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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 Dec 03. 2023

메갈리아 상징 논란과 이대남 현상

최근 어느 몇몇 게임들의 영상이나 일러스트 등에서 메갈리아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상징이 발견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통해 알려져서, 게임에도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전혀 흥미가 없는 이들에게는 낯선 이슈일 수도 있겠습니다. 


메갈리아 로고

메갈리아는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인터넷 커뮤니티였습니다. 이 손모양은 '한국 남자들의 고추가 매우 작다'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메갈리아가 탄생할 무렵 사회에 만연했던 여성혐오적 사고와 담론들에 대한 맞불의 의미로 '미러링 (거울로 비추기)'이라는 것이 유행했었습니다. 남자들에게 똑같이 돌려주자는 캠페인 같은 것인데, "어디 여자들 얘기하는데 남자가 끼어드냐?", "수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남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그게 뭐 하는 짓이냐" 등의 예시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저 손모양은 이러한 미러링 캠페인을 종합해 상징하는 것으로 등장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손모양은 메갈리아의 상징을 넘어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는데, 이는 메갈리아 자체가 스스로를 페미니즘 사이트, 페미니즘 커뮤니티로 정의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메갈리아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페미니스트들이 자주 사용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후로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 특히 페미니즘 활동의 틈바구니에서 종종 발견되는 남성혐오에 대한 반감이 널리 퍼졌으며, 이 손 모양은 남성혐오의 심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 손 모양이 들어간 각종 매체 유통물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번 일도 그런 사건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건들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설왕설래 중, 각종 매체에서 이 손모양을 문제 삼는 이들을 비판하는 입장, 실제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이들이 없는 문제를 만들어 억지를 쓰고 있다는 주장, 그리고 그밖에 이런 입장과 같은 편에서 하는 이런저런 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먼저 가장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입장은, "왜 저 심볼을 불쾌해하니? 아, 정말로 고추가 작아서 콤플렉스가 심하기 때문에 그렇구나. 고추가 크다면 신경 쓰일 리가 없겠지. 쯧쯧, 이 고추 작아 서러운 불쌍한 녀석들!"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다른 욕설에 대해서도 자기 말을 적용해 봐야 합니다. 저 손모양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그 손모양을 모욕•욕설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반발하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멍청이"이라고 욕을 했다고 합시다. 욕을 들은 사람이 기분 나빠하면, 그건 욕을 들은 사람이 실제로 멍청이기 때문이며, 실제로는 멍청이가 아니라면 기분 나쁠 이유가 없는 걸까요? 벨기에를 관광하다가 누가 나를 향해 눈을 찢는 제스처를 취했을 때, 내가 기분이 나쁘다면 그건 내 눈이 실제로 쭉 찢어진 실눈이고 내가 그 눈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며, 내 눈이 실제로는 좌우로 길쭉하게 찢어지지 않았거나 혹은 거기에 콤플렉스가 없다면 전혀 반발할 이유가 없다고 하는 게 맞을까요? 

그렇지 않겠죠. 내가 진짜로 멍청이•실눈이 아니더라도, 혹은 내게 장애가 있거나 실눈일지언정 거기에 대해 떳떳하고 콤플렉스가 없다고 해도, 상대가 나를 모욕하려는 의도로 행동했다면 거기에 대해 기분 나빠할 수 있고 나를 존중하지 않는 데 대해 항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두 번째로, 그 손모양은 고추가 작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등호 "="를 나타낼 뿐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저 손모양이 실제로 고추가 작다는 조롱의 뜻으로 사용돼 왔음이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힘이 없는 주장입니다. 우선 메갈리아 운영자가 직접 그렇게 밝혔습니다. 사회적으로 이미 모욕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한 것을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중지를 세워 보이고 나서 상대가 항의하자 "이건 산(山)이나 형제를 뜻하는 수화일 뿐인데 왜 그러니?"라고 대응하는 것과 같습니다. 

위와 같은 단순히 말이 안 되는 태도 외에, 메갈리아 상징에 반발하는 젊은 남성 그룹 외부의 사회에서는 이들의 반발을 수긍하는 태도보다도 이들이 없는 것을 만들어서 역정을 낸다, 별 것 아닌 걸로 야단이라는 식의 태도가 주류적이라는 점을 짚고 싶습니다. 메갈리아 상징이 들어간 게 아니라 우연히 그런 손 모양이 되었을 뿐인 그림이나 영상물을 가지고 억지로 우기는 경우도 정말 있긴 합니다만, 그런 착각 내지는 억지만 있는 게 아니라, 진짜로 대상이 있는 반발이 있는데, 그 대상이 없는 것처럼 이들의 반발을 상대한다는 게 제가 보기엔 진짜 문제입니다. 그 대상이란 바로 남성혐오고요. 


남성혐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담론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이들로부터 꾸준히 나왔습니다. 여성혐오는 진짜로 있지만, 남성혐오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단 저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광의에서의 여성혐오(Misogyny)가 사회에 때로는 노골적인 형태로, 때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운 형태로 (가장 흔하게는 여자의 능력을 얕잡아 보는 방식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음은 제가 보기에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이긴 하지만 남성혐오도 있습니다. 마치 희미한 연기처럼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있는 그런 형태가 아니라, 비교적 적은 숫자의 사람들 사이에 고농도로 배어있는 것입니다. 남성에 대한 혐오나 증오를 품고 있는 특정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가장 뚜렷한 예로 워마드라는 온라인 그룹이 있으며 (관련기사), 이들의 웹사이트는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이아몬드가 매우 드문 광물이라고 해서 다이아몬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남성혐오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남성혐오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로부터 외면당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내 눈앞에 나에게 중지를 치켜세워 보이는 이가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네가 허깨비를 보고 있다고 핀잔을 주는 그런 형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중지는 없다, 너는 중지의 환영을 보고 있을 뿐이다, 네가 중지를 머릿속에서 창조한 거다"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진절머리를 내며 "어, 그 중지 나도 봤다. 네가 기분 나쁜 게 당연하지"라고 말해주는 이를 반기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지난 대선 국면에서 소위 "이대남 현상"이라고 불렸던 그 경향이 바로 위와 같은 형국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이대남 현상은 윤석열을 당선시킨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만약 현 야당 정치인들이 페미니즘을 진지하게 대하는 것처럼 이대남 현상을 대했다면 그들은 자기 쪽 인물을 당선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쪽을 지지하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이대남 현상이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의 규모가 있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이들을 대하는 주류 사회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향은 큰 틀에서 보았을 때 간단합니다. "여성혐오는 있고, 여성혐오는 타파되어야 한다. 그런데 남성혐오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에서, "여성혐오도 있고 남성혐오도 있다. 둘 다 나쁘고 둘 다 타파되어야 한다"로 바뀌면 됩니다. 남성혐오도 있긴 있다는 점만 인정하면 됩니다. 그러면 개별 사안들에 대한 시각과 대응은 자동으로 바뀝니다. 제가 보기에 문제는 어떻게든 남성혐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꺾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생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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