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저녁은 김치찌개. 여기에도 당근과 감자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당근 샐러드. 그래도 그리웠던 한국의 맛이었다. 점심에 식당에서 혹시 김치를 조금 먹을 수 없냐고 하자 엘사가 "안돼. 우리 이따 김치찌개 할 때 써야 해."라고 했었다. 너무 단호하게 얘기해서 저녁에 쓸 김치도 이미 모자라나 보다 하긴 했는데 나중에 언니는 이 일에 대해 몽골 여행사 마인드는 어딘가 좀 다른 것 같다며 한국 여행사였으면 김치찌개에 김치를 덜 넣게 되더라도 필요하다고 하면 조금이라도 가져다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국의 '고객감동' 서비스에 익숙해진 우리는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제까지 느낀 몽골의 정에 미루어볼 때 점심에 먹고 싶은 것 조금 참게 하고 저녁을 제대로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저녁, 김치찌개. 찌개보단 찜에 가까웠지만 한국에서 먹던 맛과 굉장히 비슷했다. 살 것 같았다. 몽골 음식이 입에 안 맞는 것도 아니었고, 욜링암에서 빼고는 물리는 일 없이 잘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고 있었나 보다. 정말 맛있게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을 때 엘사가 "우리 내일은 따로 가는 곳 없으니까 조금 늦게 일어나도 될까?"라고 물었다. 우리가 물어볼 말인데 엘사가 먼저 말해서 조금 놀라고 있으니 "우리도 내일 좀 늦잠 자려고."라고 했다. 엘사와 침게도 그동안의 일정에 많이 지쳤던 것 같았다.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식사를 준비하고 정리하고 조금씩 늦어지는 우리를 재촉해서 시간 내에 차에 태우고 했으니 당연히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좋아요."라고 대답했고 내일 아침은 오전 10시에 먹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온천을 구경하러 갔는데 온천은 생각보다 작았다. 나는 여기저기 온천이 있는 온천 마을을 생각했는데 우리가 저녁을 먹은 건물 앞에 탕이 4개 정도 있었다.
우리가 저녁을 먹은 건물. 안에 식당이 있었는데 그 식당에서 자리만 빌려서 밥을 해 먹었다. 건물 뒤편에는 온천이 있었다.
첫 번째 온천: 새벽 2시
사람이 많아 해가 지면 나오기로 하고 숙소로 들어가 다들 누워서 각자 할 일을 했다. 언니는 책을 보고 동생은 휴대폰을 보고 나는 여행기를 마저 썼는데 이제까지의 피로가 풀리는지 동생은 10시 정도에 잠이 들었고 나는 동생을 11시쯤 깨워서 온천을 하자고 해야 하나 그냥 둬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10시 30분에 잠들었다. 언니도 11시 정도에 잠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새벽 2시가 되자 다들 잠이 깼고 먼저 일어나 양치하러 밖으로 나갔던 동생이 들어오면서 온천에 아무도 없다고 말해주었다.
다시 잠이 들 것 같지도 않은데 사람 없을 때 온천에 들어가 별을 보며 온천욕을 하기로 했고 언니와 나는 수영복을 갈아입었고 동생은 발만 담그겠다고 하고 옷을 입고 나갔다. 밖은 많이 추웠다. 수영복을 입고 있어서 더 추운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덕에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바로 다 담글 수 있었다. 온천물은 처음에는 뜨거웠지만 점점 따뜻하게 느껴졌다. 얼굴은 차갑고 몸은 따뜻하니 기분이 좋았다. 몸은 따뜻했지만 손은 뜨거워서 언니와 나는 둘 다 손만 물 밖으로 내밀고 있었는데 한쪽에 걸터앉아 발을 담갔다가 뺏다가 하던 동생이 우리를 보더니 종교단체 같다며 웃었다. 새벽 2시라 어느 정도 달이 떠 있었고 쳉헤르는 계속 불을 밝게 켜놔서 별은 잘 보이지 않았고 보이는 별도 그다지 빛나지 않았다. 온천에 들어가 쏟아지는 별을 보는 것을 기대했었는데 생각만큼 별이 보이지 않고 딱히 다른 할 일도 없어서 조금 있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날 온천물은 이때만큼 따뜻하지도 않고 오히려 미지근했고, 사람도 많아서 이때 더 오래 온천을 더 오래 즐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아직도 많이 남은 칭기즈칸 골드
숙소로 돌아와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귤을 하나씩 까먹었다. 동생이 "술을 좀 마실까?"라고 말했고 나도 바라던 바여서 바로 어제 남은 칭기즈칸 골드를 꺼냈다.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았어? 우리 돌아가기 전에 다 마실 수 있을까?
오렌지주스와 장 볼 때 산 황도, 그리고 침게가 사 준 과자를 마저 꺼냈다. 이제까지의 여행하면서 생겼던 이런저런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한 세잔 정도 마셨고 홍고린엘스에서의 침게 이야기를 하며 한번 더 박장대소했다. 다음날 일정도 없고 늦게 일어나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5시가 된 것을 보고 이만 다시 자기로 했다. 칭기즈칸 골드는 칭기즈칸의 얼굴 위에서 얼굴 아래까지는 줄었지만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다.
이거 우리만 마시지 말고 내일 허르헉 먹을 때 가져가서 같이 마시자. 첫날 고기 먹을 때 헤라랑 침게가 술 생각난다고 했으니까 가져가면 좋아할 거 같아.
나는 남은 칭기즈칸 골드의 뚜껑을 닫았고 자기 전에 큰 볼일을 보러 바깥의 동그란 건물에 있는 화장실로 갔다. 숙소 안에 화장실이 있었지만 냄새와 소리가 뭔가 민망해서 다들 큰 볼일을 볼 땐 밖으로 나갔다. 볼일을 다 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갈 때쯤 해가 뜨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온천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 가는 곳마다 나타나는 벌레가 다르다
차강소브라가: 나방
욜링암: 작은 풍뎅이
홍고린엘스: 눈에 띄는 벌레는 없었던 것 같다.
바양작: 모기, 흰 벌레(엘사는 흰 파리라고 했다.)
쳉헤르: 파리
쳉헤르에 도착하여 해가 지기 시작할 때쯤에는 수면바지를 챙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비가 온 뒤이기도 하고 고비보다 위쪽이라 그런지 엄청 추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숙소 안에 열풍기가 있어서 방은 금세 따뜻해졌고 처음엔 레깅스를 입고 잤지만 새벽에 깨서 술을 마실 때는 더워서 다시 냉장고 바지로 갈아입었다.
7월 25일 일정
쳉헤르
- 쉬는 날, 온천, 산책, 허르헉과 마유주
옷 코디: 검은색 끈 나시+녹색과 청색이 섞인 원피스
몽골 20. 에서 계속