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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Sep 20. 2022

책 두권쯤 내면 인생이 바뀌는 줄 알았다

글쓰기의 이로움

두 번째 책 출간이 코앞이다. 지난 금요일 출판사는 최종 마감을 마쳤고 인쇄에 들어간다고 통보해왔다. 첫 책을 냈을 때는 두려움 50, 놀라움 30, 기대감 20이었다면. 지금은 출판사에는 미안하지만 두려움 50, 무덤덤 45, 기대감 5 정도다.


첫 책을 출간한 지 9개월 만에 거한 악플성 리뷰(님아, 그 책 돈 주고 사지 마오 (brunch.co.kr))로 마상을 제대로 입고 자신감이 바닥을 뚫고 지하로 떨어져 버렸지 뭔가.


부끄럽다가, 화가 났다가, 현실을 인정했다가, 다시 열불이 차올랐다가...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감정의 널뛰기 속에 주말을 맞았다. 출간한 작가 입네. 한동안 부풀었던 자의식이 바람 빠진 풍선마냥 쭈그러져 너덜너덜 해진 마음으로 우연히 집어 든 글쓰기 책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것들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앞으로 오 년 동안 쓰레기 같은 글만 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세월 동안 글쓰기를 멀리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나는 이 구절에서 망치로 얻어맞은 듯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오 년 동안 쓰레기 같은 글을 쓸 수 있다'라는 구절이 머릿속에 메아리치듯 맴돌았다. 헐, 5년이라고.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래 어쩌면 그게 맞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 오갈 데 없는 사실에 가까웠다.


고작 2년 8개월, 이 정도면 됐겠지 자화자찬하며 써왔던 글들이 한순간 죄다 쓰레기로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동시에 답답했던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나는 지금까지의 나로 인정한다. 쓰레기를 썼더라도 그게 내가 가진 능력의 최대치였다면 어쩌겠나? 되돌릴 방법은 없다. 그걸 쓴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 그러나 글과 나를 분리해 낼 수는 있다. 글은 글일 뿐 글이 나일 수는 없을 테니까. 형편없어 보이는 지난날의 결과물이 자기혐오로 이어져서는 답이 없다. 과거는 과거 그 자체로 인정해 굵은 마디를 남기고 그 지점에서 다시 내 갈길을 찾아 가면 그뿐이다. 


그 시간이 누적될 수만 있다면, 몇 개의 굵은 마디를 남기고 훌쩍 커버린 대나무, 그 대나무들이 이룬 숲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인이 되는 과정이라면 뭐 나쁠 건 없다. 

순간, 가슴이 뛰었다. 

좋은 시를 쓰고 그 시에서 떠나라. 당신이 쓴 시를 세상 사람들이 읽게 만들고, 당신은 계속 또 다른 시를 쓰는 것이다.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좋은 시를 쓰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친절한 나탈리는 이런 말로도 나를 위로하고 다시 전진할 수 있는 힘을 북돋워 주었다. 마음을 먹는 일, 마음을 먹게 만드는 일이야말로 글의 힘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과정 없이 성취만 하려고 했던 무모함, 수수료를 치르지 않고 결과를 가져보겠다는 속셈이 분명 읽혔다. 이쯤 했음 된 거지 자만까지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대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런 과정을 거듭 거쳐왔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운명적으로 이끌리는 한 분야를 찾아 자신을 온전히 던져 넣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에 좌절도 하고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운명임을 깨닫고 무겁지만 가야만 하는 걸음을 다시 재촉하는 지난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고작 2년 8개월을 걷고 제풀에 지쳐 쓰러져 버릴 거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새로운 세계에서의 출발. 나탈리의 말이 맞다면 이제 겨우 반 정도 온 셈이다. 그마저도 최소 기준일 테니 아직도 갈길은 멀지만 적어도 시지프스의 형벌이 아님은 명백하다.


누군가에 의해 엉망이라고 지적받았던 내 책은 존재 그 자체로 소명을 다 한 셈이다. 세상에 나와줘서 감사하다고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나를 제대로 비춰보게 해 준 1등 공신 아니던가. 시간이 더 지나 성장한 키만큼 지긋이 고개를 숙여 그날의 자그마했던 나를 반추해볼 때의 느낌은 어떨까?


그땐 그랬지. 혹시 결정이 뒤집혀 내 생에 첫 책이 태어나지도 못할까 봐 전전긍긍했더랬지. 라며 웃음 지을 수 있을까?


내 경우 책 출간이 인생을 바꿔놓지는 않았지만 출간 그 이전과 이후를 나눠볼 수 있을 만큼 궤적을 바꿔놓긴 했다. 다시는 책 출간 이전의 나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다.   


아무런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저 묵묵히 쓸 뿐이다. 

-아이작 디네센

그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아이작 디네센을 인용해 희망도 절망도 없이 하루 4시간을 쓴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지 않을 것 같던 기회와 영원히 없을 것 같던 고비가 번갈아 가며 찾아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태워도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그저 묵묵히 전진한다




보너스) 커버 사진에 그 '엉망'인 제 첫 책이 있습니다. 맞춰보세요. 뭐 맞춰도 상금 같은 건 없지만요. 구매는 '강력' 비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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