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 J. D. 샐린저 ]
[함께 들으면 좋을 곡 : Sea Change (Stephan Moccio) ]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다 읽고 홀든이라는 친구와 작별하고 나면 홀가분할 줄 알았다. 드디어 다른 소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할 줄 알았다.
근데 웬걸, 알 수 없는 울적함에 휩싸여 서점을 한참 동안 서성이다가 왔다. 서점에 가면 왜인지 모를 압박감에 숨이 턱 막히면서도, 그곳으로 걸음 하게 되더란다. 오직 이것 때문에만 울적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다시 이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펼치고 홀든을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괜시리 시리고 찡하다 잠깐잠깐 울적해지는 게, 홀든 몫이 큰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울적함이라 그에 따른 파급력이 보다 큰 듯하다. 책 이야기의 초반부에 홀든이 불만을 표할 때 고개 한 번 갸웃거리고 지나쳤던 내가, 후반부로 갈수록 홀든이 울적함을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 잠시 멈추어 홀든이 느끼는 울적함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느낌인 걸까 하며 그의 생각에 나를 대입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을 잠깐 자각했을 때, 그때 직감해야 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홀든이란 인물과 작별하는 게 조금 슬플 수도 있다는 것을.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나눠서 읽느라 내가 그렇게 변하고 있다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홀든, 이 친구에게 조금 고마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조금 보다도 더 많이.
세상의 부조리함을 보며 구역질 난다고 했던 홀든의 표현이 있었는데, 순간 거부감을 느꼈다가도 이내 공감이 되고 또 적절하고도 통쾌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세상은 어떤 의미였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울적하다고 하는 그의 표현 속에서도 처음에는 의아하다가도, 점차 지나며 울적하다고 말하는 그의 문장들을 만나게 될 때 왜인지 모를 따스함을 느꼈다. 아마 울적해하는 홀든 옆에 바로 서 있었더라면, 그의 눈시울이 뜨겁게 붉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홀든은 세상의 부조리함 앞에서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냉소하지 않았다. 기꺼이 슬퍼했고 짜증 냈고 울적해했다. 그 덕택에 대부분에 있어서 되도록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하며 외면했던 나의 부정적 느낌들에 울적함이란 명명할 단어를 선물 받고 그 느낌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홀든에게 깊은 감사를 느낀다.
무엇보다도 홀든식 표현의 최고봉은, 홀든의 어린 동생 피비와 어린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행동들을 보며 두 손 다 들었다고 하는 말이었다. 이렇게 뚝 떼어진 문장 자체로만 보았을 때는 무척 정감 없이 딱딱해 보이는 듯 하지만, 글을 읽다 보면 홀든에게 있어서 이것보다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표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게 최고의 찬사임을.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가만히 듣다 보면 어느새 두 손 다 들었다고 표현하다 못해 함께 손을 들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감히 그 감격을 이 세상 언어로 마땅히 표현할 도리가 없어서, 결국 표현하기를 그만두고 손을 들고 그저 감탄하는 것에 여념이 없는 그를 혹은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 경우에는 그랬다. (그에게 있어서 ‘두 손 다 들었다’는 표현이 있다면, 내게는 ‘감격의 이마 탁’이 있겠다.)
“정말로 내가 감동하는 책은 다 읽고 나면 그 작가가 친한 친구여서 전화를 걸고 싶을 때 언제나 걸 수 있으면 오죽이나 좋을까 하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 ‘호밀밭의 파수꾼’ 중에서
책 속에 있는 홀든의 대사 중 한 줄이다. 내게는 J.D. 샐린저 작가 분이 쓰신 책 중 처음 읽어보는 것이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책을 쓰신 작가님과 내적 친밀감을 형성하려면 적어도 그 작가님의 책을 3권 이상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J.D. 샐린저 작가님까지는 모르겠지만. 홀든의 표현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책을 다 읽고 난 후 위의 대사 한 줄이 떠오르면서 홀든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홀든 ‘분’도, 홀든 ‘군’도 아니다. 그냥 ‘홀든, 자네’라고 부를 만큼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그가 책 속에서 들려준 이야기가 전부인데, 이게 친숙하다고 느끼는 건지도 잘 모르겠는데, 그래서 자네는 지금 잘 있는가 묻고 싶다. 행복하게 잘 있는지 묻고 싶다. 그렇게 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여동생 피비에게 뜻깊은 감사를 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