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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Feb 27. 2024

타인의 고통을 '기획'하는 사람들

나쁜 종자 Bad Seed _ 8. 인성파탄자

약 2년 전 모 대기업의 팀장 워크숍. 질문을 던졌다.


능력은 있지만 인성이 별로인 사람

인성은 좋지만 능력이 부족한 사람


"여러분이라면 어떤 사람을 부하직원으로 선호하시나요?"


약 90%의 팀장들이 전자를 선택했다. 이유를 들어보니 짐작대로다. 

조직생활이란 게 원래 그런 거다. 회사는 동호회가 아니다. 돈 받고 일하는데 성과를 못 내면 그 자체로 민폐다. 인간성은 쳐져도 빠릿빠릿 움직여서 성과 내주는 사람이 조직에는 더 필요하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이번엔 다른 대기업의 혁신 워크숍에서 MZ세대 체인지 에이전트(CA)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맥락의 질문을 했다.


"야구 국대 선발 과정에서 학폭 의혹 논란이 있는 A선수를 뽑아야 하느냐? 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결국 A선수는 탈락했는데요, 여러분이 국대 감독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성적을 위해 뽑아야 한다 2명

성적이고 뭐고 그런 놈은 안 뽑는다 8명


학폭 의혹(소송으로 번진 데다 증거도 있는)에도 뽑겠다는 2명 때문에 놀랐고, 성적만 낼 수 있다면 학폭이 대수냐? 는 인식에 두 번 놀랐던 기억. 우리는 사람을 뽑거나 배치할 때 인성문제를 어떤 정도로 여기고 있을까?


대체로 직책을 가진 사람들은 능력을, 주니어들은 인성을 택하는 경향성을 보였는데, 그 차이는 어디서 생겼을까? 경험의 차이일까? 인성과 능력을 바라보는 애초의 관점 차이일까? 아니면 복합적일까?


인정받으려면 결과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경험에 따른 변화라면 그나마 다행. 애초에 인성이고 뭐고 능력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원초적 결과중심주의에 기인한 차이라면 그 뒷맛이 씁쓸하다. 그런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오를 확률이 크다고 말해주는 증거일 테니까.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을 앞두고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실태 조사를 했는데, 직장 내 괴롭힘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비율이 무려 80%가 넘는 결과를 본 기억이 난다. 욕설이나 폭언, 폭행, 이유 없는 인사이동까지 그 범위와 종류도 다양해서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인지 반대로 가해자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직장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지 않았을까 싶다.


이후 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실제 상황이 좋아졌는지는 오리무중이다. 간간이 뉴스에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됐다는 법원 판결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은 빈번하고 피해를 인정받거나 개선하려는 노력은 요원한 게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다. 오죽 사례가 희소하면 뉴스로 나올까?


내가 이 질문을 어떤 자리에서든 먼저 꺼내는 이유는, 인성-능력 논쟁이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연유든 인성보다는 능력을 중시하는 이들이 리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인재상도 그에 가까운 조직이라면 과정보다는 극단적 결과지향주의가 당연해지고 인간적 관계, 발전적 경쟁, 희생하고 배려하는 팀십이 자리할 여지가 줄어들 것이므로.


인성 결여는 조직 내 관계에서 생각보다 중대한 문제를 일으킨다. 단순히 조용하고 샤이하고 불친절하고 따위 타입과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데다 타인의 감정을 헤아릴 능력이 0에 가깝고 착취성향까지 겸비한 파괴적 존재가 내 주변에 섞인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일으키는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타인을 괴롭히는 일이다. 학창 시절의 학폭도 그런 맥락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단순히 그 나이엔 그럴 수 있는 거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사춘기의 방황, 호르몬의 작용 따위 성장기의 일탈로 웃어넘길 일이 아니란 말이다. 


정상적인 인성을 타고 난 사람일수록 완전함과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 부족함을 안다. 언제든 틀릴 수 있으며,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그 일로 인해 누군가 상처를 입거나 피해를 입는다면 미안해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것이 자기 객관화 이면서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을 하는 능력, 즉 인성의 본질이다. 


그런 이유로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로 타인의 아픔, 슬픔, 괴로움, 상처를 보고 즐거워하거나 그 피해를 돈으로 환산하거나 약자를 도구화하지도 않는다. 타인의 고통을 '기획'하고 '실행' 해 그 결과로 즐거움을 얻는 '종자'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학폭 가해자라도 능력만 있으면 결과를 위해 써야 한다고 말하거나,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속에 우리의 얼굴을 하고 끼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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