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띠 마망(Petite Maman) - 셀린 시아마

by 허수민

- 함께 들으면 좋을 곡 : Kings of Convenience - Cayman Is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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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 시아마(Célline Sciamma) 감독님의 신작 영화 ‘쁘띠 마망(Petite Maman)’을 봤다. 이 외 셀린 감독님의 작품으로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톰보이] 등이 있다.


처음 본 감독님 작품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었다. 한국에서 정말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내게 보다 깊은 인상을 주었던 작품은 [톰보이]였다. 이 작품을 만나고 난 뒤 셀린 감독님의 다른 작품도 알아보던 찰나에 신작 ‘쁘띠 마망’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끔 그런 책이나 영화들이 있다. 스치듯 지나 봤는데, 그 작품에 직접적으로 닿기 전까지 잔상으로 남아 계속해서 아른거리다가 결국 나로 하여금 그 작품들을 보게끔 하는 것들이. 그런 작품들은 거의 예외 없이 내게 무언갈 주고 가곤 했는데, 이 작품도 그랬다. 꼭 보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맞아지는 계절 냄새처럼 잊힐 법하면 어김없이 찾아와 진득하게 앉아 있다 가곤 했다.

목적지에 다다랐지만, 그 앞으로 뻗어진 가을길이 좋아서 괜히 더 걸어보듯 잔상이 희미하게 남긴 자국을 따라 영화를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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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 revoir [오 흐부아]”


프랑스어로 “안녕히 계세요”라는 뜻이다. 십자말 풀이 이후, 할머니들께 안녕히 계세요라는 인사를 건네는 넬리의 뒤를 따라 걸으며 영화는 시작되어 간다.


어딘가 남다른 걸음걸이, 무뚝뚝한 듯 섬세하고, 털털한 듯 사려 깊으며, 무심한 듯한 눈동자에 정감 어린 마음을 지닌 넬리는 어린아이 답지 않으면서도 어린아이답다. 보다 정확히 말해서, 넬리답다라는 수식어만이 넬리와 어울릴 것 같다.


이 영화를 처음 보며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터덜터덜 걷는 넬리의 걸음걸이부터 시작해서, 그저 일상적인 장면들임에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처음 봤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 내게 공감이 되는 인물을 만났던 게. 넬리의 특성들이 셀린 시아마 감독님의 어린 시절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고 하셨는데, 내 어린 시절과도 많이 닮아 있었다. 내가 내 안에서 영영 지운 줄 알았던 내 어린 날이 그곳에 있었다. 여자 아이라면 마땅히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된 관념이 아닌, 그저 한 사람이, 넬리라는 인물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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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로 넘어가는 시점 즈음 나는 내 어린 날의 많은 부분들을 버렸었다. 반성을 명분 삼아 자책을 필두로 나라는 존재를, 쌓아온 내 정체성들을 부정하고 깨부수는 데에 여념이 없던 시기였다. 그건 알에서 깨어 나와 새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날지 못하는 알의 상태인 나를 내 손으로 직접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내 시선이 닿지 않는 절벽 너머 낭떠러지로 내던지는 일이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보통의 여성으로서 지녀야 하는 것과 대척점에 서 있는 그 모든 성질을, 나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내 안에서 버리려고 부단히 노력했었다. 그렇게 사라진 것도,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도 있었다. 버려 놓고서도 버린 줄 몰랐다. 어렴풋이 알곤 있었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영영 다신 나를 찾을 수 없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영화 속 넬리의 모습을 통해 내가 버렸던 어린 날의 나를 봤다. 그리고 내가 나를 내던졌던 절벽에 내려가 그 황량한 벌판에 홀로 웅크리고 있는 어린 나의 뒷모습을 마주했다. 발가 벗겨진 기분이었다.

영화는 눈물 나도록 따스했고 다정했으며 그렇기에 내가 어린 나를 내던져 둔 절벽 아래가 얼마나 추운 곳인지 보다 선연히 알 수 있었다. 누군가 그 아이를 좀 안아주었으면 했다. 웅크려 있음에도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들을 막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이던 그 모습이 추워 보였고 나 또한 추웠다. 영화를 보며 내내 생각했다. 누가 어린 날의 나 좀, 그리고 나를 좀 안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신은 따스한 침묵으로 답한다. 어린 날의 내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도, 안아줄 수 있는 이도 나뿐이라고.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 다시 또 보러 갔을 때 보다 인상 깊게 보게 되었던 건 넬리와 마리옹의 관계였다.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부모님도, 저마다 원하는 삶이 있었을 텐데 나로 인해 포기해야 했던 것들이 있었을 것이리라고… 나를 낳아서 후회한 적은 없었을까. 부모님이 되기로 택했던 것을 두고 후회된 적은 없었을까. 엄마, 아빠란 부름 뒤로 미뤄진 당신들의 존함이 앞세워 나타내 지던 순간들이 퍼득 그리워지는 순간들은. 나는 번번이 부모님을 실망시킨 것 같은데… 하고 부모님께 여쭐 용기도 그렇다 하여 내가 내게 그렇지 않을 거라고 답해줄 자신도 없어 닿을 길 없는 구렁텅이에 하염없이 빠지게 될 때가.


이와 비슷한 마음을 담아 묻는 넬리에게 어린 마리옹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그게 내겐 마치,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 대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난 다르면서도 같은 존재로서 그저 있음에, 존재함에, 고맙다고 답하는 것만 같았다. 영화의 온 장면 속에서 당신의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괜찮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 인터뷰에서 셀린 감독님은 이런 말을 했다.


Q. 영화를 매개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 “특정한 메시지보다도,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는 마음의 동요가 일었으면 한다. 영화가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욕망의 실체를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거다. (생략)” - 셀린 시아마


Q. 이제까지 선보였던 여느 작품들과 다른 결이다. 변화의 계기는 무엇이고,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나.

“(생략) 특정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기 보단, 항상 영화를 통해 에너지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캐릭터의 여정을 통해 관객이 본인의 욕망을 직면하고, 발견하는 경험이 되길 바란다. 사랑하고자 하는,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를 비롯해 어떤 욕망이든 뚜렷이 직면함으로써, 본인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길 희망한다. 결국 욕망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되겠다.”


정확한 전달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의도하고자 하는 바를 적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문법을 구사해 낼 수 있는 것일까. 이 영화를 통해서 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어떤 여성적 태도나 남성적 태도가 아닌, 그저 나는 나대로 괜찮다는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메시지를 받았던 것 같다.


나는 편한 옷 위에 펑퍼짐한 잠바를 걸치고, 한쪽으로 치우쳐야만 발 끝이 겨우 땅에 닿을 정도로 안장을 높여 자전거를 타며, 바람을 가르는 사이로 내 긴 머리칼이 바람결에 흩날리는 느낌이 좋다. 바지 건 치마 건 상관없이, 때에 따라 옷을 입는 게 좋다. 화장을 하는 것도, 화장을 하지 않는 것도 좋다. 어떤 성을 지닌 나 자신이 아닌, 그저 나인 게 좋다.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그 사람들의 성과 상관없이 그저 그 사람 그 자체로 대하는 게 편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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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ut(쌀뤼)”


프랑스어로 안녕이란 뜻이다. 안녕히 계세요란 말로 시작해 인사하듯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끝나는 이 영화처럼, 나는 내게 다가가 다시금 인사를 건넨다.


“안녕(Salut),”


쁘띠마망이란 영화를 통해,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용기와 힘을 주신 셀린 시아마 감독님께 감사하다. 나도 꼭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셀린 감독님과 꼭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