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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womanB Oct 25. 2020

젊은 사람들끼리만 다니는 거 보기 안 좋아 1.

점심시간에 누구랑 밥을 먹든 그게 뭐 대수라고

 후배가 들어왔다. 이제까지 다른 과에는 몇몇 후배가 들어왔지만 우리 과로 들어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제까지 40대 50대의 사람들과 지내다가 처음 접하는 비슷한 또래의 직원들의 등장에 긴장이 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었다. 얼마 전 후배의 퇴사를 겪은 터라 이들은 이곳의 꼰대 문화로 인한 힘든 일들을 겪지 않았으면 했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그들의 업무 외의 일들에 관여하지 않으려 했다. 그들은 동기끼리 서로 힘을 합쳐서 일도 잘해 나갔고, 다른 직원들과도 원만하게 지냈다. 가끔은 나도 그들과 함께 농담도 주고받으며 과 분위기는 점점 좋아지는 듯했고 개인적으로도 또래 친구가 생긴 듯한 기분에 직장생활이 조금은 즐거워지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다른 계에 있는 선배가 출근을 하자마자 나에게 차를 한 잔 하자고 연락을 했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선배였지만 무슨 어려운 말을 할 때마다 '차 한잔 하자.'는 말을 하는 분이었기에 무슨 일일까 싶었다.

 "내가 00 씨를 부른 건, 사실 요새 00 씨가 좀 말을 막 하는 것 같다는 얘기가 들려서..."

 "제가요?"

 "아니, 저번 점심시간에 00 씨네 계장님이 직원들이 점심 같이 안 먹으러 간다고 화냈었잖아."


 그 얼마 전 점심시간, 계장이 소리를 지른 일이 있었다. 입사 초 다른 부서에 간 동기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부서만의 이상한 문화 중 하나가 점심시간에는 전 직원이 계장, 과장을 모시고 함께 식사를 해야 하고, 계장, 과장이 약속이 있을 때에만 주무관들도 자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배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자리를 비웠고 윗사람들의 점심을 챙기는 것은 점점 나 혼자만의 몫이 되어갔다. 참다못한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유롭게 약속을 잡고 점심을 따로 먹기 시작했고 그렇게 알아서 점심을 먹는 분위기가 정착되어갔다. 온 지 얼마 안 된 계장만이 그 분위기에 적응을 못하는 듯했다.

 게다가 그 날은 계장이 점심시간 전 던진 업무에 다들 전화를 받고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계장은 한창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점심 먹으러 갑시다."라고 외쳤고 직원들은 각자 '약속 있어요.', '따로 먹을게요.', '다녀오세요.' 등의 대답을 했다. 계장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너네 말이야. 내가 몇 번을 참았어. 어떻게 내가 점심 먹으러 가자는데 아무도 대답을 안 할 수 있어? 꼭 같이 가야 한다는 건 아니야. 약속 있으면 있다. 잘 다녀와라. 이런 말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는 어이가 없었다. 평소와 같은 분위기였고 다들 대답을 했다. 그리고 지금 직원들이 본인 때문에 한창 일을 하는 중이라는 걸 모를 리 없었다. 평소와 달랐던 점은 다른 계의 계장들이 주변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따르지 않는 분위기를 다른 계 계장들에게 보인 것이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그 일 이후 선배들은 이상하게 신입들에게 화살을 돌렸고 신입들과 가까운 나에게 "쟤네 왜 밥 따로 먹어?" 라며 묻곤 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한동안 나 혼자 계장과 과장 밥을 챙길 때 싫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선배들도 하기 싫은 일을 왜 신입들의 의무인 것처럼 이야기를 할까 싶어 "저들도 윗사람 불편하겠죠. 따로 먹는 게 뭐 어때서요. 우리도 따로 먹잖아요." 정도의 대답을 해왔었다. 그러던 중 한 번은 선배들이 신입들에게 계장 과장 밥을 챙기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기에 "각자 밥은 각자 알아서 먹는 거죠."라고 대답을 했던 것이 그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었다.  


 "물론 계장, 과장 밥 챙겨야 하는 거 나도 꼭 그래야 하나 싶을 때도 있긴 해. 나도 따라가기 싫을 때 많고. 그래도 선배들 있는데서 '각자 밥은 각자 알아서 먹자.'라고 하는 건 좀 반항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선배님들 입장에서는 기분 나빴을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신입들도 지금 힘들어요. 밥만 조용히 먹는 거면 모르는데 늦게 먹네 남기네 그런 얘기 하면서 괴롭히는데 그 자리를 따라가고 싶겠어요? 안 그래도 밥 먹는 속도 느린데 다그치는 바람에 따라갈 때마다 체한대요. 그런데 어떻게 따라가라고 강요를 해요?"

 "그런 일이 있었으면, 어느 정도 너가 왜 그랬는지 이해는 되네. 그래도 좀 조심해. 요새 점심시간에 너랑 신입들만 안 보인다고도 말이 많아. 너네들끼리만 너무 붙어 다니는 거 아니냐고. 젊은 사람들끼리만 다니는 거 윗사람들 보기 안 좋아."

 "그건 좀 잘못 아신 것 같은데요. 우리 계 아무도 점심 같이 안 가는데 저랑 신입들만 없다는 건 잘못 보신 것 같아요. 저는 저 혼자 약속이 있어서 따로 나가고요. 그들이 점심을 어떻게 먹는지는 제 알 바 아니고요."

 "그래? 그건 오해했나 보네.. 아무튼, 신입들이 행동을 잘못하면 결국 후배 관리 잘하라고 혼나는 건 너야. 그러니까 신입들한테도 좀 적당히 조심하라고 해주고. 잘 행동해."



  신입들이 잘못된 행동을 한 게 없는데 대체 뭘 관리하라는 건지. 게다가 다른 계에서 우리 계 신입들이 밥을 누구랑 먹는지가 뭐 그리 중요한 일이라고 아침부터 나를 불러다가 그럴까 싶었다. 그래도 계장이 화를 냈는데 아무도 안 따라가기는 그러니 신입들에게 나까지 포함해서 요일별로 돌아가면서 계장 점심을 좀 챙겨주자는 부탁을 했고 그들도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 일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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