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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20. 평화로운 하루?

쳉헤르

by HuwomanB

9시쯤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화장실 물이 계속 흐르는 것 같다고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어젯밤부터 계속 물소리가 나고 물이 잘 안 내려 간 게 변기 안에 물이 계속 흐르고 있어서였던 것 같았다. 남자 2명이 와서 괜찮다고 하고 가긴 했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온천이기도 하고 리조트 안에 있는 화장실이라 물이 더 풍족할 줄 알았는데 게르와 다를 건 없었다. 기본적으로는 큰 볼일을 보면 물이 잘 안 내려갔고 아침이 되니 물이 끊겼다가 저녁이 되니 다시 물이 공급되었다. 10시에 아침을 먹고 숙소에서 쉬다가 온천에 갔다. 새벽만큼 뜨겁지 않고 미지근했다. 지나가던 엘사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해서 사진을 찍고 15분 정도 몸을 담그고 다시 숙소에 와서 각자 쉬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산책을 가기로 했다.



아침

아침은 식빵과 계란 프라이, 소시지였다. 맨 오른쪽은 스크램블 에그. 그리고 큰 멸치가 들어간 통조림도 있었다.


점심

허르헉을 뜨거운 돌로 고기를 익히는 몽골의 전통요리인데 버너의 도움을 받은 듯 했다. 완성되고 난 후 헤라가 양고기, 당근, 감자를 각각 분리해서 담았다.
헤라는 고기와 당근, 감자를 다 분리한 후 안에 들어있는 돌을 하나씩 주었다. 고깃기름을 흡수해서 계속 들고 있으면서 손에 묻히면 보습효과가 있다고 한다.


점심에는 허르헉과 마유주를 먹었다. 원래는 저녁에 먹으려고 했었는데 침게가 마유주를 먹으면 설사를 하니 쳉헤르에 편하게 있을 때 화장실을 가는 게 나을 거라고 점심메뉴로 바꾸자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우리는 어제 얘기한 대로 보드카를 가져갔다. 침게에게 "이거 드시라고 가져왔어요."라고 하면서 보드카를 보여줬는데 침게는 "주면 먹고 안 주면 안 먹을게요."라고 말했다. 이전의 침게와는 다른 반응이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숙소로 돌아오니 언니와 동생도 그렇게 느꼈다고 했다. 엘사가 뭐라고 주의를 준 거였을까. 언니와 동생은 "이제 메인 가이드하려면, 어느 정도는 눈치가 필요하긴 하지." 라며 씁쓸하지만 변하긴 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생각이었고. 근데 저건 뭔가 눈치를 배워서 나오는 대답이 아니라 어딘가 잘못 배운 예 같은 대답인데... 어쨌든 우리는 보드카를 같이 먹자고 했고 헤라, 엘사, 침게의 컵에 따라주었다. 헤라는 우리 보드카를 보더니 엘사에게 뭐라고 말하는 듯했는데 엘사가 그 말을 듣고 "괜찮아, 얘네 몽골 사람 다 됐어. 마유주도 마시고 보드카도 마셔도 돼."라고 했다. 아마 헤라가 한 말은 '마유주 줄 건데 보드카까지 마셔도 얘네 괜찮냐.' 이런 말이었던 것 같다. 함께 먹으니 보드카는 금방 끝이 났다. 우리는 마셔봐야 한 잔정도였는데 몽골 사람들은 정말 술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보드카를 한 잔씩 따라 줄 때 엘사는 마유주를 꺼내 우리 컵에 따라주었다. 마유주는 많이 시큼한 막걸리 맛이었다. 은근 내 입엔 잘 맞아 허르헉을 먹으면서 마유주를 마셨는데 언니는 본인 입에는 잘 맞지 않는다고 한 입만 대고 말았다. 침게는 언니가 설사를 할까 봐 안 먹는다고 생각했는지 마유주를 마셔서 하는 설사는 괜찮다며 나쁜 게 빠지면 알아서 멈춘다고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헤라가 "마셔도 돼. 몽골 사람도 똑같아. 이거 마시면 설사 해. 괜찮아."라고 했는데 헤라가 그렇게 길게 얘기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고 나서 헤라는 "이거 먹고 배 따뜻하게 하고 있어."라고 말했는데 엘사나 침게보다 한국말을 잘 구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몽골의 정 5.


어제저녁을 먹고 양치를 하려는 데 엘사가 우리에게 준 물은 탄산수였다. 그래도 다른 물이 없어서 탄산수로 양치를 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우리 물 탄산수라고 했더니 엘사가 내가 배가 아프다고 해서 탄산수를 산 것이라고 했다. 그거 먹으면 좀 괜찮아진다고. 엘사, You're so sweet. 의학적으로는 관계없는 이야기인 것 같았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산책


헤라가 숙소에 돌아가면 배를 따뜻하게 하고 있으라고 해서 나는 언니와 동생에게 내가 가져온 핫팩을 나눠주었고 우리는 침대에 누워서 잠시 쉬다가 산책을 가기로 했다. 니는 책을 보고 동생은 휴대폰을 하다가 낮잠을 자고 나는 글을 쓰고... 시간이 흘러 5시가 되었고 잠이 든 동생을 깨워 밖으로 나갔다. 말똥들을 피해 가며 달려드는 파리떼들을 헤치며 산책을 했다. 하늘에는 매? 독수리? 같은 큰 새들이 많이 날아다녔고 그 아래에는 염소 떼가 있었다. 새가 아기 염소를 낚아채려고 하는 것 같아서 계속 보고 있었는데 새들은 염소들 주위를 맴돌기만 했고 염소들은 불안한 지 요란하게 울어댔지만 상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초원에는 작은 다람쥐들도 돌아다녔다. 두 발로 섰다가 다시 달리다가 땅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굉장히 귀여웠다. 동생은 다람쥐들을 사진에 담기 위해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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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조트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초원, 유목민들의 게르도 있고 또 다른 게르 캠프도 있었다.
말과 야크들을 방목하고 있었다. 개가 달려와 물 수도 있다고 해서 가까지 가지는 못했다.

계속 가다 보니 말과 야크들이 보였다.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산책을 나오기 전에 엘사가 너무 가까이 가면 집을 지키는 개들이 나와서 물 수도 있다고 조심하라고 했던 것이 생각나서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멀리서 지켜봤다. 산책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한국 청년들이 언덕을 올라 염소 떼에 가까이 가는 것이 보였다. 우리도 가 볼까 해서 언덕 쪽으로 갔지만, 언덕에 가까이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비가 온 뒤라 땅은 질척거리고 곳곳에 말똥들이 있었다.


우리 굳이 저기까지 안 가도 되지 않을까?


누군가가 이렇게 이야기했고 다들 같은 생각이었는지 곧바로 동의하며 초원 쪽으로 돌아왔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 그림자가 나오는 사진을 찍었다. 이전에 들른 장소들에서도 초원과 그림자와 하늘을 모두 담고 싶어 여러 번 시도했었는데 하늘이 잘 나오지 않았었다. 언니가 여기서는 될 것 같다고 한번 다시 찍어보자고 했고 나름 만족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손가락 하트를 만들었지만 그냥 주먹을 쥔 것처럼 나왔다.




저녁

다 먹고 나서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점심에 조금 남은 허르헉도 있었다.

저녁은 9시에 먹었다. 몽골은 해가 9시 정도에 지기 시작해서 늦었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점심에 침게가 저녁은 닭도리탕이라고 해서 홍고린 엘스에서 먹은 닭국을 생각했는데 빨간 국물의 진짜 닭볶음탕이었다. 어제에 이은 한국의 맛.

헤라는 엘사에게 닭도리탕을 한국어로 발음하는 걸 물어보는 듯했고 그다음에 바로 우리에게 "닭도리탕, 맛있어요?"라고 물었다. 헤라는 한국어 발음을 정말 잘한다. 첫날 헤라가 아들이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했었는데 그 뒤로 헤라가 말할 때마다 대학교 때 우리 학교에도 몽골 사람들이 매년 한두 명 정도 있었던 것이 떠오른다. 그 아들은 한국에 대해 어떻게 전하고 있을까.

우리는 마지막 김을 꺼냈다. 헤라와 엘사, 침게는 한국 김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 헤라는 늘 김밥을 만들듯 김에 밥을 꾹꾹 눌러 펴서 먹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모습이 자꾸 생각이 난다. 헤라, 보고 싶다. 우리는 처음에는 김을 한 봉지씩 가져갔었고 침게가 해주는 메뉴가 몽골식 국수 같은 것들일 때는 김을 안 가지고 나갔었는데 한 번 우리에게 "이번에는 김 가져와도 돼."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정말 좋아하나 보다 했다. 그렇게 말하는 게 귀엽기도 하고. 그래서 그 후로는 김을 두 봉지씩 가져가서 같이 풍족하게 먹었고 오늘은 마지막 김을 함께 나눠먹었다. 다 먹고 난 뒤에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급히 사진을 찍었지만 남아있는 건 별로 없었다.



성 관광을 온 사람들?


밤에 다시 온천에 들어갔다.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는데 처음에 한국어와 몽골어를 쓰길래 몽골 가이드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와 함께 있던 비슷한 또래의 남자들도 한국어와 몽골어를 다 사용했고 "이게 몽골 맥주구나" 하는 것으로 봐선 한국인이었다. 갑자기 낮에 숙소에서 쉴 때 언니가 이야기해 준 책 내용이 생각났다. 언니가 몽골 여행 내내 읽고 있던 책이었는데 제목이 '금요일 퇴사, 화요일 몽골'이었고 내용은 퇴사를 하고 몽골 여행을 하면서 겪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기에 작가가 여행하다가 묵게 된 게르 캠프의 사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적은 부분을 언니가 말해 주었었는데 그 사장의 말에 따르면 몽골로 성관광을 온 한국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이 어린 몽골 여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게르에서 성관계를 맺거나 학대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그 남자들 주변에 그 남자들과 같은 수의 몽골 여자분들이 비키니를 입고 함께 탕에 들어와 있었는데 이 남자들이 그 여자분들한테 물을 뿌리며 몽골말을 하는 게 좀 이상해 보였다. 게다가 젊을 때는 자기가 소주를 10병을 마셨느니 하면서 한국어로 허세를 부렸는데 슬쩍슬쩍 우리 쪽을 보는 것도 싫었고 그런 대화들이 들리는 게 싫어서 탕에서 나왔다.

몽골에 지사가 있는 한국 업체의 간부들이 출장을 온 걸 수도 있고 그래서 몽골어를 잘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굳이 왜 몽골 여자들에게 아는 척을 하고 물을 튀기며 장난을 칠까. 어떤 가설을 세우든 100프로 건전한 가설은 없었다.



조용한 밤


숙소로 들어와 맥주를 한 캔씩 땄다. 그동안 많이 피곤했는지 다들 말없이 각자 침대에서 맥주만 마시면서 내일 살 기념품들을 검색했다. 나는 브런치에 쓸 글들을 사진과 제목만 정리해서 서랍에 올리고 있었는데 자꾸 눈이 감겼다. 그러다 깜박 졸았고 동생의 단어를 빌리자면 경기를 일으키며 깼다. 갑자기 몸이 움찔하는 나에게 동생은 시크하게 "왜 이래. 그냥 자."라고 했고 그 말대로 나는 다시 제대로 잠이 들었다. 나중에 이 날 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동생은 내가 뭐 할 거도 없으면서 갑자기 놀라서 깨는 게 황당했다고. 그리고 언니는 아무래도 친목도모에는 게르가 더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원래 야식으로 라면을 끓이려고 했지만 다들 조용히 귀국 준비를 하다가 잠들었다.


7월 26일 일정

쳉헤르-울란바토르

-아침 먹고 출발, 울란바토르 가는 길에 점심, 저녁에 울란바토르 도착해서 국영백화점 쇼핑, 각자 구한 숙소로 데려다주면 짐 풀고 나와서 저녁

옷 코디: 검은색 끈 나시+녹색 청색이 섞인 원피스 (오늘 복장과 동일)


몽골 21.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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