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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Aug 17. 2022

직장인, 모욕을 견딜 결심

마흔의 자기대본 포티폴리오 _ Discover me

모대기업, 갓 입사한 신입사원들 앞에 감색 정장을 입은 백발의 신사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그 어렵다는 취업을 뽀개고 이름난 대기업에 입사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처음보는 사람들이지만 동기라는 이름으로 짧은 시간에 똘똘 뭉쳤고, 뭐든 다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이 충만하다.


"저는 S그룹 홀딩컴퍼니 인사담당 L전무입니다. 여러분들을 이렇게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롭군요. 여기 서 있는 저,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여러분,  이 둘 사이에 가장 큰 차이가 뭔지 아세요?"


"연봉이요!"


"나이요!"


전무는 너그러운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맞아요. 다 맞는 말인데, 개인적으로 더 중요한 차이가 있어요."


신입들은 더 이상의 대답을 멈추고 전무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집중했다.


"바로 모욕을 얼마나 견뎌왔느냐?의 차이예요. 나는 수십년간 조직에서 온갖 종류의 모욕을 견뎌왔어요. 견디고 견디다 보니 이 자리에 올라오게 된 거죠. 여러분과 나는 그 차이밖에는 없어요."


신입들은 그제야 아! 하는 탄성을 내뱉으며 서로 웅성거렸다.


이 에피소드를 전해들었을때, 나는 막 마흔이 되었고 과장이 되었던 시점이었다. 리더십 강의를 위해 외부에서 초청한 강사가 직접 겪은 일이라며 소개를 해주었다. 처음의 반응은 에피소드 속의 신입들과 같았다. '모욕' 이라니. 전혀 예상외의 답변 때문이었을까? 약간의 신선한 충격과 함께 꽤나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 참 모욕적인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앞날이 창창한 신입들에게 "너희들도 모욕부터 참고 견뎌야 조직생활을 잘 할 수 있고 나처럼 임원까지 될 수 있어"라는 일종의 협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분명 앞으로 힘든 일이 많이 생길테니 잘 참고 견디라는 선의의 웰컴 메시지였을테지만 전무씩이나 된 시점에도 조직내 만연한 모욕의 문화를 어찌하지 못하고 방치해 왔다는 자기 고백이나 다름 없으니 말이다.


지금 시대에 서슬퍼런 MZ세대들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탄성 섞인 깨달음의 박수가 아니라 시대착오적 꼰대라는 야유를 받았을지도 모를일이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회사에서 생길 수 있는 모욕이란 어떤 종류가 있을까? 비인격적인 대우? 인신공격? 직장내 괴롭힘? 막말? 호통? 고객으로부터의 컴플레인? 사람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에서라면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그런 모욕은 그 종류도 다양하고 벌어지는 상황도 각양각색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주 작은 모욕에도 스스로 상처를 받고 곱씹으며 괴로운 나날을 보낼테고, 또 어떤 사람은 그 까짓 모욕, 어디 해보라고 해! 라는 각오로 씩씩하게 생활해 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직장생활의 모욕이란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일반화하기도 어렵다.


나는 어땠을까? 언제 가장 모욕을 느꼈을까? 16년 직장생활을 돌아봤다. 다행스럽게도 앞서 열거한 인간관계에서의 모욕을 딱히 느낀 적은 없다. 특히 상사로부터의 모욕이나 비인간적 대우, 인격모독 같은 일을 당해본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들이 받은 적은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회사 체질이 아니라고 판단한 이유는 바로 그 '모욕'에 있었다. 직책이 올라갈수록 앞으로 겪게 될 뻔한 모욕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첫 번째는 스펙에 대한 모욕이다. 다름 아닌 학벌이다. 피라미드의 최상단으로 올라갈수록 소위 최상위권 대학 출신들의 그들만의 리그는 노골적이 된다. 그 메리트는 때로 상상을 초월한다. 어디 출신이라는 꼬리표 하나만으로 별다른 증명없이 자리를 유지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나는 나름 인서울 중상위권 대학을 졸업했다. 모교와 관련해서 특별히 자부심을 느끼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꿀릴 것도 없다고 생각해왔다. 학벌이 무슨 소용이야, 실력이 문제지 라는 소신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40이 넘고 리더 포지션으로 올라갈수록, 직간접적으로 작용하는 학벌의 힘은 컸다. 특히 취준생들 사이에서도 스펙을 보기로 유명한 S그룹에 몸담으면서 노골적으로 대학의 급을 나누고, 그 이하는 서류전형에서 거른다는 식의 내부 방침을 보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그룹 전체를 컨트롤하는 홀딩스 컴퍼니 멤버는 관계사에서 차출하는데, 최소 SKY출신이 아니면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는 비밀 아닌 비밀을 들으며 일종의 벽을 체감하기도 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학벌이냐? 하겠지만 모르는 소리. 여전히 우리 사회는 시험을 잘 보는 사람들에 대한 엘리트 의식이 선명하다. 


그들만의 리그를 바라보는 대다수의 평범한 스펙의 직장인들은 한번쯤은 소외감이나 일종의 자격지심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 감정의 중심엔 다분히 모욕이 포함된다. 


두 번째는 임원이라는 최후의 벽을 넘지 못한 자들을 통해 본 모욕이다. 아모레퍼시픽이 70년대생 팀장들에게 별 이유도 없이 세대교체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일개 팀원으로 강등시켰듯, 능력을 떠나 자리가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직장인 피라미드 최상단 인근에서의 좌절은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회사에 평생을 다 바쳐도 저게 내 미래구나 라는 허탈감을 주게 한다. 심지어 그들만의 리그 그 안에서도 경쟁은 치열하고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반드시 다수는 도태되게 되어있다.


한때 몸담았던 회사에서는 팀장 보임해제 후 약 3년을 팀원으로 버티다가 회사를 떠난 사람도 있고 임원으로의 승진 가능성이 사라진 채 10년이 넘도록 팀장으로만 재직하다 희망퇴직에 내몰린 사람도 있었다. 내가 느낀 그들의 정서는 틀림없는 모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딘다는 절박함이었다.


이런저런 모욕을 견디며, 뻔히 보이는 미래를 향해 아무런 대책없이 현실을 유지할 것인가? 그저 가늘고 길게 가면 그만이라고 자기자신을 버릴 수 있을까? 얼굴에 철판을 깔고 굽신거리며 그들만의 리그에 끼워달라고 머리를 디밀 것인가? 


나는 이 안에서 두 가지 모욕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애초에 가늘고 길게 갈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힘 있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굽신거리는 내 모습은 생각해본적도 없다. 그러나 새로운 무기가 필요하다는 사실만은 선명했다. 학벌을 대체하고도 남을 만한 나만의 강점, 꿈을 날카롭게 다듬어 무기를 만들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위대한 스토리텔러' 였다.


일본의 경영학 대가 오마에 겐이치는 말했다. 


"진정으로 변화하고자 한다면, 만나는 사람, 장소, 시간을 바꿔야 한다." 


회사를 다니며, 현재의 생활을 유지한 채 새로운 나로 거듭날 수 있다는 믿음은 허상이다. 하루의 절반을 본연의 일에, 관계에, 모욕을 견디는 일에 쓰고나면, 남은 동력은 제로가 된다. 그 상태에서 자기계발을 하겠다는 다짐은 그야말로 허튼소리가 된다.


퇴근하고 영어 학원을 다니겠다고? 야간 대학원을 들어가겠다고? 좋은 시도지만, 이름뿐인 자격증, 학위를 가질 수는 있지만 그뿐이다. 결코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없다. 현재의 자신을 전혀 다른 새로운 존재로 바꿔 놓기엔 아무래도 무리다. 그저 자기 만족, 자기 위안이 될 뿐이다.


모욕을 견딜 결심이 아니라면, 그곳에서 나와야 한다.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전략적 준비를 통해 D-day를 정하고 그 시점을 향해 의식적으로 달려야 한다. 그리고 시원하게 사표를 투척하는 꿈을 꾸어야 한다.


물론 조직을 나왔다고 꽃길만 걸을 수 없다. 오히려 밖에서 생기는 모욕이 훨씬 더 독하고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길이라면, 그 안에서 발생하는 모욕이라면 비로소 견딜 결심이 선다. 


인생 후반전은 그렇게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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