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ivation _ 외적동기 _1 돈
'두근두근'
신입사원 모태백, 첫 월급날이다. 입사날의 두근거림이 여전히 생생한데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월급날이라니. 만감이 교차한다. 취준생과 직장인을 가르는 가장 선명한 상징. 모바일 뱅킹 앱을 열고 지문 인식을 하는 동안 검지손가락이 살포시 떨린다. 얼마나 들어왔을까?
[MZ상사 3월 급여 입금 ₩2,422,210]
자릿수까지 세어가며 첫 월급을 확인한 모태백은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정식 회사원의 신분으로 받아보는 첫 월급이라는 감격과 이 액수가 많은 것인지 적은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모호함 사이. 인원 규모 300여 명, 매출 규모 약 2천 억대에 영업익 약 5% 를 유지하는 중견기업에 신입으로 입사했을 때만 해도 이 어려운 시기에 그게 어딘가 싶었다. 이제 시작이고 내가 하기에 따라 달렸다 마음을 굳혔지만, 며칠 전 취업 축하 술자리에서의 해프닝이 못내 걸린다. 작년, 졸업도 전에 S텔레콤에 합격한 동기 녀석과 나눈 연봉 이야기 때문이다.
"아니, 실수령액이 300도 안된단 말이야?"
300도? 화들짝 놀랐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던 녀석의 반응을 보면 자신은 적어도 300 이상의 월급을 받고 있다는 뜻 아닌가? 모태백의 연봉은 3,300. 근로계약서를 쓸 때 인사팀 직원은 세금을 제하고 받는 실수령액은 월 250 정도 되고 연말 성과급은 별도라고 했다. 다른 회사들처럼 신입이라고 수습급여를 적용하지 않는 점이 우리 회사만의 특장점이라며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다.
"으응, 처음은 그런데 승진하면 인상폭이 큰가 봐. 연말에 많지는 않지만 성과급도 있고..오래 다니기 좋지 뭐"
"아무리 그래도... 출발선이 어느 정도는 받쳐줘야 되는 건데..."
'아 이 새끼가... 누가 그걸 몰라?'
모태백은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것 마냥 호들갑 떠는 녀석의 면상을 한대 후려치고 싶은 욕구를 가까스로 누르고 소주 한잔을 털어 넣는다. 녀석의 재킷에는 그룹 뱃지가 유독 반짝거렸고 아직 취업조차 못한 또 다른 동기들 역시 썩은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애꿎은 술잔을 연신 비워댔다. 매운 어묵국물이 그날따라 더 맵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동기들은 녀석을 제외한 새로운 동기모임 단톡방을 새로 팠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누구 말마따나 실제 300 근처에도 못 미치는 첫 월급을 눈으로 확인한 모태백은 의욕이 조금 꺾이는 느낌이다. 그래도 인서울 중상위권 대학에 상경계열 전공도 아닌 핸디캡을 딛고 제때 취업한 것이 어딘가 싶다. 수도권대를 나와 그 지역 중소기업에 취업한 고등학교 동창 녀석은 만날 때마다 월급이 200도 안된다며 징징거리는 것에 비하면 감지덕지다.
'뭐 돈이 전부는 아니니까. 이제 시작이고 게다가 운 좋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맡게 되었으니 그 또한 다행 아닌가.' 모태백은 자신의 전공인 교육학에 딱 맞는 HRD를 맡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신입사원 교육 기간에 들은 강의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회사원이 자기가 원하는 직무를 맡게 될 확률은 고작 1/1000 밖에 안된다" 일본의 경영인이 한 말이라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1/1000 확률을 뚫은 것 아닌가.
사수 장 대리에게 일을 배우는 동안 예상했던 대로 일은 적성에 찰떡같이 들어맞는 것 같았다. 비록 한 달여간 관찰한 결과지만 팀장님이나 선배들도 크게 모난 사람 없이 노멀해 보인다.
"사람 힘든 것만큼 골 때리는 게 없는 거다. 천운으로 생각해. 감사해하고 뭐든"
25년째 직장 생활 중인 아버지의 한 줄 훈수처럼 그래 천운이다. 그까짓 연봉쯤이야...
S텔레콤 연봉 게이트로 잠시 이탈했던 마음을 추스려 이날까지 키워주신 엄마아빠를 위해 빨간 내복이라도 사가야지. 효자 모태백은 마음을 먹는다. 우리의 신입사원 모태백은 돈 따위 중요하지 않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회사를 잘 다닐 수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얼마면 될까?
월급 말이다. 기업규모, 성별, 연차, 직종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일단 다들 얼마 받고 일하는지 평균 임금 수준부터 살펴보자
연령 범위가 10년으로 넓은 데다 남녀구분도 없고 2020년의 자료이긴 하지만 대략적인 임금 수준을 파악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대기업 vs 중소기업 간 격차다.
우리는 이미 대기업 종사자가 전체 경제활동인구 2500만 명 중 약 18%에 해당하는 400만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10에 1~2명 꼴이다. 물론 대기업 내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고임금을 받는 사업분야나 직종이 따로 있고, 중소기업 내에서도 대기업 못지않는 처우를 자랑하는 강소기업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통계로 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평균 임금의 격차는 자못 충격적이다.
내 경우 운 좋게 18% 대기업 언저리에 속한 덕에 2020년 퇴사직전까지 통계자료의 30대와 40대 중간 수준의 급여를 받았다. 연봉은 노조와의 임단협을 통해 매년 3~5%씩 인상됐다(물론 승진 시에는 해당직급 밴드 하한폭에 맞춰 제한 없이 상승한다). 기본급 외에 연 200만 원의 직원 복지 Point와 5년에 한 번 퇴직금 1년 치가 추가되는 퇴직금 누진제, 월 10만 원을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사내저축, 5년/10년/15년/20년 장기근속자 혜택도 있었다. 연말이면 그룹사 메이저 계열사에 I.B(Incentive Bonus) 얼마를 줬다더라 소문이 돌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들기도 했지만 대기업 계열사로서 전그룹사 공통 복지혜택까지 더하면 처우에 관한 한 큰 불만은 없었다. 매일 숨 쉬고 살아가는 공기처럼 당연한 일이 되어 딱히 만족스럽지도 또 불만스럽지도 않은 상태로 회사를 다녔다. 이마저 무려 4년 전의 일이다. 짐작컨대 이 정도의 처우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꽤 될 것이다.
올해 최저임금이 9620원이니 퉁쳐서 1만 원으로 계산해 보면 어디 가서 알바만 해도 (40시간+8시간)*(365일/7일)/12달 = 209시간, 대략 200만 원을 조금 넘는 월급(세전)을 받을 수 있다. 통계를 보면 20대 중소기업 종사자 평균임금이 200만 원이 채 못되니 최저임금 수준도 못 받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20대 이후부터는 괜찮은가? 하면 도긴개긴이다. 대기업에 비하면 병아리 눈물만큼 상승하다 50대부터 꺾인다. 이거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물론 돈 잘 버는 강소기업들의 사정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평균 수준을 보여주는 통계 자료야 말로 대다수에 속하는 이들이 그 범위 언저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선명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이래서야 일 하는 동기가 생길 턱이 없다.
돈이 동기의 전부는 아니지만, 줄만큼은 주고받을 만큼은 받아야 한다.
돈으로 대표되는 외적동기요인은 불만요인이라고도 불린다. 적절한 처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불만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치 배 밑바닥에 뚫린 구멍과도 같다. 이 구멍이 하필 해수면 아래 밑바닥에 생겼다면 그 배는 침몰할 것이다. 다행히 구멍을 발견하고 늦기 전에 조치를 취한다면 침몰이라는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지만 어쩐지 대다수의 중소기업들은 이 불만이 배에 생긴 구멍인지 모르는 모양이다.
"아니, 그럼 회사의 사정도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최고 수준으로 대우해줘야 한다는 말인가요?"
볼멘소리 가득한 사장, 대표들의 아우성이 여기저기 들려온다. 워워~ 잠시 진정하고 들어보라.
해수면은 비교기준선을 말한다. 누구나 대기업 수준으로 대우를 받으면 좋겠다는 꿈은 품고 있을 테지만, 대개는 제자신의 위치와 상태를 비교적 정확히 인지한다. 그들에게 적정 비교대상이란 동종업계, 동일직무, 동일연차, 동일직급의 또 다른 나다. 즉 자신의 수준에서 적정한 비교대상을 찾아 현실과 타협하게 마련이다.
요즘은 인터넷에 조금만 뒤져봐도 업계의 평균 임금, 처우, 복지 수준은 금세 알 수 있다. 우리 회사가 그 평균선에서 어느 수준인지 역시도 귀신같이 알아챈다. 이때 스펙도 회사 규모도 하는 일도 비슷한데 나보다 더 받는 누군가의 사례가 보이면 그 즉시 동요한다. 나보다 나을 것도 없어 보이는 데 나는 왜 이 모양이야?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바로 배에 균열이 일어나는 시점이다. 그것도 수면 아래서.
인식과 실재의 문제를 구분해 대응하라
처우에 대한 불만, 균열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실재'와 '인지'. 전자는 실제로 동종업계 대비 처우가 떨어지는 경우고 후자는 실재는 그렇지 않은데 뚜렷한 근거도 없이 덜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전자라면 회사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처우를 평균선 수준으로는 끌어올려야 한다. 사업 여건이고 나발이고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일할만한 사람들을 경쟁업체에 모두 빼앗기고 쭉정이들만 남게 된다. 당장 여유가 없다고 여유 부리다가 미래의 성장 동력까지 뺏기고 악순환에 빠지는 꼴이다. 사장, 임원, 팀장들의 처우 수준을 동결하거나 낮춰서라도 전반적인 임금 수준을 최소 동종업계 평균 수준으로는 끌어올려야 한다. 이 기본마저 못하겠다면 그 사업은 대체 왜 유지되어야 하는지 본질부터 되돌아보는 게 먼저다. 정 어렵다면 회사 사정을 투명하게 오픈하고 희망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미래를 제시하고 함께 고통을 분담하자고 설득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등을 돌린다면 인연은 거기까지지만, 믿고 남아준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
후자라면 오해? 부터 즉시 풀어야 한다. 정확한 근거도 없이 뇌피셜 불만을 가진 사람일수록 빅마우스가 되기 쉽다. 그들이 아무리 소수라도 부정적 정서를 퍼트리는 순간, 확대 재생산은 마른 잔디에 불 붙이기처럼 온산에 퍼지고 만다. 회사는 구성원들이 처우 수준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조사(서베이, FGI 등)해서 실재와 인식 간 격차를 파악하고 그 갭이 크다면 서둘러 오해를 종식시켜야 한다. 동종업계 평균, 동일 연차, 직급 평균 처우와 자사 데이터를 명명백백 비교해 공개함으로써 불필요한 논란을 사전에 방지하고 회사 정책의 투명성 또한 확보할 수 있다.
모태백 사원과 같은 개인들은 자신이 받는 처우 수준이 스스로의 역량과 처지에 비교해 봤을 때 합당한 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설정하고 직접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 수준의 처우를 받고 싶다면, 그에 맞는 실력을 갖춰 도전하면 될 일이다. 그때 일할 동기는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외적동기는 불만을 없애는 수준에서 다뤄져야 한다
돈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요인이 유일한 동기요인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동기요인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생존의 욕구. 누구든 먹고살기 위해 일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당장은 살아야지.
그렇다면 많이 받는 사람들, 예컨대 40대와 50대에 이르면 무려 600만 원대의 임금을 받는 대기업 직원들, 그들은 모두 일하는 게 즐겁고 행복할까? 물론 그런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건 또 다른 문제다. 외적 동기가 불만요인으로도 불리는 이유는 돈이야말로 불만을 없애주는 정도만 돼도 추가적인 동기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드라이브]의 저자 다니엘 코일은 이렇게 말한다
"돈은 ‘자극에 대해 반응이 시작되는 분계점의 동기’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적절한 보수를 받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회사에서 일단 이 기준선이 충족된 후에는 얼마를 더 버는지는 성과와 동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연말에 보너스 500만 원을 받고 기분은 좋겠지만, 앞으로 500만 원어치일을 더해야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500만 원을 받은 효과는 짧으면 1주 길면 1개월이면 모두 사라지고 기준점만 높아진다. 그다음 해에는 500만 원 그 이상을 더 받아야 짧은 기간일 망정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동기부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금전적 인센티브의 무용론을 주장하고 있고 수많은 기업들이 금전적 인센티브를 슬금슬금 폐지하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동기를 다루는 데 있어 돈은 가장 예민하고 눈에 띄고 관심 가는 영역이지만 그 효용과 한계 또한 명확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인간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진짜 동기는 결코 돈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동기부여 이론은 오늘날 먹고살기 위해 워킹좀비가 되어버린 현대직장인들을 위한 강력한 백신임에 분명하다.
[톰 소여의 모험] 주인공 톰은 어느 날 목장의 울타리를 칠하고 있었다. 그때 톰을 늘 괴롭히던 친구가 지나가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어본다.
"톰 뭐 하는 거야?"
"보시다시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
"그거 나도 좀 해보자."
"안돼, 이건 나한테 주어진 중요한 일이라고."
결국 친구는 톰에게 사정을 하다못해 급기야 돈을 주고 페인트 칠을 하게 해달라고 조른다. 톰은 땀을 뻘뻘 흘리며 자기 대신 페인트 칠을 하는 친구를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