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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영작가 Jul 10. 2019

유능한 여자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어떤 결정이든 자신의 인생을 놓고 진지한 고민끝에 내려야 한다

 “앞으로 회사는 얼마나 다닐 건가요?”


 “네, 앞으로 30년은 다닐 예정입니다!”


 입사 면접에서 면접관과 내가 주고받았던 질문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나의 목표는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올라가는 것이었다. 고가 점수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 몸이 좋지 않은 날에는 당장 병원에 달려가 주사를 맞았고 매일 한약을 달고 살았다. 나의 하루는 다음날 스케줄에 따라 정해졌고 한참 놀 때였지만 내게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친구들이 결혼에 혈안에 되어있을 때에도 오로지 회사 일이 최우선이었다. 내 인생을 책임질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힘들어도 악착같이 버티고 또 버텼다.

 회사에 사직서를 내는 날 상사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지금 힘들어도 조금만 더 버티면 되는데 너무 안타깝네요.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늘 일찍 그만두는 것 같아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뒤로하고 나는 회사를 나왔다. 나는 분명히 면접 때 30년을 근무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아이를 핑계로 회사를 그만두긴 했지만 사실 나 스스로 기회를 놓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더 이상 악착같이 살기 싫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상황에 굴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핑계를 대고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다닐 때 창업을 준비하고 더 멋지고 당당하게 퇴사를 할 것이다. 나약해진 자신과 타협하듯 내어버린 사직서는 지금도 내내 마음에 걸린다. 


 대한민국 간호사들의 ‘태움문화’를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도 많이 하지만 넓은 시야로 본다면 간호 인력 부족과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이다. 여유 없이 빡빡한 업무 환경에서 배려나 따뜻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능력 있는 간호사들이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떠나는 현상은 정말 안타깝다. 힘들게 공부해서 간호사가 되었지만 비상식적인 문화로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들이 태어나던 날 쌀쌀맞게 나를 대하던 간호사가 생각이 난다. 힘들어하는 산모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힘이 없어서 아이가 빨리 나오지 못하는 거라며 나의 배에 올라타서 배를 마구 누르는데 나는 이러다 내가 죽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마저 들었다. 그때의 간호사 덕분에 나는 한 달이 넘도록 배에 피멍이 가득했고 나의 배를 보는 사람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은 나의 배를 보고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했다. 분명 간호사가 되기 위해 나이팅게일을 꿈꾸며 열심히 공부했을 텐데 마음의 여유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산부인과 간호사들의 모습도 안타깝다.


 나는 그동안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직장인이든 창업을 한 사람이든 의욕이 넘치고 열정이 남다른 사람들을 마주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힘든 상황에 부딪히면 당연한 듯 현실에 굴복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여자들은 더 했다. 결혼 전 열정이 가득했던 사람도 결혼 후 출산을 하고 나면 여느 여자들과 비슷한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는데 굳이 악착같이 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결혼 전의 인생과 결혼 후의 인생을 분리하며 말이다. 주위에 있는 여자들도 다 그러고 사는데 나만 유독 힘들게 산다는 느낌과 소외감은 결국 대한민국 여성들의 평준화를 만들어낸 듯하다. 

 그런 와중에도 악착같이 사회에서 버티는 여자들은 남들의 따가운 시선을 삼키며 외로운 전투를 치르는 중일 것이다. 주위의 엄마들은 아이를 나보다 더 잘 돌보는 것 같은데 나만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 그리고 일을 그만두었을 때의 불안감을 안고 산다. 그리고 경력이 단절된 이후 재취업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힘든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소연할 데도 없는 엄마들이 많다.


 얼마 전 독자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한 여성분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제 동생도 승무원인데, 작가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아이를 위해서 회사를 그만둔 것도 그렇고 다시 일을 시작한 것두요. 제 동생은 아이보다 일이 더 중요해서 회사를 그만둘 마음이 없어요. 아이가 어리고 엄마를 많이 찾는데도 냉정하게 뿌리치고 일을 하러 가더라구요. 모성애가 별로 없나 봐요.”

 나 역시 아이가 어릴 때 아파 고생한 경험이 없었다면 뿌리치고 일을 하러 갔을 것이다. 누구나 직면한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일을 그만두고 나면 가족 모두 상황이 좋지 않을 테고 원할 때 다시 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는 같이 낳았지만 육아에 대한 큰 책임은 여자에게만 지워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이런 현실에서 출산율을 높인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아이를 낳지 않는 조건으로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내 주위만 해도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겹고 많이 외롭다 느끼는 현실이다. 한 생명을 만들어내고 평생 책임진다는 게 어쩌면 엄청난 용기와 각오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가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힘든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회를 떠난 여자들, 사회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여성들 모두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독일의 심리 상담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우르술라 누버는《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에서 이런 말을 한다.

 “현대 사회는 여자에게 냉혹한 메시지를 보낸다. 훌륭하고 멋있는 여자는 직업, 결혼 생활, 가족관계 등에서 모든 것을 거머쥘 수 있다고 믿게 한다. 하지만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또 홀로 이 모든 부담을 짊어지고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참혹한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이렇게 여자는 모든 부분에서 성공적인 삶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자책한다.”

 어쩌면 사회에서 유능한 남자보다 유능한 여자들이 더 많은 것을 감내해 낸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주위에서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일하는 여자들은 모두 남편이 자신보다 더 많은 수입을 가져오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가사 일을 부담하며 육아에 더 큰 책임을 느낀다. 그런 현실을 당연하다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몸과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된다. 이런 마음의 짐이 유능한 여자들이 사회에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아닐까.


 능력 있는 여자들 중 일부는 힘들어도 버티고 또 버티는 워킹맘으로 살아가고 있고 나머지는 일을 포기한 여자로 살아가고 있다. 명확한 자신만의 기준은 찾기 힘들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조금 더 요구되는 방향으로 인생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일을 그만두었을 때 생활이 많이 힘들어지거나 가족들이 자신의 경제력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면 원해도 그만두기가 힘들다. 반면에 일보다 육아와 가정을 돌보는 것에 더 큰 기대를 자신에게 한다면 그것을 선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렇게 여자들은 결혼과 동시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기 보다는 환경의 요구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일을 바라보고 선택하는 경향이 많다. 결혼한 남자들은 결혼을 하든 하지 않 든 자신의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만 여자들은 결혼 후에 자신의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쉽지 않은 현실이다. 육아도 가사도 남자에게는 선택의 문제이지만 여자에게는 자신이 짊어져야할 온전한 책임감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을 놓지 않고 끝까지 버텨내는 여자들이 많다.


 내 친구 K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다. 회사에서 남편을 만났고 결혼했다. 아이를 둘이나 낳았지만 육아휴직도 짧게 쉬고 회사로 복귀했다. 남편보다 일에 대한 욕심이 큰 탓에 남편은 그녀를 ‘가장’이라고 부른다. 육아도 살림도 일도 최고로 해내기 위해 애쓴다. 그녀는 평생 일을 하며 살아온 엄마를 보고 자라면서 여자에게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뼛속까지 알고 있는 여자다.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정말 그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녀가 있기에 훗날 우리의 딸들이 사회생활을 할 때는 더 나은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육아든 다른 이유에서든 일을 포기한 여자들은 언젠가는 사회에 다시 돌아올 확률이 높다. 원치 않지만 일을 다시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라면서 돈이 더 많이 들고 자신을 끝까지 책임질 줄로만 알았던 남편의 능력이 지속되지 않는 경우 어쩔 수 없이 돈을 벌어야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길게 보았을 때, 조금 힘들어도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다면,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다면 어떤 힘든 상황이 닥쳐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지켜낼 수 있는 여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당장 눈앞의 현실만 바라보고 성급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어떤 결정이든 아이와 남편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놓고 진지한 고민 끝에 내려야 하는 것이다.



<여자의 인생을 바꾸는 자존감의 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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