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려석? 임산부 관리구역?
입덧이 시작된 임신 7주차. 보건소에서 작은 택배를 보내주었다.
보건소에서 보내준 택배에는 엽산, 약간의 안내책자,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작은 뱃지가 들어있었다. 뱃지엔 분홍테두리가 영롱하게 빛나고 가운데에 배가 부른 여자가 다소곳이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임산부 분홍뱃지를 가져보다니! 임산부임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서울 지하철은 칸마다 2개 정도 임산부 배려석을 만들고 임산부가 앉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분홍뱃지와 깔맞춤한 분홍색으로 시트가 덮혀있고 벽면과 바닥면에도 임산부를 연상시키는 그림과 문구가 적혀있다. 간간히 스피커에서 '임산부 배려석이 있으니 배가 나오지 않은 임산부도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라는 안내문구도 흘러나온다. 그 화려한 존재감으로 인하여(?) 서울에서 지하철 타는 사람이라면 임산부 배려석을 모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막상 지하철을 타보면 임산부 배려석엔 항상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앉아있다.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 아무리 임산부일 것이라고 선해해보려고 해도 절대 임산부일 수가 없는 분들이 앉아 계신다. 만약 그 분들이 정말 임산부라면 우리나라 0.7명 출산율은 누군가 지어낸 위기음모론에 불과할 것이다.
아직 배가 나오지 않은 시절 나는 사람들이 내가 임산부인 사실을 몰라서 양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 도착한 분홍뱃지가 더더욱 반가웠다. 이제 분홍뱃지가 있으니 나에게 임산부 배려석을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마패가 생긴 셈이었다. 분홍뱃지를 달고 지하철을 타면 임산부 배려석에 앉을 수 있으리라! 기대를 안고 지하철에 탑승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내 기대와 약간 달랐다.
분홍뱃지를 들고 서있으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은 뱃지를 본 순간 1초 만에 잠들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스마트폰을 보거나 옆사람과 떠들던 사람도 분홍뱃지를 본 즉시 갑자기 할 말을 잃고 잠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엄청난 피곤함을 애써 견디고 있었는데 임산부가 그려진 분홍뱃지를 보면 문득 마음이 나른해지면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잠들지 않는 사람들은 나와 묘한 신경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나는 갑자기 글래디에이터 콜로세움으로 변한 지하철 안에 그 사람과 나만 결투장에 남아 그 자리를 두고 결투를 벌이는 긴장감을 느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스마트폰 화면을 보면서 괜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혼잣말을 한다던가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행동들을 하곤 했다. 그러면 나도 괜히 민망해져서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곤 했다. 누구도 승리하지 못한 채로 출퇴근 콜로세움의 시간이 흘러 갔다.
결국 나는 분홍뱃지를 해도 임산부 배려석에 앉을 수 없었다.
분홍뱃지가 없어서 앉지 못할 때에는 서운하지도 않았는데, 분홍뱃지가 있음에도 앉지 못할 때에는 이상하게 서운하고 화까지 났다. 나의 존재를 의식 속에서 애써 지우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거부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슬프기도 했다.
남편은 그런 때일 수록 분홍뱃지를 더 잘보이게 흔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마치 초등학교 교실에서 좋은 자리에 앉아있는 친구에게 "선생님이 거긴 내 자리라고 했거든!" 이렇게 소리지르는 것처럼 유치하고 민망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분홍뱃지를 숨기기 시작했다.
임산부 배려석에 운좋게 앉게 되었을 때에만 살짝 꺼내서 무릎 위에 두었다. 나중엔 이마저도 하지 않고 분홍뱃지를 그냥 집에 두고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임신 20주차 이후부터는 배가 너무 불러서, 분홍뱃지가 없어도 임산부임이 여실히 드러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애써 피하고자 했던 묘한 긴장감이 지하철을 탈 때마다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임산부 배려석도 피하기 시작했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는 사람 앞에 서있자니 식은땀이 날 정도로 긴장감이 흘러서 곤란했다. 게다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사람들은 대체로 평범하지 않은 아우라를 내뿜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들과 엮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실제로 어떤 할아버지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어서 그 자리를 살짝 피해 서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내리기 직전에 앞에 서있던 여자한테 너무 시끄러웠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 내가 만약 그 앞에 서있었다면 어땠을까.. 간담이 서늘해졌다.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위와 같은 이유로 임산부 배려석이 이미 차있으면 임산부 배려석이 아닌 아무 자리를 골라 그 앞에 서서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런 내 행동이 거슬리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어느날 서서 가고 있는데 비스듬히 앞쪽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저기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는 사람한테 나오라고 해~" 따뜻한 조언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내 앞에서 따지지 말고 저기 임산부 배려석에 가서 따져'라는 메시지처럼 들렸다. 그러니까 저 말은 나에게 "저기 임산부 배려석에 (가서) 앉아있는 사람한테 나오라고 해" 처럼 들렸다. 웃으면서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화를 내야 할지 내 감정을 알 수가 없었다. 마침 할머니 옆에 계셨던 아가씨가 내가 안쓰러웠는지 양보해주주셨다(감사합니다!).
또 저번주에는, 사실 이게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인데, 어느 아저씨가 나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그래서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앉으려는 찰나, 어느 아주머니가 쏙 달려와서 앉아버리는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넘 벙쪄서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머니는 자신의 행동에 자기도 민망했는지 괜히 화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자기 자리는 따로 있잖아!". 너무나 신박한 발상에 이마를 탁 칠 뻔 했다. 지하철에 내 자리가 따로 있었단 말야? 나는 근데 왜 맨날 서서 갔지? 이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보신 맞은편 아저씨가 나를 불러서 자신의 자리에 앉으라고 양보해주셨다(감사합니다!).
아주머니가 한 말은 할머니가 한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몇몇 사람들은 내가 임산부 배려석을 통해 우선 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임산부 배려석에만! 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나는 임산부 배려석이 아닌 자리에 양보를 받은 뒤에도 마음이 불편해서 이윽고 임산부 배려석에 자리가 나면 황급히 그 자리로 옮겨 앉게 되었다.
임산부 배려석? 임산부 관리구역?
이쯤되면 분홍색 시트가 깔린 임산부 배려석이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좌석인지 임산부를 특정 구역에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좌석인지 헷갈리게 된다.
임산부 배려석이 생기면서 임산부에게 자리를 배려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확대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실제로 출근 시간인 9시 정도에 탑승하면 사람들의 배려로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있거나 임산부가 앉아있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출퇴근이 고될 임산부들이 임산부 배려석의 도움을 받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임산부 배려석이 존재하다보니 임산부를 배려할 역할은 오로지 그 배려석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집중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역할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하게 되는 방면도 있는 것 같다. 임산부에 대한 양보가 예전에는 선택에 따라 베풀 수 있는 호의로 기분좋은 배려의 영역에 있었지만, 그런 배려가 배려석이라는 제도로 고정된 이후 지금은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하고 싶은 의무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 것 같다. 과연 임산부 배려석이 아닌 자리는 임산부에게 양보할 필요가 전혀 없는 걸까? 그래서 임산부가 임산부 배려석이 아닌 자리에 서있다면 그것은 의무 없는 자에게 의무의 이행을 요구하는 예의 없는 행위가 되는 것일까?
나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맑은 눈의 광인과 신경전을 벌이거나 임산부 배려석이 아닌 자리에 앉은 선량한 시민에게 불필요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선택해야 했다. 어느 하나 달갑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렇게 나의 운신의 폭은 점점 좁아졌고 그래서 나는 차라리 모든 자리로부터 2m 씩 떨어진 문 근처나 복도에 서서 가는 편을 선택하게 되었다.
과거의 나를 반성합니다.
과거의 나도 사실 위 할머니나 아주머니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하철 좌석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임산부가 없을 때에는 비임산부가 앉았다가 양보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임산부 배려석이 너무 많이 책정되어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 때는 몰랐다. 출퇴근하는 임산부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임산부임이 티가 나지 않는 임산부가 있는지 몰랐다. 임신부가 낯선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달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민망하면서도 동시에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행동인지 몰랐다. 마지막으로 내가 임신할 줄 몰랐다.
생각해보면 나는 교통약자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다리를 다친 적도 없었고, 늙지도 않았다. 임신부가 된 다음에야 교통약자가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느껴볼 수 있게 되었다. 나이든 사람, 다친 사람,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좀 더 눈에 잘 띄기 시작했다. 지하철 구석에 있는 전동휠체어 공간도 다르게 보였다. 얼마나 많은 순간 전동휠체어 공간 벽에 기대어 핸드폰을 보면서 지하철을 탔던가. 단순히 전동휠체어가 오면 양보해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전동휠체어를 탄 사람 입장에서는 나의 그런 생각이 지하철을 타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함만 기억합니다.
해외 태교여행을 갔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배도 다 부르지도 않은 나를 보고 "Congratulation!" 이라고 외쳤다. 응원과 축하를 받아서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한국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나에게 무언의 축하의 말을 건낸다. 동네 마트에 가면 캐셔 아주머니는 '임신하면 예쁜 것만 먹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내가 산 과일이 모양이 이상하거나 벌레가 먹은 것이 아닌지 따로 체크해주고 이상하면 더 좋은 과일로 골라 바꿔주기도 한다.
한정된 자원은 사람들의 배려심을 위축되도록 만든다. 지하철 좌석은 한정되어 있고 특히 출퇴근 시간에 근접한 시간대에는 수요에 비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친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위에서 겪은 일들은 바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나에게 양보하기로 선택해준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려 한다. 차가운 말을 보냈던 사람들의 얼굴보단 나의 난처함을 알아보고 양보해준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려 한다. 곧 태어날 나의 아이에게 사회의 얼굴은 그런 따뜻한 얼굴이라고 알려주고 싶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