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준상 Sep 17. 2018

3층 서기실의 암호

북리뷰-북한

#3층서기실의암호 #태영호

.

1. 책을 시기 적절하게 잘 냈다. 한국 국민들이 궁금해 할 만한 북한에 대한 내용이 전반적으로 담겨있는 책이다. 저자의 출생과 가정사부터 외교관을 지내면서 있었던 일화들, 북한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직접 겪은 내용 위주로 쓰여 있기 때문에 내용이 방대함에도 읽는 데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좋은 책이다.

.

2. 북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크게 놀라운 부분은 많지 않았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북한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다만 주민들의 인권탄압과 가난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있는 부분이지만, 책을 읽고 나니 실상 지배층도 주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화되어있는 숙청과 김씨 가문의 전횡으로 인해서 사실상 그들을 제외한 전국민이 탄압을 받으며 살아가는 나라로 보인다.

.

3. 북한 체제 운영에 관한 내용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 새로운 부분이었다. 애초에 민주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체제이고, 그래서 독재를 지금껏 이어올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북한은 책 제목에도 등장하는 ‘3층 서기실’에서 국정의 모든 내용을 수령에게 보고하는 체계다. 또 부처간 협의를 거치는, 우리에게는 당연한 절차가 전혀 없이 3층 서기실로 직보고하고, 수령이 직접 각 부처에 명령을 하달하는 체제로 되어 있어서, 관료들도 타 부처의 업무에 대해 알 수 없는 구조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부처별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하고, 그래서 여러 사람의 목숨이 날아가기도 한다.

.

4. 왜 그렇게 북한이 핵에 목숨을 거는 지에 대해 책을 읽으면서 좀 더 명확해진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시작은 체제에 대한 위기감에서 나온 것이고, 대화를 통해 풀어가고자 하는 것 처럼 보이는 지금도 ‘핵이 없으면 다 죽는다.’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 미국도 이런 부분을 알면서도 전쟁 억제를 위해, 국익을 위해 대화에 나서고 있는데, 체제 안전을 보장하면서 지금처럼 나가는 게 틀린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석으로만 몰아가면 충분히 다 죽자고 덤빌 수 있는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오싹한 기분마저 들었다.

.

5. 외교관으로 오래 일해온 저자의 여러 일화들도 흥미로웠다. 폐쇄적인 북한 체제의 속박을 받으면서도 개방된 자유국가에서 살아가며 겪은 일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일화들에는 어쩔 수 없이 기본적으로 자괴감이 깔려있다. 자식들이 학교에서 놀림을 받고 오고, 점점 세계 속에서의 북한의 위치와 실상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을 보면서 부모로서 느꼈을 감정은 자괴감이었던 것 같다.

.

6.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호시절에 젊은 시절을 보낸 저자이기 때문에 그 시절에 대한 향수도 엿볼 수 있다. 김일성 체제 하에서는 경제사정이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고, 지방에서도 나름대로 가난하지 않게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김정일 체제로 넘어가면서 수령 한 사람을 위한 독재국가의 틀이 완성되었고, 주민들도 가난에 시달리게 된 것이라고. 그래서 아직 그 시절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는 듯한 내용도 좀 등장하는데, 북한의 가난한 모습만 보면서 자라온 나로서는 신기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통일이라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생각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

7. 책은 저자의 통일론으로 끝맺음을 하는데, 이 부분이 가장 인상깊었다. 앞서 말한 과정을 통해 형성된 저자의 가치관은 ‘북한은 이러이러하게 잘 살기도 했었고, 나쁜 나라는 아닌데 김정일 때부터 독재체제가 굳어져서, 지금은 도저히 답이 안나오는 나라다. 북한 정권을 이러이러한 식으로 붕괴시키고 통일을 이뤄내야 한다.’라는 식이다. 망명을 해서 한국에 살고있기는 하지만 망가진 북한사회를 구해내고 싶은, 어쩔 수 없는 사회주의자의 마인드다. 그가 말하는 통일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부분도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우리 사회에 이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생겼다는 것에 나름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8.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생각하며 읽을 수 밖에 없었다. 통일을 염원하는 소수의 한국 젊은이 중 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현재 기본적으로 노선은 잘 잡고 가고 있는 것 같다. 체제보장을 약속하면서 일단 평화를 안착시키고, 아무 울타리 없이 각자도생하며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을 북한경제에 숨통을 틔우면서 어느정도 안전하게 먹고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남한 사람이 저런 나라에 대해서 강경한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고만 말하는 것은 진짜 평화나 통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말 자기 안위만을 위한 것이라 본다.

.

9.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담쌓고 관심없이 사는 것 보다는 실상을 좀 알아야 그 속에서 기회도 볼 수 있을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인플레이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