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같은 무리’를 뜻하는 문하(門下), 동문(同門), 문중(門中), 가문(家門), 문벌(門閥)이란 말이 모두 '문'의 공간적 은유를 이용한다.
집의 대문, 아파트 현관문은 단지 공간적 의미로서 한 사람이 집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을 경계로 당신은 직장인에서 아빠로, 사회인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바뀐다. 움츠린 어깨가 이완되고, 찡그린 얼굴에 미소가 감도는 것은 친근한 가족이 기다리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문을 경계로 당신은 다른 세계에 들어섰으며, 거기에서 다른 시간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당신은 다른 존재가 된다.
세상의 인간 막장들이 살 것 같이 을씨년스러운 동네 어귀에 있는 성당 앞을 우연히 걸어서 지나간 적이 있다. 세속도시의 절벽에 위태롭게 서 있는 그 성당의 나무문은 가볍게 밀면 열린다. 그러나 이 사물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 동네의 어떤 사람도 이곳이 자기가 거주하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임을 알게 되리라. 어깨의 힘은 빠지고, 들떴던 숨소리는 차분해지며, 수다는 묵상으로 바뀐다. 이 사물을 경계로 탕진된 정신은 온전한 제 영혼과 다시 만날 것이다.
불가의 일주문(一柱門)은 아예 여닫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지만, 이 문 역시 다르지 않다. 늘 열린 커다란 문에 들어선 이는 제 안의 잡스러움을 그 순간 깨닫게 된다. 집요하게 무언가를 쫓아다니던 성마른 마음이 일순간 중단되는 고요를 마주하게 된다.
노자는 ‘방은 창과 문을 내야 비로소 마무리 된다’고 말했다. 철학자 벤야민은 ‘메시아는 좁은 문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삶에는 다른 차원으로 열린 문이 필요하다.
함돈균
문학평론가로 시작하여 삶의 다양한 차원을 새로운 질문으로 드러내는 작가가 되었다. 글에서 드러냈던 뜻을 사회제도와 문화적 현실에서 실현할 사회적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실천하는 인문운동가로서 살고 있다. 고려대, 한예종, 서울예대, 한국전통문화예술대학, 서울문화재단, 서울자유시민대학, 삼성전자R&D센터, 리움미술관, 문체부, 교육부, 외교부, 교육청 등 여러 기관에서 강의 및 인문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자문해 왔다. 실천적생각발명그룹 시민행성, 사회디자인학교 미지행 등을 기획했고, PaTI(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인문연구소장을 지냈다. 플라톤아카데미재단 편딩으로 설립되는 인문정신문화연구소 설립 디자인에 참여했다. 《사물의 철학》, 《순간의 철학》, 《코끼리를 삼킨 사물들》, 《예외들》, 《사랑은 잠들지 못한다》, 《얼굴 없는 노래》, 《시는 아무 것도 모른다》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 《교육의 미래 컬처 엔지니어링》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현재 사회디자인학교 미지행의 설립에 힘을 쏟으면서, 더불어 '스피리추얼 하우스 다스딩'이라는 인문-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공동파운더로서 새로운 실험에 도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