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속엔 사직서 대신 엘리베이터 피치를 준비하자

특히 오피스 고어라면 반드시

by 허일리

입주창업가로서 약 8개월간 열과 성을 다했던 프로젝트에는 세 개의 큰 branch가 있었다. (하나의 프로젝트 엄브렐라 안에 있지만, 서로 다른 세 가지 아이디어였다는 뜻) 처음에는 두 개로 시작해서, 아이데이션을 지속하다보니 세 개가 되었는데, 한 사람이 진행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따라서 두 번째 브랜치는 기존 팀에서 함께 일하던 다른 매니저에게 위임했고, 세 번째 브랜치는 프리랜서 컨설턴트를 고용해서 위임했다. 사실 나의 직관상으로는 세 번째 브랜치는더 알아보는 것자체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당시 매니저였던 VP of Strategy님에게 1번과 2번 브랜치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용기를 내어 의견을 투척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정확히 말하면 그보다는 그의 상사가 3번 아이디어에 관심이 있었기에, 알아보는 시늉이라도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프로젝트가 시작된 후 약 5개월만에 조금은 업무 스콥의 clarity를 찾게 되었다. 360도로 보이는 너른 들판에서 동쪽 정도로 업무 분장이 좁혀진 기분이었다.


내가 맡은 1번 브랜치는 잠재 고객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였기에, Fake door test를 활용해보자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고객이 어떠한 문제나 키워드를 검색 엔진에서 검색했을 때, 마치 우리 회사가 이에 대한 솔루션을 이미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링크를 보여줌으로써 얼마나 많은 고객들이 우리 URL을 클릭하는지를 보는 것이 골자였다. 진짜 존재하는 문이 아니라, 가짜로 꾸며진 문이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문을 열려고 시도하는지를 체크함으로써 간단히 수요 예측을 할 수 있었다.


페이크 도어 테스트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의 큰 레슨이 있었다.

첫번째. 처음에는 곧장 SEM팀 (사내 디지털 광고 집행팀)과 미팅을 했는데, 연간 계획이 이미 다 짜여진 상태라서, SEM팀에서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미미했다 ->사내에서 혁신이 일어나려면 무엇이 필요햘까? 기존에 존재하는 리소스를 최대한 레버리지하면 비용은 절감되지만 캐파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기존에 잘 돌아가는 팀으로 하여금 언제 갑자기 일어날지 모르는 혁신의 찬스를 위해서 가용할 수 있는 캐파의 60, 70%만 돌리는 것도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다. 평소에 쳐내는 업무량을 모두 소화하면서도 혁신을 서포트할 수 있는 만큼의 캐파를 세이브해둘 수 있는 수준의 가동률(Utilisation Rate)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결국 SEM팀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해, 외부 회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두번째.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 SEM팀과의 협업이 어그러진 후, 우리는 빠른 속도로 우리를 도와줄 디지털 에이전시들을 찾기 시작했다. 발이 넓은 매니저와 코파운더 덕분에 6월 초 여름 시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주일 안에 여섯 군데의 에이전시들과 콜을 했고, 그 중 네 곳에서 견적을 받았으며, 그 중 한 디지털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었다. 우리 쪽에서 상당히 타이트한 데드라인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는 놀라운 속도로 팔로우업을 했으며, 10주 정도 아주 긴밀하게 협업하는 콜래보레이터로 지냈다. 독일에서도 B2B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회사는 일반 회사 대비 일하는 속도가 월등히 빠르다고 생각했던 지점이다.


세번째. 가슴 속에는 늘 엘리베이터 피치를 품고 다니자. 당시 내 상사의 상사는 CFO였고, 2주일에 1번 정도는 그에게 직접 보고를 해야 할 때도 있었다. 회사를 다니다보면 엘리베이터나 식당, 복도 같은 곳에서 같은 사람을 여러번 만나게 되는 일도 있는데, 우연히 그를 만나면 마음 속으로 그렇게 놀랄수가 없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엑셀 파일에서 봤는데도 생각이 안 나는 지표들... 1번 시안과 2번 시안의 차이가 뭐였지?... 마치 단기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머릿속이 뿌얬다. 심지어 그는 안 그래도 숫자에 빠른 CFO. 때문에 CFO와의 미팅에서는 더욱 더 숫자에 신경을 썼고, 언제라도 만나면 바로 대답이 나갈 수 있도록 현재 테스트의 상황을 세 줄로 요약하는 연습을 했었다.
이 경험은, 주요 스테이크홀더들을 만났을 때 할만한 엘리베이터 피치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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