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죽어도 되는 나
나는 삶에 미련이 없다. 지금 당장 죽어도 된다. 어쩌면 지금 죽는 게 더 좋은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오늘을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치열하거나 방탕하게 사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매일 평범한 하루를 산다. 하고 싶고 가지고 싶고 가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좀 더 살고 싶지 않느냐고? 그렇지 않다. 나는 하고 싶은 건 다 했고 가지고 싶은 건 다 가졌고 가보고 싶은데도 다 다녀왔다. 물론 더 가지고 싶고 하고 싶고 가보고 싶은데도 있지만 안 해도 상관없다.
살아생전 착한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개쩌는 천국 생활이 기대되어서도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현 생을 끝내고 싶을 만큼 고단한가? 그렇지 않다. 의외로 나는 적당히 바쁘고 적당히 재밌고 적당히 피곤하고 또 즐겁게 지낸다. 대단하게 행복하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은 삶. 엄청난 내일을 기대하면서 오늘을 희생하지 않는 삶. 이게 내가 사는 삶이자 당장 죽어도 후회가 없는 하루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내가 좋다던 그는 말했다. 술도 커피도 쓴 것처럼 인생도 쓴 것 같다고... 고맙고도 지켜주고 싶던 마음을 나누고 돌아오던 그날 내 하루는 달콤했다. 쓴맛은 유난히 혀끝에 오래도록 남는다. 힘든 날들은 여운이 길다. 힘든 하루는 그다음 날이 어떤 맛인지 좀처럼 느끼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대체로 인생의 맛이 쓰다고 하는 걸까?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가. 그러나 인생을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본다면 비극적이지만도 희극적이지만도 않은 다른 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게 인생이란 매일 새로운 맛으로 가득하다. 어떤 날은 눈물이 쏙 빠지도록 맵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이가 다 썩어버릴 정도로 다디달다. 인생 전체의 맛은 쓸지 몰라도 나의 매일은 이렇게나 다양하다.
나는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살지 않는다. 엄청난 부자가 되기를 바라거나 빼어난 미모를 가지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다. 매일 밥벌이를 하면서 소박하게 사는 내 삶도 꽤 만족스럽다. 대단한 미래를 그리며 오늘을 희생할 생각이 없다. 그렇게 성실하고 소박했던 오늘들은 뜨끈하기도 짭짤하기도 하다.
나는 지금 죽어도 좋은 삶을 산다. 어딘가에 있다는 실체 없는 파랑새를 쫓지 않는다. 삼백 년 만의 개기일식보다 어제의 초승달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소하게 불행했거나 조금은 행복했던 오늘이 좋다.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