저 알려주던 검둥이. 어느 여름에는 뱀에 물려 입이 부어 주먹만 해지기도했었고요.


그때 난 검둥이가 죽을까 엄마에게 혹시 검둥이가 죽냐고 계속 물어봤는데 엄마는 개는 뱀에 물려 죽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나는 검둥이가 죽을까 계속 걱정이 되었어요.


다행히 엄마 말대로 죽지 않아서 나와 여름에는 개울에 수영을 함께 가기도 하고 한 겨울 첫눈을 맞으며 정신없이 뒷동산을 뛰놀기도 했어요.


그런 검둥이가 자라서 새끼를 갖더니 배에 털빛이 빛나며 반질반질하고 볼록한 것을 오가며 보게 되었어요. 나와 함께 성장한 아기 검둥이가 자기와 꼭 같은 새끼를 낳는다는 게 너무 신기하기만 했어요.


태어나서 처음 보게 된 최초의 탄생과 신비로움에 다리가 찌릿 찌릿 저리도록 2시간 넘게 그 밤에 개집 앞에 쪼는구려. 앉아 있었던가. 같아요. 이유는 검둥이가 자꾸만 새끼를 낳아서…….


세 마리 네 마리 다섯 마리 여섯 마리……. 오 마이 갓 아홉 마리! 검둥이는 제 새끼를 아홉 마리나 낳았는데 어미 살 속에 파묻혀 있어 나는 몇 번이나 다시 세었던 것 같아요.


'에이 한 마리만 더 낫지' 이런 철없는 생각을 했는데 그러면 검둥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내겐 검둥이가 더 소중하니까요.


태어난 날부터 나는 학교를 다녀오자마자 검둥이 새끼를 보러 개집에 인사를 가는 것이 일과가 되었어요. 세차게 생명의 젖줄을 미친 듯이 빨아들이는 녀석들을 보며 눈도 안 뜬 것들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던가. 같아요.


그런데 새끼가 많다 보니 이 치열한 경쟁에서 열외 되고 도태되는 녀석이 늘 3마리 정도가 되었어요. 근데 매일 올 때마다 도태되는 녀석들은 바로 그 비실비실 기운 없고 약해서 내 마음이 쓰이게 하던 그 세마리었어요.


나는 어미젖에 찰싹 거머리처럼 붙어 있던 얄미운 놈들을 제거하고 3마리에게 우선 젖을 물려주었어요. 이렇게 까지 해주었는데도 힘없이 겨우겨우 어미젖을 빠는 모습이 참 안쓰러웠어요.


'으이그 이러니 만날 치이고 못 먹지' 나는 한동안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주인이라는 나의 절대 권력을 사용해 그 세 마리를 보살피느라 꽤 많은 시간을 사용하곤 했어요. 그날도 어느 날처럼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엄마가 그랬어요.


새끼가 죽었다고 예상대로 그 세 마리……. 나는 엄마가 죽은 새끼를 꺼내는 걸 일부러 보지 않았어요. 그리고 얼마 뒤 엄마는 집에서 한참 떨어진 동산에 삽을 퍼서 새끼를 잘 묻어주고 왔다고 했어요.


나는 슬펐지만 울지 않았어요. 그리고 또 이삼일 정도가 흘렀어요. 나는 한동안 가지 않던 검둥이의 개집을 다시 갔어요. 그런데……. 어?! 검둥이의 새끼가 9마리가 있는 거예요! 내가 잘못 봤나?? 이상하다 다시 세어 봐도 9마리. 정성스럽게 새끼들을 품고 있는 그 모습은 며칠 전 모습처럼 너무 평온했어요.


그랬어요. 검둥이는 제 새끼들을 데리고 온 거였어요. 엄마가 검둥이가 잠깐 힘으로 목줄을 끊은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때 흙을 파헤쳐 데리고 온 것 같다고 했어요. "아이고 용타 지 새끼 데려 왔는가 보네" 엄마가 말했어요. 처음엔 흙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녀석들을 보면서 믿어지지가 않았는데 사실이었어요.


‘검둥이는 손이 없는데 이 아이들을 어떻게 데리고 온 거지? 그리고 검둥이는 새끼들이 묻힌 장소를 모르는데 어떻게 찾아온 거지? 깊이 묻혀 있어서 힘들었을 텐데 새끼들이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할 만큼 어떻게 흙이 묻어있지가 않지?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이 교차했어요.


하……. 가슴이 너무 먹먹하고 마음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어요. 한 놈 한 놈 번갈아 조심스럽게 입에 물어와 혀로 깨끗이 놈들을 정돈했을 검둥이가 상상이 돼서……. 너무 마음이 이상했어요. 그때 검둥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차가운 잠을 자고 있는 새끼들을 다시 품에 안고 어떤 생각을 했던 걸까?


이번에도 나는 울지 않았지만 난생 처음 느껴보는 마음속 요동치는 감정과 여운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계속 서성였어요. 그리고 나는 한동안 그 생각에 꽤 빠져있었어요.


내가 태어나 마주한 최초의 탄생. 그리고 최초의 죽음.



덧붙이는 글 : 며칠 전에 동생에게 너 그 일을 기억하냐고 물었는데 나보다 어렸던 동생도 누나 그걸 어떻게 잊어 이러네요. 말하지는 않았지만 우린 검둥이를 마음속에 각각 간직하고 있었나 봐요.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검둥이가 유독 너무 보고 싶어 지는 밤입니다……. 보고 싶어 우리 검둥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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