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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Sep 14. 2022

님아, 그 책 돈 주고 사지 마오

그래도 쓴다

연휴가 끝나기 전날 늦은 밤. 내 책의 리뷰 한건이 떴다. 초보무명 글쟁이가 수차례 도전 끝에 작년 12월 겨우 출간한 책인데, 판매는 지지부진하고 출판사 차원에서 홍보도 거의 없다시피 해 리뷰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그나마 몇 건 되지도 않는 리뷰 내용마저 그다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뜨뜻미지근한 반응들 뿐이었는데, 오랜만에 새 리뷰가 떠서 얼른 클릭해봤다.


결론은 주제에 대해 전문성도 없으면서 신변잡기를 에세이처럼 끄적인 '엉망인 책'


엉망, 엉망, 엉망....


내심 올 것이 왔구나 싶어 한동안 멍했다. 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잠도 오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거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뭘 안다고?' 분노가 생겼다가, 

'그렇지 그러니까 팔리지도 않고 이 모양이 이 꼴이지.' 좌절도 했다가. 

'아니, 목차도 있고 어떤 종류의 책인지 뻔히 설명이 됐는데, 누가 사보라고 했나? 왜 난리야?' 다시 분노했다가


연예인들이 SNS상에서 악플을 받을 때 이런 심정이었을까?

물론 그 강도나 빈도에 있어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겠지만, 처음 겪는 내 결과물에 대한 직접 비난은 떨쳐내기 힘든 스토커처럼 그 시간 이후를 무겁게 만들었다. 


마침 출간을 앞두고 두 번째 책의 수정교를 살펴보던 중이었는데, 이렇게 형편없는 글이었나? 마음이 무겁던 차에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랄까.


우여곡절 끝에 첫 책을 출간했고(출간 9개월 만에 '엉망인 책' 이라는 평을 마침내 듣고야 말았지만), 지난 7월 두 번째 책을 계약했을 때만 해도 '글쟁이, 할 수 있겠다' 라는 자신감으로 가득 찼었다. 그런데 고작 며칠 사이, 단 한 사람의 뾰족한 리뷰 한 건으로 이렇게 무너질 수 있을까?


연휴 기간 동안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바닥에 내리 꽂혔다가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다. 글을 쓰겠다며 회사를 그만둔 지 2년 8개월째, 마흔일곱의 나이에 이제 돌아갈 다리도 불타 없어졌다. 죽으나 사나 내가 할 일은 글 쓰는 일뿐인데, 그 최후의 보루에 실금이 갔다. 별 것 아니거니 싶었던 실금은 점점 벌어져 구렁이 같은 아가리가 되어 그까짓 실력으로 글을 쓰겠다는 거냐? 라며 나를 집어삼킬 듯 옥죄었다.


연휴가 끝나고 다시 홀로 남은 평일, 늦은 점심을 차려 먹고 인근 강변으로 나갔다. 조금 걷다가 벤치에 앉았다. 추석이 지난 완연한 가을,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히고 하늘과 유유히 흐르는 강은 평화로웠다. 네 고민이 뭔지 알바 아니라는 듯 세상은 고요했고 자신들이 정한 질서에 의해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10분, 20분...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물고기 한 마리가 잔잔한 수면 위로 펄떡 뛰어올랐다. 순간 거짓말처럼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마운 일이다..."


내 부족한 결과물을 돈 주고 사서, 시간을 들여 세세하게 비평까지 해주다니. 비록 뼈아픈 말 몇 마디에 마음의 상처가 되었을망정,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글이 엉망이라면 엉망인 것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면,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코너에 '불편한 편의점' 옆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겠지. 


두 번째 책의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도 그때의 나보다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겨우 두 종의 책을 써내고 마치 어떤 경지에 올라온 듯 의기양양했던 며칠 전까지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아직도 멀었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종류가 무엇이든 내 결과물을 대중 앞에 선보이는 일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지금의 노력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믿었던 자만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됐다. 팔다리에 소름이 돋고 양손이 벌벌 떨렸다.


생각 같아선, 당장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책을 절판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책의 가능성을 믿어준 출판사에는 미안하지만, 더 이상 돈 받고 팔리 수준이 아니라며 손사래라도 쳐야 하나 싶었다. 당장 이달 말에 출간될 두 번째 책도 이쯤에서 멈췄으면 좋겠다 싶었다.


극과 극, 너울 같은 감정의 폭풍이 지나가자 또 새로운 종류의 생각이 밀어닥쳤다.


이미 세상에 나온 것, 그것 역시 네 책임이다. 분명 흑역사로 남겠지만,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그 시점의 네가 최선을 다해 내놓은 결과물이고, 그 발판 위에서 또 성장하게 될 거다. 그 자체로 받아들이라고


에라이! 해보는 거지 그냥! 지금보다 두배, 세배 더 열중해서 모두가 공감하는 글을 쓰면 그만이지. 못할 거 없다. 다시, 의지가 생겼다. 그 이전이었다면, 삶에 지친 회사원이었더라면 결과물에 대한 비판은커녕, 결과물을 낼 도전 자체도 없었을 터다.


벤치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겨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분명 마음속 그릇이 한 뼘 늘었다. 다시 세상을 보니, 세상에나 그게 담아지더라. 이젠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님아, 그 책 돈 주고 사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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