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흡수인간 Apr 14. 2019

관둘 것이라 말하면서도 못 관두는 이유

남들도, 자기 자신도 속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내가 파트타이머로 일한 지도 벌써 6개월이 넘은 것 같다. 아내는 인력 파견업체의 급여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육아를 병행하도록 9시반부터 3시까지만 일하도록 회사측과 협의를 했다. 처음에는 현장 근무자로 입사를 했는데 관리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사무직으로 재입사한 케이스다. 나름 능력을 인정을 받고 시작한 일인터라 아내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15년차 직장인인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그러던 어느날 (한달 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아내가 관두고 싶다고 말을 했다. 왜 그런지 이유를 물어봤다. 애들보랴, 일하랴 바쁜줄이야 진작부터 알고 있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내의 말을 듣고나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관두고 싶은 이유가 말을 할때마다 계속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쉬고 싶다더니, 다음날은 굳이 이런 대접 받아가며 자기가 계속 일을 해야 하냐고 한다. 그 다음날은 몸이 망가지는 것 같아서 그렇다고 한다. 운동을 다시 해야겠다며 말이다. 관두고 싶어했던 이유는 대략 서너가지 정도였던것 같다. 도대체 어떤게 진짜 이유인지 모르겠었어서 나는 계속 되묻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물을 때마가 그 이유가 바뀌었다. 느낌 상 '아, 이 사람... 못 관두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실은 아내에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관두고 싶게 만드는 진짜 이유는 몸이 피곤해서도 아니고, 운동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아내는 주어진 일을 잘 못해내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고, 반복적인 실수로 관리자의 눈총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실망을 하고 있었다. 잘 해낼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게 말이다. 또 한편으론 잘해 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 맘을 몰라주는 상사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안 건네주는 상사에게 삐져 있었던 것이다.


아내의 속마음은 그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속마음을 솔직히 말하기가 싫었다. 남편한테조차 말이다. 자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람들한테 서운해서 관두고 싶은거라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그게 관두고 싶은 이유라면 자신이 초라해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조차도 속여가며 다른 이유를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게 진짜 이유가 아니란걸 자기도 알기 때문에 선뜻 관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정말 관두고 싶다면 자기 자신한테 먼저 솔직해져야 한다. 관두고 싶게 만드는 원인이 남한테도 있지만, 스스로 인정하기 싫어서 내 안에 꽁꽁 숨겨둔 뭔가 다른 원인이 있는게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스스로에게 먼저 솔직해져야만 관두든 말든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 자신에게도 떳떳하지 못한데 어떻게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말이다. 설령, 관두기도 결정을 내렸다 할 지라도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게 맞았던 건가'하며 나중에 후회할 지도 모르는 것이다.




괜찮다면서, 그럴수 있다면서, 나도 그랬었다면서 나는 아내에게 관둬도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일이 익숙해 질때가 되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면 관두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수도 있을것 같았다. 그래서 제안했다. 어차피 당장 관둬도 되는 상황이니, 좀만 더 버텨보라고 말이다. 지금 하는 일을 잘하게 되면 맘이 바뀔 수도 있다면서 말이다. 물론, 지금 하는 일을 잘 하도록 하는 노력은 당연히 계속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 일을 겪은 이후, 아내는 아직도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 요즘들어 일이 왜 이렇게 쉬워 졌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시간이 남아서 다른 일도 들여다보기도 한다고 했다(사실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쉽게 할 방법이 있을까 생각도 한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아내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나는 알고 있다.


'잘 하기 위해서' 아내는 주말에도 가끔 나가서 일을 해야했고, 집에 가져와서 일을 해야만 했다. 휴일근무수당 신청도 안 올리면서 그렇게까지 해야하는걸까 짜증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아내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짜증과는 상관없이 아내는 그런 시기를 잘 '버텨냈고' 아직도 아내는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말을 요즘 자주 한다.


"결혼 전에 회사 생활을 하긴 했었는데, 그땐 내가 참 쉬운 일을 했던 것 같애. 그러다가 이번 경우처럼 어려운 일을 겪으니 짜증나고, 하기 싫고...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네. 지금 하는 일에 비하면 그때 내가 했던 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 같애...그러나 저러나 이번에 이런 일 당해보지 않았으면 내가 평생 이런 생각을 해보기나 했겠어?"



작가의 이전글 나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법,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