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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21. 다시 울란바토르로

쳉헤르-울란바토르

by HuwomanB

아침을 먹고 울란바토르로 출발했다. 오늘 일정은 울란바토르 국영백화점에서 기념품 쇼핑을 한 후 각자 숙소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몽골로 출발하기 전 여행사(아타르 아트 트레블)에 연락해서 언니의 숙소가 동생과 나의 숙소와 달라서 두 숙소에 각각 데려다주고 다음날 각각의 숙소에 다시 들러서 공항으로 데려다주는 것이 되는지 물어봤었는데 다행히 여행사에서는 해준다고 했었다. 엘사가 출발하면서 이따가 오후에 정확한 숙소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엘사의 휴대폰은 가는 도중에 다시 살아나서 점심을 먹고 엘사에게 카톡으로 숙소 주소를 보내줄 수 있었다.



아침

나는 고추장 뚜껑을 열어서 밥에 비비고 치즈를 올려 먹었다. 햄에는 구운 마늘도 있었다.

아침은 소시지와 참치, 그리고 치즈였다. 밥에 치즈를 올려먹는 것을 좋아해서 밥 위에 올렸는데 조금 느끼한 것 같아 테이블 구석에 있던 고추장을 뚜껑을 열어서 고추장을 넣고 비벼서 다시 치즈와 함께 먹었다. 햄에는 구운 마늘도 있었는데 햄과 구운 마늘의 조합이 괜찮았다. 그렇게 먹다 보니 한국에서 혼자 밥을 간단히 해 먹는 느낌이었다. 한국에 돌아갈 때가 되긴 된 것 같았다.



돌아가는 길


쳉헤르를 나와 울란바토르로 돌아가는 길에서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보며 이기적이지만 몽골이 발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 도중 몽골의 모습을 보면서 이건 이렇게 하면 더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이렇게 개발하면 더 많은 관광객을 모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사업적 머리가 전혀 없는 나도 드는 생각을 다른 강대국들이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몽골에 숟가락을 얹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 큰 땅에 비해 350만의 적은 인구수는 몽골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었다. 이 나라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 자연을 도저히 파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살게 다른 나라들이 괜한 도움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정말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현재가 주는 애로사항과는 관련이 없는 타국의 제삼자가 감히 이 곳의 자연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하늘과, 땅과, 기후가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그리고 유목생활을 하며 그 안에서 만족하며 사는, 서로를 돕는 것을 우선시하며 베풀며 사는 이들의 마음이 그대로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발전하는 도시 속에서 세워지는 건물들 틈에서 자연을 잊고 사람을 잊고 주변의 모든 것들로 이익계산을 하는 모습을 어깨 넘어로라도 배우지 않기를...



점심

점심은 몽골 만두였다. 안에는 양고기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우유로 만든 차를 주었는데 이게 정말 맛있어서 한 컵을 더 먹고 엘사에게 한국에서 이걸 파는 곳이 있는지 물어봤다.

길을 가는 중에 휴게소처럼 생긴 식당이 있었다. 그 식당에 들어가자 양고기 냄새가 진하게 났다. 몽골의 모든 식당에서는 양고기 냄새가 났었는데 동생은 시간이 갈수록 식당에서 나는 양고기 냄새가 점점 견디기 힘들어졌다고 했었다. 그래도 식당은 이제까지 중에 가장 현대식이었고 깨끗했다. 화장실도 정말 깨끗해서 엘사는 "대박! 대박 화장실!"이라고 외쳤다.

점심 메뉴는 양고기가 들어간 만두였다. 호쇼르가 튀김만두였다면 이번엔 찐만두였다. 호쇼르처럼 이 만두에도 야채는 들어가 있지 않았다. 침게가 "몽골 만두엔 고기만 들어가."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만두를 워낙 좋아해서 이 만두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엘사가 우유로 만든 차라며 차를 한 잔 따라주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두 잔을 마시고 더 들어갈 배가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맛있었다. 따뜻한 우유인 것 같으면서도 짭조름하게 간이 되어 있는 깊은 사골국 같기도 하고 아주 묽은 수프 같은 느낌도 있었다.

엘사에게 이게 소 우유로 만든 거냐고 하자 엘사는 "응, 소 우유로 만든 거야. 수태차."라고 대답해주었다. 나는 다시 이 수태차를 한국에서는 먹을 수 없냐고 물었고 엘사와 침게는 "한국에 차이나타운처럼 몽골 식당 많은 몽골타운 있어. 거기 가면 몽골 음식 먹을 수 있어. 수태차도 있고."라고 대답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한국에 돌아가면 꼭 찾아가서 마셔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쉬웠던 길 사진


점심을 먹고 엘사에게 길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엘사는 여기 말고 더 가면 더 좋은 곳 있다고 조금 더 가서 차를 세우자고 했다. 사실 첫날에도 길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엘사가 더 가면 좋은 데가 있다고 하더니 결국 아무 데도 멈춰주지 않았어서 이 말이 조금 불안했지만 일단 더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예쁜 길들을 엘사는 다 지나쳐서 결국 엘사에게 한번 더 물었다. "엘사, 우리 길에서 사진 언제 찍어요?" 그러자 엘사는 "지금 찾고 있어. 그냥 여기서 찍을래?" 하고 차를 세웠다. 그런데 사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그냥 길이었다. 그리고 울란바토르로 가까이 가는 길이어서 차도 많아서 사진을 찍기도 힘들었다. 몽골에 오기 전 SNS에서 사람들이 동행들과 함께 도로에서 사진을 찍은 것들을 많이 보고 왔는데 그런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다. 어느 쪽으로 구도를 잡아도 별로 만족스러운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차에서 내렸고, 엘사가 다른 곳을 더 찾아줄 것 같지 않아서 최대한 구도를 잡아서 사진을 찍었다. 엘사에게 불만이 딱 하나 있다면 이 부분이었달까. 첫날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차라리 첫날 길을 찾아주었으면 차도 없고 더 예쁜 풍경을 배경으로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우리가 내려서 사진을 찍었던 길, 언덕이 검은 부분은 구름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인데 처음에는 검은 땅이 있는 건 줄 알았었다.



몽골 경찰과 한국 아줌마들


한참을 더 달려서 시내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경찰이 차를 세웠다. 헤라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더니 헤라의 면허증을 본 뒤에 차에서 내리게 했고 경찰차가 있는 쪽으로 데려갔다. 경찰들이 헤라를 데려가자 엘사도 침게에게 뭐라고 말하는 듯하더니 서류 같은 것을 들고 뒤따라서 경찰차로 갔다. 면허증을 보고도 헤라를 데려가고 엘사도 따라가니 걱정이 돼서 침게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묻자 침게는 별 일 아니라고 했다. 침게는 여행객들을 태운 차가 법을 잘 준수했는지를 검사하는 과정인데 헤라는 규정에 다 맞춰서 구비할 물건들을 다 싣고 다니니 괜찮을 거고 원래 몽골 경찰들은 별 것 아니어도 자신들의 차까지 데려가서 이것저것 확인한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헤라와 엘사가 바로 돌아오지 않고 여기저기 전화를 거는 듯한 모습에 불안해졌다. 게다가 대학교 때 같은 수업을 들었던 몽골에서 온 오빠(몽골 사람)가 몽골은 공권력이 세서 국민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고 이러다 경찰들이 이유 없이 헤라를 붙잡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1시간 정도가 지나서 헤라는 돌아왔고 엘사에 따르면 여행 날짜를 여행사에서는 제대로 신고를 했는데 경찰 쪽에서 날짜를 잘못 기입한 것이었는데 설명을 하고 증명을 해도 경찰들이 자꾸만 아니라고 해서 조금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우리 말고 다른 여행사 차량도 붙잡혀 있었는데 헤라가 돌아올 때쯤 그 차에 타고 있던 한국 아주머니들이 나와서 경찰차로 몰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차는 우리보다 먼저 붙잡혀 있었던 것 같았다. 내가 그걸 보면서 "큰일 났다. 한국 아줌마들 화났다. 경찰이 잘못 건드렸다."라고 이야기하자 엘사와 침게가 엄청 웃으면서 "맞다. 큰일 났다." 하며 내 말을 따라 했다. '아 몽골사람들도 한국 아줌마들 무서운 거 아는구나.' 하는 생각에 같이 웃었다.

출발하면서 엘사가 헤라가 본인 때문에 지체돼서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한다고 말했고 우리는 그게 헤라 때문도 아닌데 미안할 필요 없다고 대답했다. 오히려 헤라가 미안하다고 하니 반대로 헤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생 많았던 타이어


한국 아주머니들이 경찰차로 몰려가는 모습을 뒤로한 채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울란바토르를 코앞에 두고 갑자기 차가 흔들리더니 헤라가 급하게 차를 세웠다. 동생이 "타이어 펑크 났나 봐."라고 말했는데 동생 말대로 타이어가 펑크 났다며 엘사는 우리를 내리게 했다. 내려서 보니 타이어가 찢어지다 못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7일 동안 사막을 그렇게 달렸으니 터질 만도 하지, 사실 이제까지 안 터지고 버텨준 게 더 신기한 일이긴 해."라고 말하며 헤라가 타이어를 교체하는 것을 기다렸다. 밖은 조금 추웠는데 우리가 옷을 얇게 입어서 추워하자 엘사가 자신의 가방에서 남는 옷들을 꺼내 주었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엘사와 침게가 듣지 못하는 곳에서 언니와 동생에게 "우리 팁을 조금 더 넣을까?"라고 물었다. 어제 쳉헤르에서 공금 남은 것을 정산하니 12만 투그릭이 조금 넘었었고 이 금액을 3분의 1을 해서 헤라, 엘사, 침게의 팁 봉투에 각각 4만 투그릭씩 넣고 더 작은 단위의 돈은 운전하느라 고생한 헤라의 봉투에 넣었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헤라, 엘사, 침게가 고생해준 것에 비해 너무 적은 것 같았다. 그래서 각자 2만 투그릭씩 더 넣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고 다들 그러자고 했다. 그 이야기를 끝낼 때쯤 타이어 교체가 끝났고 나는 차에 타자마자 각 봉투에 2만 투그릭씩을 더 넣었다. 그래 봐야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인당 3만 원 정도여서 이들의 고생에 비해 적은 돈이었고 게다가 같이 밤늦게까지 남아서 우리를 숙소로 데려다주느라 고생한 헤라와 엘사에겐 침게보다 더 넣어줄 걸 하는 생각에 많이 미안했다.

타이어를 교체하고 있는 헤라. 갈기갈기 찢겨있는 타이어



울란바토르의 교통정체


울란바토르로 들어오는 길은 엄청 막혔고 울란바토르 안은 더더욱 막혔다. 원래 예상 도착시간은 오후 3시 정도였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경찰이 붙잡았을 때가 5시, 울란바토르에 도착하니 7시가 다 되어갔다. 금요일 저녁이기도 해서 도시로 들어가는 시간이 퇴근 시간과 맞물려서 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았는데 한국으로 치면 출장을 갔다가 다시 서울로 들어갈 때 퇴근시간이 걸리면 시간을 가늠할 수 없게 막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국영백화점이 밤 10시까지 한다고 해서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울란바토르에 들어오자 엘사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우리가 묵을 숙소의 주소화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것 같았다. 한국으로 따지면 114나 120 다산콜센터 정도가 아니었을까. 엘사가 숙소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을 때 내가 숙소 주소를 알려주면서 언니 숙소 주소는 정확한 데 동생과 내 숙소는 주소가 두 개로 나온다고 하자 엘사는 나에게 전화번호는 아냐고 물어봤었다. 인보이스에는 전화번호가 나와있지 않아서 인보이스를 보여주면서 이렇게만 나와있다고 했는데 엘사는 "음 괜찮아. 내가 다 알아서 할게."라고 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고 나서 전화를 걸어 각각의 숙소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각 숙소에 전화를 걸어서 우리의 예약 확인을 다 해줬다. 다시 한번 엘사가 너무 든든했다.

시내로 더 들어와서 침게는 먼저 내린다고 했다. 나는 침게에게 준비한 팁을 주었고 침게는 "고마워." 하더니 바로 내렸다. 인사를 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던 쿨한 침게. 덕분에 즐거웠어.

국영백화점에 거의 도착할 때쯤 엘사는 거리에 돌아다니는 여자들을 보고 "우와, 도시 여자들, 예쁘다."라고 했는데 말에서 묻어 나오는 부러움과 동경 어린 시선이 조금 짠했다. 엘사도 벌레 싫어하고 온수 샤워 좋아하고 휴대폰으로 끊임없이 사진 찍고 SNS 하면서 시간 보내는 도시 여자인데, 그냥 도시 여자도 아니고 네일 아트도 하는 꾸미기 좋아하는 도시 여자인데, 이렇게 가이드 일을 하느라 예쁜 옷도 못 입고 내색은 잘 안 해도 많이 답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엘사, 여행 끝나고 푹 쉬어. 예쁜 옷 입고 쇼핑도 가고.



국영백화점에 도착하니 8시였다. 우리는 캐시미어와 그 밖의 기념품들을 샀다.


몽골 22.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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