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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영작가 Jul 10. 2019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포기해도 결국 내 인생이다

 대한민국의 여자들은 현재 자존감 결핍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여자들의 입지가 높아졌다고들 하지만 아직까지 여자에게 더 불리한 현실임에 틀림없다. 나는 현실에서 힘겨워하는 여자들을 자주 만난다. 내게 조언을 얻고자 연락을 해오는 사람 중 대부분이 바로 경력 단절 여성 그리고 고민을 한 가득 안고 사는 미혼 여성들이다. 그녀들과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이 책을 써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녀들을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낮아진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인생은 고통과 행복의 연속이다. 고통에도 한계가 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힘든 순간도 있었고 미칠 만큼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 행복한 순간이 있었기에 힘겨움을 겪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고 다시 행복을 느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노력하게 된다. 행복도 불행도 모두 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모든 인생의 선택들은 내가 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춘기를 강한 열정으로 극복했고 내 인생의 첫 직장에서도 누구보다 빛나는 삶을 살았다. 나의 한계에 굴복하지 않았고 힘들 땐 눈물을 쏟아내며 버티고 또 버텼다. 


 어릴 때 나는 위로는 언니, 아래로는 남동생에게 치여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자랐다. 내가 태어날 때는 아들이 아니라고 할머니는 병원에도 오시지 않으셨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태어났기에 다른 형제들보다 더 치열하게 살았고 지금도 그런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 사람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간절함과 욕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족함을 욕망으로 전환시켰고 내적 에너지를 가동시키는 동력으로 이용했다.

  대학교 시절에 나는 유난히 선배들의 남녀차별적인 발언에 발끈했었다. 중 고등학교 때는 여학생들끼리만 생활해서 몰랐는데 대학에 와서 남자들과 생활을 하니 생각의 격차를 느끼게 되는 사건이 종종 있었다. 하루는 동아리 선배가 내게 남자는 되고 여자라서 안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선배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선배 같은 사람이 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 창피하네요. 대한민국의 미래가 걱정입니다.”라는 말을 내 뱉아 버렸다. 법대를 다니고 있는 선배였는데 내 말을 듣고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기분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나는 자라면서 단 한 번도 남자는 되고 여자라서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적이 없었다. 


 나에게 한계가 있다면 한 인간으로서의 한계 일 뿐이지 여자라서 안 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가끔 이렇게 생각 없이 말을 하는 남자들을 볼 때면 혼쭐을 내곤 했다. 부모님 세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러면 안 되는 거란 생각이 강했다.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아직까지 여자들 스스로가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들의 의식변화 그리고 그전에 여자들 스스로가 틀에 갇힌 생각과 편견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나는 대학 시절에는 내성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나의 생각에 있어서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나의 부모님은 나를 그렇게 가르쳤고 나 역시 그렇게 의식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나의 경쟁자는 남자, 여자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잊어본 적이 없다. 어릴 때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가 했었는데 나는 유난히 그 드라마를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혼자서 화를 막 내기라도 할 때면 식구들이 놀리곤 했다. 아들과 딸을 심하게 차별하는 모습이 너무 못마땅했는데 자꾸만 보게 되는 드라마였다. 이런 드라마를 볼 때면 여자라서 더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시아나 항공에 입사해서 일을 하면서 전투적인 삶을 살았다. 딱 한 번의 도전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승무원 생활을 10년을 했다. 나는 입사를 하는 순간부터 임원까지 올라가리라 마음먹었다. 나의 삶은 일을 중심으로 그리고 최우선으로 채워져 갔다. 남들이 결혼에 혈안이 되어있을 때조차 나는 진급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회사 일에 따라 웃고 울었다. 살은 자꾸 빠지고 위는 나빠져 소화도 안 되고 그런 와중에도 나는 누구보다 미친 듯이 일을 하며 살았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한 달 동안의 월세와 버틸 수 있는 생활비가 전부였다. 다시 돌아갈 곳은 없다고 느꼈고 대학을 졸업하면 내 인생은 스스로 책임져야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게 열정적이었던 20대를 살았는데 아버지의 죽음 이후 더 이상 힘들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악착같이 버티며 살고 싶지 않다고 느꼈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내 인생을 남에게 의지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단 한 번의 안일한 생각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도망치듯 선택한 결혼은 당연히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온전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시아버지 밑에서 일했던 남편은 결혼과 동시에 일이 많아져 새벽에 들어오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나는 연고도 없는 곳에서 임신한 채 외로운 나날을 보냈다. 출산일에도 남편은 일이 바빠 출근을 했고 홀로 분만실에 누워있는 내 기분은 정말이지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았다. 

 진통을 오래 해서 그런지 출산 후 엉치뼈가 안 좋아져 조리원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식사 때가 되면 난관을 붙잡고 위층으로 오르락내리락 해야만 했는데 그것도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는 출산 후 1주일 째 장염에 걸려 차가운 병실에서 산후조리를 해야만 했다. 게다가 아들이 퇴원하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장염이 재발해 생명까지 위험한 상황이 되어 신생아 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만 했다. 갓난아이를 중환자실에 홀로 두고 매일 10분씩 면회를 하면서 눈물을 쏟아내며 고통스런 날들을 보냈다. 다행히 아들은 무사히 병원을 나왔고 나는 복직하는 날을 앞두고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아이가 아프지 않고 잘 지냈다면 남의 손에 맡기고 다시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갓난아기 때부터 고생한 아들을 생각하니 차마 한 달에 반은 집을 비워야 하는 일을 다시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내 인생, 내 삶도 중요했지만 내 배에서 나온 세상에 하나뿐인 내 아들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들이 또 다시 아파지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을 내내 안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 외에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일도 분명히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말이다. 당시 내 인생을 결정한 것은 나의 이성이 아니라 불안감과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나는 남들보다 더 힘든 산후 우울증을 겪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매일 불면증에 시달리며 높았던 나의 자존감마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산후 우울증으로 베개를 적시는 날이 늘어만 갔다. 덕분에 아들은 눈물 섞인 모유를 먹고 자랐다. 잘 나오지 않는 모유를 먹이느라 아들은 시도 때도 없이 모유를 찾아댔다. 18개월 동안 나의 소원은 단 몇 시간만이라도 잠을 한 번 자보는 것이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들보다 먼저 잠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한 시간마다 깨서 아들이 숨을 쉬는 지 확인하는 습관까지 생겼다. 나의 불면증은 몇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결혼 전에 꾸준히 했던 요가를 다시 시작했고 나의 꿈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결혼 전에 얼마나 열정이 강했었는지, 욕심이 많았었는지 생각해보았다. 누구보다 눈부신 인생을 살고자하는 마음이 강했던 나의 모습을 말이다. 승무원시절 하고 싶었던 쇼핑몰 일을 시작하자 마음먹었다. 매일 동대문을 다니며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나는 일을 해야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이어서 너무 좋았다. 나는 누구의 아내도 엄마도 아닌 나를 찾고 싶었다. 미친 듯이 일하고 책도 쓰면서 진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냈다. 지난 2년 동안 내 인생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오직 내 인생을 바꾸겠다는 미친 열정 하나로 많은 성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남자들도 편한 인생은 아닐 거란 걸 안다. 하지만 육아와 일을 함께하면서 힘겨워하거나 육아를 위해 일을 포기하고 자신을 잃어가는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안타깝다. 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를 잃어버렸던 시간도 있었고 잃어버렸던 나를 다시 찾아가는 시간도 있었다. 여자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지만 그래도 두 배로 노력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고 두 배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면 기꺼이 그러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자기계발 작가이자 쇼핑몰 창업 코치를 꿈꾼다. 죽기 전까지 계속해서 책을 쓰면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선물해줄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반가운 독자의 메시지를 받고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대한민국 여자들이 마음껏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힘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여자들이 여자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그 날까지 나의 도전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여자의 인생을 바꾸는 자존감의 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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