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ice, 보편적 정의와 상대적 정의

by 코인콜럼버스

사람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념과 사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그가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이클 샌델은 그가 하버드 교수라서

학생들에게 어려운 철학이나 사상을 가르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제껏 학생들이 의심조차 하지 못했던

각자 알고 있는 '정의'의 영역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부수기 위해 'Justice' 강의를 진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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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보편적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의 표현을 잠시 빌려

우리를 달리고 있는 기차의 유일한 기관사라고 가정해보자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여있고

어찌 된 영문인지 미리 언질 받지 못한

갑작스러운 공사가 양쪽 기찻길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쪽에는 3명의 인부가 반대쪽에는 1명의 인부가 작업을 하고 있는데

4명의 인부들 모두 기차가 오는 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해

이미 피하기엔 늦었다고 가정하자

자, 여러분이 기차의 기관사라면

기차를 어디로 돌리겠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1명이 있는 곳을 선택한다.


즉, 3명의 목숨이 1명의 목숨보다 상대적으로 중하므로

3명을 위해 1명을 희생하는 것이다.


자, 이제 예시를 바꿔보자


똑같은 조건에서 아까 선택한 그 1명이

나의 가족이라면?

혹은 나의 아들이라면?


그래도 여전히 1명을 택할 것인가?


여전히 같은 조건이지만

주어진 조건의 피해자들이 나와 모르는 사람인지

혹은 나랑 친분이 있는 또는 가족 인지 여부에 따라

우리가 선택하는 결과는 쉽게 달라진다.


처음에 우리가 골랐던 '선택지'는

'보편적 정의'에 입각한 선택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아들을 구하기 위해

나머지 3명의 희생을 택한 선택은

정의롭지 않은 선택인가?


'보편적 정의'에는 맞지 않겠지만

나의 기준에서 바라보는 '상대적 정의'에는 부합한다.


이렇듯 우리가 믿어온 '보편적 정의'란

각자의 서있는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아버지가 도둑질을 했다는 사실을

그 자식이 알게 되었을 경우,

그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맞는 행동인가?


만약 아버지를 고발한다면

그것은 '법적으로 맞는 행동' 일지 모르지만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맞는 행동과 옳은 행동을

쉽게 같은 것으로 판단하기 쉽다.




이처럼 우리가 그동안 믿어왔던 '보편적 정의'라는 것이

매일 어그러지는 곳이 있다.

인간 본연의 속성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곳


바로 '국제 정치'이다.

국제 정치에서야 말로

'힘 있는 자가 곧 정의'이다


똑같은 전범 국가가 있다.

독일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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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매년 세계 2차 세계대전 도중

그들이 저지른 학살과 비인간적인 행위에

보는 이가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들만큼

사죄하고 또 사죄한다.



반면에 또 다른 전범 국가인 일본은 독일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다

그들의 과거사를 부정하며 제대로 된 사과다운 사과를 한적도 없다.


우리는 단순히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독일은 개과천선한 아주 착한 국가가 되었기 때문이고

일본은 여전히 정신 못 차린 깡패 국가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역사를 보면 동양 서양을 통 틀어서

인간의 본질과 본성은 항상 동일했다.

그렇기에 역사는 항상 반복되는 것처럼


독일이 유대인들에게 저렇게 무릎 꿇고 사죄하는 이유는

그만큼 전 세계의 자본을 장악한 유대인들이 힘이 있기 때문이며

그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는 것이

독일에게 더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똑같은 이유로 일본의 주요 피해자인 한국을 포함한

태평양의 수많은 국가들은 유대인만큼의 힘이 없기에

일본은 독일처럼 사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유대인만큼의 힘이 있었다면

지금 우리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돈 100억에 그리 치욕스럽게 합의해주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토록 국제 정치는 잔인할 만큼

'정의란' 힘 있는 자가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이며

우리가 그토록 믿어왔던 혹은 세뇌되어 왔던 '보편적 정의' 역시

또 다른 힘 있는 자들의 기준에 의해 세워진 '정의'일뿐이다.


그토록 이야기하는 '법치주의'란

힘 있는 사람들이 만든 '법'을 대중에게 강요한다는 것이고

힘 있는 사람들이 만든 '법'이야말로 '정의'라는 것이다.


'법'을 준수한다는 것은 때론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일 수 있지만

항상 '옳은' 행동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정답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에 '의문을 품어보는 것'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인문학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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