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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Aug 23. 2022

7080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자기대본을 쓸 시간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나오는 안톤 시거는 무자비한 살인마다(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대번에 이해하리라). 찍힌자는 무조건 죽는다. 딱히 이유가 있다면 누군가로부터 목숨을 거두라는 의뢰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살인마는 타깃 말고도 아무나 막 죽인다.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상대에 대한 연민도 없다. 남자여자어른아이를 가리지 않는다. 대화는 하지만 소통은 되지 않는다.


이런 인간이 정말 있을까? 싶은데 영화적 허구이며 과장일 뿐이라고는 못하겠다. 공감지능과 양심을 상실한 소시오패스라면 우리 주변이 얼마든지 널렸다. 안톤 시거는 전형적인 소시오패스다.


영화는 노인의 지혜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대 사회(미국을 중심으로)의 현실, 예컨대 자본주의와 물질주의에 점점 황폐해져가는 인간성과 힘을 가진 거대한 존재(정치세력과 기업 등)의 윤리적 몰락을 상징적으로 다룬다.


얼마전 우리를 놀라게 했던 아모레퍼시픽의 70년대생 팀장 대기발령 사건이 오버랩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MZ세대가 등장해 기존 세대가 저물어 간다는 논리로 자연스레 포장하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성이나 연민, 공감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그저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먼 소시오패스 기업집단의 섬뜩한 폭력이 똬리를 틀고 있다.


메마른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의 이마에 가스건을 들이대 사람을 죽이는 안톤시거와 하루아침에 한집안의 가장을 거리에 내몰려는 비정한 기업집단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써먹을대로 써먹었으니 이성적으로다가 경제 논리에 근거하여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하겠다는게 무엇이 나쁘냐? 라고 항변할 생각이라면 아서라 이들과 똑같은 부류로 오해받기 십상이니. 아! 오해가 아니라...어쩌면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는 세상 따위 가당찮다. 희생의 이유가 단지 나이를 더 먹었으므로 더 젊은 세대에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라면, 더더욱


90%의 빈민과 10%의 최상층이 만들어가는 사회의 콜라보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이미 그 생생한 현실의 지옥을 알고 있다. 살인과 폭력, 마약과 부정부패가 난무하는 중남미 어느 국가의 역동성(?)이 부러운 것이라면, 더 높은 바빌론의 탑을 쌓아도 좋다. 인간은 학습능력을 상실한 탓으로 두터운 장벽을 세우고 금을 긋고 제 뱃속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에 연민을 바라고 이래선 안되는 거 아니냐? 라는 자조섞인 푸념을 쏟아내봤자, 현장에서 밀려난 분노를 그들에게 쏟아부어봤자 바뀌는 건 없다. 코로나 팬데믹과 숨도 못쉴만큼 가파른 기술 발전의 시대에 AI가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것이라는 비극적 전망도 우리를 불안케 한다. 누구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뉴노멀로 패러다임이 이행되는 과도기에 대규모 희생의 본보기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7080의 위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세상은 변곡점을 기준으로 순식간에 변화한다. 아모레퍼시픽이 70년대생을 향해 잡아당긴 크리거, 발사된 탄환은 결코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 도미노가 무너지듯 그 흐름은 거침없이 7080을 집어 삼키고 말 것이다.


소시오패스 사회와 경영진들이 그들을 내몰았다고 단정짓기도 뭐하다. 이왕 멈춘김에 눈을 감고 지난 20년을 돌아보라.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회사라는 거대한 배경에, 컴포트 존안에 안주해 나 자신의 고유성을 버리고 감추고 가늘고 길게 버티기만을 유일한 가치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어차피 20대에 배운 지식만으로 90년 한평생을 살기란 무리다. 새로운 트렌드와 변화와 지식흐름에 촉을 세우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괴롭혀 배우는 일에 무심하지 않았는가? 퇴근 후 혹은 주말의 시간이 술과 함께 혹은 소파에 축 늘어진 게으름과 함께 광속으로 사라져가진 않았는가?


그 결과 오늘날 7080의 위기가 눈앞에 닥쳤다. 이제 겨우 인생 반환점을 앞에 뒀을 뿐인데, 선택의 여지 또한 없다. 사회는 이들과 결별을 준비하고 그 신호탄을 쏴올렸다.


안톤시거는 1970호 객실에 투숙한 사람들을 쏴죽이고 걸음을 옮겨 1980호 객실로 이동중이다.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기다리는 운명은 자명하다.


포티폴리오, 이제 자기 대본을 쓸 차례다. 지금까지 40여년의 인생을 남의 대본으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내 대본을 써내고 그에 따라 새로운 40년을 준비해야 한다. 언제든 우리의 목을 날리고 새로운 부품을 받을 준비가 된 소시오패스 경영진들에 보란듯이 내 의지와 아이덴티티 그리고 개성을 보여줄 차례다.


더 이상 7080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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