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소스 확인은 프로젝트의 첫 단추
두 번째 레슨런: 리소스 확인은 최대한 넓고 빠를수록 좋다
내가 입주창업가로 참여했던 프로젝트는 2023년 2월부터 10월까지 약 9개월간 진행되었다. 2월부터 4월 말까지 첫 3개월은 한국에서 리모트로 참여했고, 4월 말부터 10월까지는 베를린 현지에서 근무했다.
스텔스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이해관계자의 폭이 상대적으로 좁은 편이였으며,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기 전에 버블 안에 갇히게 되었다. 다음은 리소스 매니지먼트 측면에서 아쉬웠던 부분들 중 네 가지를 선별한 것이다.
1. 프로젝트의 개괄을 최대한 빨리 파악하고 기대수준을 관리한다
프로젝트 배경이 무엇인지, 프로젝트의 스폰서는 누구인지, 할당된 예산의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어떠한 산출물 (Deliverables)을 언제까지 딜리버해야하는지 등 명백한 사항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불분명한 부분이나 과도하게 ambitious한 중간 목표가 잡혀있으면 언제 어떻게 재고할지 초기에 정의한다.
회고: 처음 브리핑을 받았을 때부터 ambitious하다고 느껴지는 측면이 있었으나 하다보면 어떻게 되겠지, 입사 초반부터 너무 몸을 사리는 것처럼 보이지 말자는 생각에 초반에 짚고 넘어가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이 사안은 몇 달 뒤 부메랑처럼 나에게 돌아오게 되었다. 이 과정이 당장은 불편할 수는 있지만, 프로젝트 초반에 expectation management를 해놓아야 추후 더 큰 짐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계획을 세울 때 낙관적이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회사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사람마다 경험은 다르겠지만, 나는 N개월짜리 프로젝트가 실제로 N개월 안에 끝나는 것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우리가 현재 예상할 수 있는 범주 안에 있는 변수와, 이런 것이 변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변수가 나중에 자동차 사고처럼 느닷없이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을 늘 생각하자.
2. 인수인계를 받거나 줄 내용이 있다면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자
이 부분은 내 권한 밖의 일이기는 했으나, 생각해보면 아쉬운 지점이다.
나를 포함한 프로젝트 팀이 2월에 킥오프를 하기 전에, 스폰서는 외주 컨설턴트 팀에게 두 달간 리서치를 맡겼다 (12월-1월). 물론 컨설턴트 팀에서는 당시에 진행할 수 있는 최선의 업무를 진행했으나, 그들이 작업한 산출물은 structured 되어있지 않았고, 그 자료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리서치를 진행했던 팀의 추가 설명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했다. 2월 1일 첫 출근날의 당혹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나도, 동시에 조인한 UX 리서처도 그들의 작업물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외주 팀은 이미 계약 기간이 종료되어 추가로 업무를 맡길 수는 없는 상황. 1시간이라도 좋으니 외주 팀과 연결을 해달라는 나의 부탁에 결국은 스폰서가 다시 연락을 해서 짧은 인수인계 시간을 가졌고, 그 몇 시간은 큰 이후 차이를 가져왔다.
물론 자료가 아주 잘 정리되어 있고, 서로간의 위계도 명확하고,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명확하게 작성되어 있다면 장기간의 인수인계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1-2주일의 인수인계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3. 실무자와의 연결은 결코 해가 되지 않는다
입사한 후 첫 2주 동안에는 각 부서의 Director들과 1:1 커피챗을 가졌다. 내가 그렇게 먼저 하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라, 내 상사이자 프로젝트 스폰서의 가이드였다. 물론 디렉터 (팀장들을 관리하는 직책인데 국문으로 제일 적합한 번역이 뭔지 모르겠다. 나의 구 직장은 방송국이어서 이 직급을 '국장'이라고 불렀는데,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맞지 않는 번역일 수도 있겠다)들과 알아가는 자리도 소중한 기회였지만, 실질적으로 내가 벽에 부딪혀서 도움을 필요로 했을 때 제일 도움이 됐던 사람들은 팀장, 혹은 파트장 레벨의 실무자인 경우가 많았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해외에서도 조직 생활에서 Know-who는 엄청난 자산이 된다. 이 내용은 이 자체로도 포스팅 1개 이상으로 길어질 수 있어서 여기에서 줄이겠다.
4. 높은 사람들이 모르는(또는 모를 법한) 디펜던시를 빨리 파악하자
내가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경우, 스폰서가 두 명이었는데 한 명은 창업자였고 다른 한 명은 VP of Strategy였다. 물론 이 분들은 이 분들 나름대로 나를 정말 도와주고 싶어했으나, 프로젝트 진행에 있어서의 현실적인 어려움이나 기술적인 보틀넥 등을 예견하기에는 너무 높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이다.
나의 경우 짧은 시간 안에 많은 페이크 도어 테스트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었으나, 사내 시스템을 활용할 경우 (내부 CRM 툴, 내부 도메인 등) 내부에 큰 디펜던시가 생기는 상황이었다. 스폰서들과 미팅을 할 때에는 큰 단위의 이야기들을 하게 되기 때문에 '00월까지 정량적인 테스트 XX개 진행' 이런 식으로 주요 보고 내용을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 내용을 파고들어가다보면 그들도(혹은 그들이어서) 모르는 보틀넥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디펜던시의 구체적인 내용 파악은 실무자로서 매우 중요하다. 이때 3번에서 언급했던 실무자들이 특히 도움이 많이 된다.
프로젝트가 종료된지 6개월 정도 지나서 디테일한 내용은 가물가물하기도 한데, 어차피 대외비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일반론적인 내용으로 계속 써나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